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을 부탁 받았는데 제목을 “뭘봐?”로 정했다.

그동안 내가 “뭘봐?”라는 말을 자주했기 때문이다. 아니, 지금도 가끔 하고 있다.
“뭘봐?”라는 말의 뜻은 “무엇을 보십니까?”라는 뜻이다. 그러니깐 “나를 무엇으로 보냐?”라고 묻는 것이다.
내가 “나의 무엇을 보냐?”고 물어볼 만큼 민감하게 반응한다는건, 나의 이것만은 보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일꺼다.
그렇다면, 무엇을 보여주기 싫었기에, “뭘봐?”하며 신경질을 냈을까? 내가 보여주길 싫었던 것은 분명 내가 타고 있는 휠체어일것이다.“나의 무엇을 보냐?” 내 얼굴? 내 몸? 내 옷차림? 이런 것을 보지않고 나의 휠체어만 보고 있을 것이라는 착각을 하고 “왜 휠체어만 보냐?”하며 사람들에게 인상을 썼다.

내가 장애인이 되기전에 장애인을 쳐다보며 불쌍하게 봤듯이, 누군가 나를 불쌍하게 볼것이란 생각에 “뭘봐?”라고 외치고 있었던거다.

2000년 11월9일 낮2시경에 났던 교통사고. 당시 내 몸의 목뼈(경추1번) 등뼈(흉추3.4번) 갈비뼈, 오른쪽 대퇴부 등 많은 곳에 골절있었기에난 약2달간 침대에 누워만 있었고 그후 하반신마비 판정을 받았다. 재활치료를 위해 목뼈부분에 필라델피아(목뼈고정대)를 하고 재활치료를 받았다. 재활치료실에 들어가면 그곳에 있는 간병인,치료사, 심지어는 같은 장애를 가지고 치료를 받는 환자들까지도 날 쳐다봤다.보호자들도 자기 아들,딸,부모가 치료를 받는 것보다 내가 치료받는 걸 더 궁금해 했다.
그런 관심 때문에 짜증이 나서 필라델피아(목뼈고정대) 뒷부분에 매직으로 크게 “뭘봐”라고 써놨다.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치료받을 때 마다 항상 인상을 썼고, 다른 환자가 가볍게 인사만 해도 “뭘봐요? 왜요?”하며 짜증내던 나의 모습…그때 함께 치료 받았던 재활병동 환자들과 보호자, 간호사, 치료사들은 아마 다들 기억할것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뭘봐?”라고 소리치며 화내고 짜증냈던 이유는 날 불쌍하게 보는 시선이 싫기도 했지만 내가 장애를 갖게 되어 힘들어하는 모습, 앞으로 평생을 대소변도 못가리면서 휠체어에만 의지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내가 처한 이런 상황을 이해해달라는 마음도 있지 않았을까?
사고 전, 난, 장애인은 불쌍하다, 능력없다, 누구의 도움만 받고 살아야한다, 숨어서 살아야한다는 식의 편견을 갖고 있었기에다른 사람들도 나를 그렇게 볼것 같아서 “불쌍하지 않다.나 혼자서도 할 수 있다”며 사람들의 시선을 거부했던 것이다.병원복도에서 만난 문병 온 여학생들이 날 보며 웃는것 같길래 내가 “뭘봐? 장애인 첨봐?”라고 반말로 화를 낸적이 있었다. 그 여학생이 “죄송합니다 아저씨. 근데요. 저희들 아저씨보고 웃은게 아닌데요. 아저씨는 괜한 피해의식이…” 라며 말끝을 흐렸다.
피해의식, 그렇다. 그 여학생의 말처럼 난 피해의식이 있었던거다. 여학생들은 날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말이다.사람들이 날 불쌍하게 보며 동정할 것이란 피해의식 때문에 일부러 강해 보이려고 인상을 쓰고 있었던거다.그때 난 “사람들이 날 쳐다보는게 있는게 아니라 내가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지금 누가 날 불쌍하게 쳐다볼까? 누가 날 능력이 없다고 말할까?

사람이 사람을 볼땐 상대방의 특징과 개성을 찾는다 한다.
어떻게 보면 장애도 하나의 특징이고 개성이다. 단점일수도 있지만 장점이 될수도있는 개성.
그런 개성을 “무섭다.징그럽다. 불쌍하다.아무것도 못할꺼야.저렇게 사느니 죽는게 나을꺼다”라고 나 혼자 생각했던거다.
누군가 나의 장애를 불쌍하게 봤더라도 내가 먼저 웃으며 나의 장애는 나의 장점이라 설명 했다면 어땠을까?
“뭘봐? 장애인 처음봤냐?”라며 소리치며 짜증내고 내 자신을 숨기고 보여주기 싫었던 것들이 뭐가 있었는지 휠체어 탄 지 12년이 넘은 지금. 천천히 보여줄까 한다.



휠체어에 몸을 맡긴지 12년
그동안 넘어진적 많고 포기한적 많고 화내고 눈물도 많이 흘렸지만
그때 마다 다시 일어나려 노력했고 지금도 노력중이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난 강원래다.

사진제공. 스튜디오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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