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하지 말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하셨어요. ‘절대 네가 가진 것보다 섹시하게 보일 수 없다. 억지로 야하게 표정을 짓지 말라’고요. 저도 같은 생각이었어요. 안무보다 어려운 것은 노래였어요. 목소리로 섹시함을 표현해야하는데 감정이 너무 안 잡히는 거예요. PD님이 녹음실 불을 끄고 감정을 잡으라고 하셨어요. 노래를 부르기 전에 머릿속으로 “미치겠어”라고 되뇌라고요…그런 퍼포먼스는 PD님만 하실 수 있는 것 같아요. 대단하신 분 같아요. 지금은 그냥 야한 아저씨지만. 이젠 삼촌도 아니야. (선미 텐아시아 인터뷰 中)
갑자기 선미가 솔로로 돌아올 줄 몰랐다. 그리고 이 정도로 변신한 모습을 보여줄 지도 몰랐다. 무대 위 선미의 퍼포먼스에서 원더 걸스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손 모양, 호흡을 하는 방식 등 기본적인 것부터 원더 걸스 때와는 달랐기 때문. 숨 가쁘면서도 섹시한 음색, 거의 무용에 가까운 강렬한 댄스, 요염한 눈빛은 핑크색 머리보다도 강렬했고, 당찬 모습 속에 교태가 있었다. 그러면서도 툭 치면 울 것 같은 여림도 보였다. 서로 다른 매력들이 무대를 채우면서 교차하면서 보는 이를 홀리게 했다. 물론 여기에는 온몸 멍이 들어 병원을 다닐 정도로 노력한 선미의 노력이 있었을 터.
선미가 돌아온다는 것은 화제였지만, 과연 그녀가 뭘 보여줄 수 있을 지는 의문이었다. 원더 걸스 당시에도 인기와 비중이 팀 내 다섯 명 중 3등을 넘지 않았다. 멤버의 개별 활동, 소위 ‘유닛’이라 불리는 활동은 팀의 팬덤이 확고할 때 던지는 카드다. 지금 원더 걸스의 팬덤을 봤을 때 결코 선미의 컴백이 ‘조커’나 ‘에이스’는 아니다. 더구나 앨범이 아닌 단곡 ‘24시간이 모자라’로 돌아왔다. 처음에는 노래 한곡으로 과연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퍼포먼스에 대해 호평이 이어졌고 차트 성적도 좋았다. 선미의 컴백이라는 ‘의외의 선택’과 어쩌면 박진영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여가수 메이킹’이 더해져 빛을 발한 셈이다. ‘결과론적으로 말해’ 이러한 선택이 정체기에 빠졌던 프로듀서 박진영을 다시 살리는 단초를 보여주고 있다. 설마 선미가 박진영의 ‘최종병기그녀’였을 줄이야?
선미가 처음 컴백을 한다고 했을 때에는 ‘박진영의 페르소나’일지, 아닐지에 초점이 맞춰졌다.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대표가 오랜만에 노래, 안무, 뮤직비디오, 의상 등을 철저하게 기획했다고 했다. 여성 가수에게서 성적인 매력을 끌어내는 데 일가견이 있는 박진영 아닌가? 하지만 무대를 보니 선미는 기존의 박진영의 여가수들과는 사뭇 달랐다.
박진영은 진주, 별, 임정희, 박지윤, 아이비 등 여러 여가수와 작업해왔다. 이들의 음악을 공통적으로 관통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소울, 훵크(funk) 등의 블랙뮤직을 가요로 체화시켰다는 것. 박진영은 블랙뮤직 중에서도 디스코로부터 파생된 댄스에 특화된 음악들을 주로 보여줘 왔다. 이는 여성가수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가령 박지윤의 ‘할줄알어’의 경우 내용 면에서 섹스를 노래하는 성애가(性愛歌)지만, 음악적으로는 전형적인 올드스쿨 훵크 곡이었다. 새초롬하게 ‘아무것도 몰라요’라고 노래하던 박지윤에게 ‘성인식’을 부르게 한 것보다도 전형적인 훵크 곡을 부르게 만든 것이 어쩌면 더 파격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성인식’이 파급력이 컸을 뿐.
이번 선미의 ‘24시간이 모자라’에는 블랙뮤직을 시도하거나, 억지스러운 섹시함을 부여하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처음 사랑에 눈을 떠서 모든 것이 다 설레고 감정적으로 고조된 상태가 된 여성’이라는 콘셉트에 충실했다. 선미의 새로운 매력을 끌어낸 것은 바로 퍼포먼스다. 무대에서의 퍼포먼스는 여성이 사랑(혹은 섹스)로 눈을 뜨는 스토리를 내재하고 있다. 무용을 방불케 하는 난이도를 갖고 있기도 한 이 안무는 비욘세의 ‘Single Ladies’ 안무를 맡았던 존테와 국내 유명 안무가 김혜랑, 김화영 등의 춤을 하나로 합친 결과물이다. 박진영이 기존에 하던 것처럼 스스로 안무를 짜지 않고 스페셜리스트들에게 맡긴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무조건 야하거나 따라 하기 좋은 동작을 하기 보다는 노래가 가진 내용을 몸으로 표현한 것이 선미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이러한 퍼포먼스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준 것은 선미가 원더 걸스 시절부터 가지고 있는 순수한 이미지다. 의상은 다소 과감하지만 선미의 표정은 깨끗하고 맑다. 선미의 말처럼 “나이에 맞는 맑고 깨끗함을 유지하면서 성숙한 여자가 돼가는 것, 섹시한 느낌도 있지만, 자신이 가진 것보다 과장된 섹시함은 아닌 것”이다.
뮤지션이 가진 매력을 잘 끄집어낸 선미의 케이스는 비록 노래 한 곡이지만 박진영 JYP 대표 프로듀서에게 있어서 하나의 동력으로 작용할만하다. 또한 미쓰에이 및 새 걸그룹이 선을 보이는 JYP의 하반기 방향성에 좋은 힌트가 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들이 나오기에 앞서 새 앨범을 발표하는 가수 박진영은 소속사 후배들에게 어떤 모범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아티스트로서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음악, 프로듀서로서는 대상 가수가 가장 잘하는 것을 끄집어내 주는 것이 모범답안일 것이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JYP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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