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1에서 이어짐) 24세 때 서울로 돌아온 오지은은 성신여대 근처 고시원에서 홀로 생활했다. 열병처럼 앓았던 사랑은 다시 음악을 하게 만들었다. 실연의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연극 연습실을 빌려 살풀이를 하듯이 곡을 써댔던 것은 노래만이 자신을 위로해주었기 때문. 1집 수록곡들은 대부분 그때 탄생했다. 어쿠스틱 콜트(cort) 기타를 구입해 쓴 최초의 노래는 ‘오늘 하늘에 별이 참 많다’이고 곡을 써 돈을 벌게 했던 최초의 곡은 ‘사계’다. 오랜 기간 스스로에게 부여된 “과연 내가 음악을 해도 되는가?”라는 의문부호는 그렇게 종지부를 찍었다.
고시원 생활을 청산하고 군에서 제대한 오빠와 사촌오빠와 함께 약수동에서 함께 살면서 정신적으로 안정을 찾아갔다. 노래에 대한 오랜 의심이 한순간에 사라지자 창작의 샘이 터졌다. 자연스럽게 앨범제작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스페인어로 the라는 뜻의 밴드 el을 결성했지만 멤버가 교체되면서 팀 이름은 ‘ON’으로 바뀌었다. 결국 2006년 건반 정재희와 함께 듀오 걸밴드 heavenly를 결성해 클럽 빵과 살롱 바다비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제17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love song을 불러 동상을 수상했다. 당시 은상은 남성듀엣 노리플라였다. “그때 건반으로 시도할 수 있는 록의 극한에 한 번 가보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재희가 미국 버클리로 유학을 떠나면서 팀은 자동으로 해체되었다.
2007년 상금 200만원을 종자돈으로 ‘싸사장’이란 별명을 얻게 된 인디레이블 사운드 니에바를 창립했다. ‘사운드 니에바’는 눈이 내리고 있는 소리란 뜻이란다. 눈이 내릴 때 소리가 나던가? 그녀다운 엉뚱 기발한 상상력이다. 스스로 레이블을 창립한 이유가 궁금했다. “어릴 적부터 어깨 너머로 보아온 음악 산업에 대한 경계심과 회사에 소속되면 특정 지점의 뮤지션이 되라고 강요할 것이 무서웠어요. 요즘은 이런 스타일이 장사가 되니까 넌 이걸 하라는. 이 노래는 19금이니까 타이틀곡으로 하면 안 된다는 뭐 그런 거. 간섭이 없는 상태에서 할 수 있는 한계까지 음악을 만들고 싶어 직접 레이블을 설립했습니다.”
오지은 1집은 전형적인 인디 시스템으로 제작했기에 가내수공업 방식으로 제작했을 것으로 오해받지만 정식으로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뛰어난 음질의 앨범이다. “1집은 건반 치는 박소정과 함께 했는데 아는 친구 스튜디오에서 도움을 줘서 거의 공짜로 한 프로를 5만원에 했어요. 믹싱은 미국 내쉬빌 스튜디오에서 했는데 모든 소리를 아날로그 릴테이프로 쐈다가 받았습니다.” 카메라 플래시 그림자가 그대로 나온 거친 느낌의 재킷 사진도 인디스러웠다. “1집 재킷 사진도 3집 사진을 찍은 홍상현이 촬영했어요. 그때 중형 필름 카메라로 찍었는데 후래쉬를 펑 쏘며 일부러 인위적인 조명 느낌이 나지 않게 했었죠.”
4판까지 제작한 1집은 여러 가지 버전이 혼재한다. 공연장과 한 곳의 음반 포털 사이트에서만 판매된 초반은 1000장을 제작했다. 흥미로운 점은 요즘 인디뮤지션들 사이에 유행처럼 각광받고 있는 소셜펀딩을 당시에 시도했다는 사실이다. 지은닷컴을 통해 공연 소식이나 데모 녹음 때마다 음원을 올리면서 주문 넣으면 보내주는 방식이었다. “당시는 소셜펀딩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어요. 별의 별 짓 다 하시네요라는 말도 들었죠.(웃음)” 포털 네이버 메인에 방에서 노래하는 그녀의 노래가 소개된 후 2-3일 만에 품절이 되었다. 그런데 오지은은 초반을 절판을 시키고 오히려 6개월 정도 뒤로 몸을 뺐다. “사람들이 내 노래를 좋아한다는 것이 이상했어요. 내밀한 개인의 이야기를 한 것인데 혼란스럽더군요. 반년 동안 고심한 후 진짜로 내 음악이 좋아 사서 듣고 싶은 거라고 결론 냈지요.(웃음)”1집에 담긴 그녀의 노래들은 귀가 닳도록 들었던 기존의 사랑노래와는 차별적 질감이었다. ‘화(華)’의 가사 중 ‘널 갈아먹고 싶어’라는 표현처럼 데뷔 시절 그녀는 과격하면서도 직설적인 표현으로 사랑을 노래했다. ‘홍대 여신’보단 ‘홍대 마녀’라는 별명에 고개가 끄덕여 졌던 이유다. “제가 싸사장, 홍대 여신, 홍대 마녀, 홍대 최고의 허벅지등 별명이 참 많아요. 그 중 멀쩡한 사람을 마녀라 부르는 게 처음엔 너무 싫었습니다. 이제는 소리의 마녀라는 좋은 개념이라면 그 별명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1집과 시와의 데뷔 EP는 인디음반으로는 드물게 3천장이 넘게 팔려나가며 그녀의 레이블은 인디음악계에 화제를 모았다.
음악적 상업적 성과를 거둔 이후 해피로봇 레코드에 소속되어 2009년 2집을 발표했다. 다채로운 밴드 사운드와 달콤 쌉?름한 가사는 호평을 이끌어냈다. 2010년 발표한 프로젝트 앨범 ‘오지은과 늑대들’은 단편극 같은 좌충우돌 연애 이야기를 다채롭게 노래해 2011년 1월 네이버 첫 번째 주 ‘이주의 발견‘에 선정되었다. 3집은 전작들에서 쏟아냈던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정리하는 개념의 앨범이다. 앨범을 들어보면 앞부분에 듣기 좋은 편안한 멜로디의 노래들이 배치되어 있고 뒤로 갈수록 실험적인 음악들로 이어진다. “1집냈을 때 죽기 전에 다 팔릴까. 누가 좋아나 할까 그런 마음이었어요. 제 노래가 효용가치가 있다는 걸 2집을 내면서 겨우 알았죠. 3집 준비하면서는 결국 나보다 남 좋으라고 음반을 낸다는 것과 적나라하게 전달하는 것이 듣는 사람에게 의미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죠.”그녀는 3집 준비를 위해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핀란드 헬싱키로 무작정 떠났다. 점점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일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곡 작업을 끝내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떠난 여행이었다. “여행하는 동안 캐롤킹의 ‘It’s Too Late’라는 곡을 듣고 절망적인 가사의 노래라 해도 듣는 사람이 불편해선 안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복잡한 내 상태를 받아들이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더군요.” 3집에는 대중성과 예술성을 넘나드는 보컬리스트 오지은의 탁월함을 증명하는 2곡이 있다. 연인사이인 스윗소로우의 성진환과 함께 부른 ‘테이블보만 바라봐’에서는 닭살이 돋을 정도로 사랑스런 보컬을 구사하지만 이언과 함께 부른 ‘물고기’에서는 다른 사람으로 느껴질 만큼 정반대의 쉬크한 보컬을 들려준다. 오지은의 사랑학개론 3부작에는 삶의 의미를 스케치한 ‘서울살이는’이라는 노래가 있다. 사랑노래가 아닌 새로운 오지은의 가능성이 느껴지는 노래다.
그녀는 가사를 쓸 때 사랑에 대한 노래를 의도적으로 쓴 적은 없다고 한다. “제가 믿고 있는 것이 뒤집힐 때가 있어요. 잘 만나다가 갑자기 내 짝이 아닌 의심의 씨앗 같은 거. 근데 이제 그런 치열한 경험이 끊겼어요. 지금 같은 평온의 상태가 깨져야 걸작이 나올 터인데 말이죠.(웃음)” 마지막 곡 ‘겨울아침’에서 그녀는 결국 누군가를 사랑할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한다. 사실 이문세의 노래처럼 ‘사랑은 때론 지겨울 때’가 있지만 송대관이 ‘세월이 약’이라고 노래했듯 시간이 지나면 또 갈망하게 되는 것이 사랑이다. 그녀의 사랑노래는 주로 여성들이 공감대를 형성하지만 남성들도 제법 듣는다고 한다. “2집까지는 솔직히 벌거벗을수록 멋있는 노래라고 생각했어요. 4년 동안 제가 속 시원해 지려고 만든 노래에 많은 여자아이들이 의미를 부여하는 걸 알게 되었어요. 내가 못하는 걸 저 언니가 속 시원하게 말해준다는. 그래서 제 홈페이지 방문록은 노래들으며 울었다는 비밀 글들이 많습니다. 남자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여자 입장에서는 밥 먹고 너는 나를 사랑하는지만 생각해요. 그런데 남자들도 군대에 가서 보초 서면서 제 노래를 듣는다는 이야기 들었습니다.”
그녀는 의외로 상처 잘 받고 주기도 싫어하는 여린 성격이다. 그래서 녹음할 때 기타리스트에게 자신의 요구를 말하지 못한다. “전달하고 싶은 게 많지만 오해 받고 상처 받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제 생각이 옳다는 확신이 들면 어떻게 전달하면 멋진 연주를 들려줄까 고민합니다. 일례로 1번 트랙을 연주한 고찬용 오빠에게 기타를 다시 쳐달라는 것은 초등학생이 대학생 논문에 아니라고 하는 격이죠. 10월에 연주 녹음을 받아 3개월이 지난 이듬해 설날에 ‘네가 있어서 좋아서가 아니라 씁쓸함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더니 너무 쉽게 ‘다시 칠께’하셔서 나는 왜 이렇게 찌질할까 생각했어요.(웃음)”
1집 지은 (2007) 사운드니에바, 2집 지은 (2009) 해피로봇, 오지은과 늑대들 1집 (2010) 해피로봇, 3집 3 (2013) 해피로봇(왼쪽부터)
2집까지 신보 제작에 들어가면 초반부터 감정의 폭풍에 휘말려 노래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번에는 작법에 변화를 주고 싶어 평온을 유지하려 노력했지만 소재가 줄어 고생이란다. “ 이젠 이 상황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되짚어 보기에 생각하는데 조금 더 오래 걸릴 뿐이에요. 그동안 폭풍처럼 사는 게 정답이라 생각했는데 너무 힘들기에 아닌 것 같아요. 정말 노래를 쓰기 위해 폭풍우 같은 삶을 산다는 건 존경할 일입니다.”그나저나 ‘널 갈아먹고 싶다’고 독을 품었던 20대 젊은 여자가 ‘너에 대한 나의 사랑이란 건 고작 이런 것’이라고 말하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까만 밤이 하얗게 변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짠해진다. 성숙한 모습으로 지나온 길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여유와 평온을 찾은 그녀에게 3집 아니 자신의 세 번째 사랑 이야기는 네 번째 이야기를 향해가는 과정일 뿐이다. 다음 앨범에서 그녀는 어떤 색의 사랑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하다. 그녀는 스스로를 의심과 잡생각이 많아 현명한 뮤지션은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음악을 해서 행복하단다.
오지은 프로필
1981년 9월 서울 출생
1996년 중3때 록밴드 Rumple stilt skin 리드보컬
2000년 고려대학교 서양어문학부 입학
2002년 일본 삿포로 어학연수/ 일어 번역과 통역시작
2006년 2인조 걸밴드 heavenly 결성
제 17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동상 수상
2007년 인디 레이블 sound nieva 설립
7월 EBS 스페이스공감 최초의 헬로루키 선정
10월 광명음악밸리 뉴커런츠 선정
12월 EBS스페이스공감 베스트 헬로루키 선정
1집 향뮤직 인디부문 올해의 앨범 선정
1집 음악취향Y 2007년 TOP 10 앨범, 최고의 신인뮤지션 선정
2008년 해피로봇 레코드 전속
2008년 11월 영화 순정만화 헌정음반 참여 “이게 바로 사랑일까?”
2011년 2집 네이버 1월 첫 번째 주 ‘이주의 발견‘ 선정
2013년 3집 네이버 5월 5주 ‘이주의 발견’ 선정
글, 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편집.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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