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분한 주말 오후, 잠시 헌책방에 들렸다가 몇 권의 책을 발견했다. 그 중에 두 권의 책이 내 호기심에 슬슬 발동을 걸었다. 카페에 앉아 단숨에 이 책들을 읽다 보니, 아날로그적 정서에 푹 빠져들었다. 한 권은 강상중의 청춘독서노트 였고, 또 한 권은 샘 쉐퍼드의 희곡 였다. 전자는 의 저자 강상중이 젊은 시절에 읽은 책을 경유해 자신의 추억과 열정을 좇는 작업이었고, 후자는 1979년 퓰리처상과 오프 브로드웨이 흥행(두 마리의 토끼!)을 거머쥔 연극이었다. 강상중과 샘 쉐퍼드. 둘 다 젊은 시절의 고뇌와 호기가 충만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저주 받은 시대를 살아가는 힘을 이들에게서 얻고 싶어졌다. 그래서 곧장 이들의 다음 작업으로 시선을 옮겼다. 때마침 그들의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강상중의 와

강상중의 는 여행서가 아니다. 도시 인문 에세이라는 표현이 가장 적합하다. 심도 있는 책은 아니지만 도시와 삶에 대한 악센트가 있다. 가볍게 책을 넘기다 보면 잠시 도쿄에서 방황하는 느낌마저 든다. 굳이 도쿄가 아니더라도, 서울 한복판에서 비일상적인 공간을 찾고 싶은 욕망을 선동한다. 강상중에게 분명 도시는 타자를 만나는 장소다. 도시는 그의 정체성을 고민하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즉 “도시는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는 주장의 의미를 발걸음에서 찾을 수 있다. 점점 원자화되는 세상을 바라볼 때, 가장 절실한 것은 역시 도시 속에서 온기를 찾는 작업이다. 개인적으로는 도쿄에 처음 갔을 때 흥미로운 곳이 진보초의 고서점가였다. 여기서 책을 고르던 추억 때문인지 그의 진보초 산책이 부럽기도 했다. 3.11 대지진 이후의 도쿄에 대해 어떤 고견을 내놓을지 궁금했지만, 2011년 책이라서 3.11 이전의 도쿄만이 담겨 있다. 아직 불안을 머금은 도쿄는 없다.
연극 中


강상중을 서점에 만난다면, 샘 쉐퍼드는 혜화동의 연극 무대에서 찾을 수 있다. 영화광들에게 시나리오로 잘 알려진 배우 쉐퍼드는 사실 가정 3부작을 만든 극작가이기도 하다. 가족들의 육체적 기아를 다룬 , 빛바랜 아메리칸 드림을 썩어가는 시체로 표현한 그리고 한 가족의 붕괴를 통해 옛 서부의 죽음을 부각시킨 가 있다. 그의 작품에서 미국 중산층 가정의 와해가 일관된 주제다. 공연 중인 는 유진 오닐의 연극처럼 비극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블랙 코미디적인 요소가 강하다. 사막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아온 방랑자 형과 시나리오 작가 동생의 이야기다. 오스틴은 갑작스런 리의 출연으로 극단적인 히스테리를 분출한다. 성격이 다른 형제의 충돌은 시종일관 웃음을 일으킨다. 이 역설적인 웃음은 중독성을 꽃피운다. 또한 부조리하면서도 난해하지 않다. 형제는 대학로 SM아트홀에서 5월 5일까지 전쟁을 펼친다.

조르류 루쓰의
헌책방만큼이나 좋은 공간을 찾는다면, 전에서 잠시 마법에 걸리는 것도 좋다. 조르쥬 루쓰는 텅 빈 공간에 드로잉 작업으로 환상을 일으키는 조형사진작가다. 3차원 공간을 2차원으로 표현하며, 건축적 구조물과 착시를 활용해 환영과 실재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그의 사진은 닫힌 공간을 열고, 열려있는 공간을 닫는 시각적 모험이다. 우연을 포착하는 브레송의 사진 작업을 결정적 순간이라고 칭한다면, 조르쥬의 작업을 시적 순간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다. 그는 “사진이 현실로 만드는 새로운 꿈을 품기 위하여 장소는 낡은 껍질을 벗는다”고 말한다.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알고 싶다면,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뿐만 아니라 음악분수광장에 만들어 놓은 피라미드를 멀리 측면에서 직접 보기 바란다. 기존의 공간을 픽션으로 탈바꿈하는 신비한 조작에 탄성이 나올 뿐이다. 현재 예술의 전당에선 연극 가 공연 중이다. 무대의 갈라짐을 통해 안티고네(김호정)의 죽음을 비극적으로 표현한다. 루쓰와 안티고네의 파격. 두 공간을 같이 본다면, 즐거움 또한 두 배가 된다.



글. 전종혁 (대중문화평론가) hubul2@naver.com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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