영화 ‘리얼 완전한 수장룡의 날’ 스틸 이미지

영화 ‘비밀의 아코짱’에서 철없이 소녀놀이를 하던 아야세가 ‘리얼 완전한 수장룡의 날’로 변신의 날개를 달았다. 해맑고 따뜻한 그녀에게도 숨겨진 그늘이 존재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출품작 중에서 참 특이한 제목을 지닌 일본영화 두 편에 관심이 쏠렸다. 야마시타 노부히로의 ‘모라토리움기의 다마코’와 구로사와 기요시의 ‘리얼 완전한 수장룡의 날’이었다. 제목만으로는 도저히 캐릭터를 상상할 수 없었다. 노부히로 감독은 ‘고역열차’에 이어 마에다 아츠코를 캐스팅했지만, 이 아이돌 스타를 보며 쉽게 “앗짱!”을 외칠 마음은 들지 않았다. 반면 기요시 감독은 전작 ‘속죄’의 여배우들(아오이 유우, 코이케 에이코, 이케와키 치즈루) 대신 아야세 하루카를 기용했다. 사실 별로 내키지 않는 선택이라 조연으로 나온 나카타니 미키에게 뭔가를 기대하는 마음이 더 컸다. 아야세는 방구석을 굴러다니는 건어물녀 포스가 너무 강해서,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스릴러를 소화하기에는 어딘가 우습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결과는 예상과 전혀 달랐다. ‘리얼 완전한 수장룡의 날’은 기요시의 범작 수준이었지만, 여배우 아야세 만큼은 생애 최고의 연기를 선보였다. 1985년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그녀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2004)를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드라마 ‘백야행’(2006)과 ‘호타루의 빛’(2007)으로 사랑을 독차지한 걸 고려하면, 큰 시련 없이 계속 히트작을 내놓은 셈이다. 국내 일본드라마 열풍의 일등공신이었다.
영화 ‘싸이보그 그녀’ 스틸 이미지

더는 설명이 필요 없는 호타루 캐릭터는 다양한 신조어를 양산하며 인기를 끌었다. 일본 사회에 직장생활을 하며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오히토리사마)이 늘어나면서 건어물녀도 주목을 받았다. 직장에선 열정적인 능력자이지만, 집에 오면 츄리닝(트레이닝복)을 입고 맥주와 건어물을 즐겨 먹는 여인들이었다. “연애 세포가 없다”는 식의 표현도 이때 참 많이 쏟아졌다. 호타루를 연기한 아야세는 점점 ‘허당녀’로 자리를 잡았다. ‘해피 플라이트’(2008)나 ‘가슴배구단’(2009)을 보면서 지나치게 착한 그녀에게서 큰 결핍을 느꼈다. 세상에 밝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그녀의 영화들을 위선이라고 비판할 생각은 없지만, 유사한 이미지를 계속 자기 복제하는 바람에 연기가 매너리즘에 빠진 것도 사실이다. 영화의 완성도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이 시기에는 그나마 ‘싸이보그 그녀’(2008)가 좋았다. 아야세의 사이보그는 터미네이터처럼 등장해 ‘전영소녀’의 아이처럼 주인공을 응원하지만, 사실 ‘엽기적인 그녀’와 지나치게 유사한 구석이 많았다. 그녀가 목을 이상하게 꺾으면서 지로의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는 게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오히려 까칠하고 유별난 성격의 사이보그를 통해 그녀가 다른 색깔의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도 보여주었다. 그래서인지 더 많은 변신을 기대하기도 했다. 특히 나카다 히데오의 ‘더 인사이트 밀’(2010)에 출연할 때 반전도 슬쩍 원했지만, 예측가능한 쇼코 캐릭터는 참 허탈한 모습이었다.

영화 ‘비밀의 아코짱’ 스틸 이미지

‘비밀의 아코짱’(2012)에서는 요술공주 세리나 밍키 같은 ‘변신 소녀’로 등장한다. 마법의 콤팩트를 선물 받은 초등학생 아츠코가 이십 대 숙녀로 변하는 역할이다. 아야세가 입을 크게 벌리면서 놀라거나 아이처럼 징징대는 연기의 달인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그녀에게 그런 만화 캐릭터는 제격이다. 열 살 소녀의 정신세계를 아주 자연스럽게 표현해냈다. 정확한 맞춤형 연기를 하니, 이런 캐릭터 영화가 나오면 그녀를 찾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아야세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연기는 한 가지 표정만 지닌 국내 모 CF 스타들처럼 쉽게 예상이 된다. 20대 후반의 배우라면 자신이 생산해 낸 이미지(사랑스러운 건어물녀)에서 스스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리얼 완전한 수장룡의 날’의 아츠미 캐틱터는 어딘가 달랐다. 더는 선하게 웃지 않은 아야세. 무표정한 그녀에게서 차가움이 발산되는 모습이 좋았다. 후반부에 가면 진실이 밝혀지고 반전이 일어나지만, 끝까지 아츠미는 코이치(사토 타케루)의 들러리에 머물지 않는다. 너무 착해 보이는 그녀가 잔혹한 호러퀸이 되는 것도 꽤 재미있을 것 같다. 기요시 감독이 그녀와 한 작품을 더 한다면, 그런 영화도 충분히 가능하리라. 아코짱의 “데쿠데쿠 마이콘” 같은 비밀의 주문은 이제 제발 그만 외웠으면 좋겠다. 아야세에게 필요한 것은 블링블링한 화장품 콤팩트(판타지)가 아니라 진짜 어른의 연기다. 어서 빨리, 여인의 세계로 문지방을 넘어오기 바란다.

글. 전종혁 대중문화평론가 hubul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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