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배우 최재웅
처음 그를 본 것은 김명민의 메소드 연기가 화제가 됐던 영화 때 였다. 당시 그는 김명민이 연기한 주만호의 동생, 주성호 역을 맡았다. 분량은 작았지만 기억에는 꽤 또렷이 박혀있었다. 역경의 마라토너(페이스 메이커), 주만호 만큼이나 주성호의 인생도 노곤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에게 차츰 집중하게 됐다. 아주 작은 배역이었음에도 낯선 얼굴의 이 배우는 관객의 눈길을 머물게 하는 잔잔한 힘이 있었다.그러나 솔직하게 말하면 그로부터 1년이 지난 뒤에는 그를 잠시 잊고 살았다. 그러다 문득, 예상치도 못한 공간에서 다시 그를 발견하게 됐고, 혼자 반가워했다. 케이블채널 OCN (이하 TEN2)에서 겉은 완벽하지만, 두 여인의 참혹한 살인사건과 연관된 또 다른 얼굴을 가진 신영근 교수로 등장했던 최재웅이 더욱 반가웠던 것은 잔잔하지만 세찬 파도가 느껴지는 얼굴과 퍽 어울리는 배역을 맡았기 때문이다. ‘우음도 살인사건’이라는 하나의 에피소드에 등장한 그는, 이번에도 짧지만 강렬한 한 방을 보여줬다.그리고 마침내 뮤지컬 로 무대에 선 그를 목격했을 때는 그의 매력이 한껏 분출하는 모습에 아낌없이 환호했다. 마치 아이돌 스타의 소녀팬처럼 그에게 열렬한 찬사를 보내기 시작했다.
Q. 뮤지컬 배우니까 너무나 당연한 것일 텐데, 목소리가 너무 좋더라. 무대로 시작했지만, 실은 영화를 통해 먼저 보아서 그런가. 무대에서 노래하는 최재웅의 모습이 본인에게는 당연할지언정, 새로우면서도 감격스러웠다. 본인의 목소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최재웅 : 글쎄. 대학 동기 중에 목소리가 안 좋은 친구가 성우가 되는 것을 보고 내 목소리가 좋구나 생각했던 적은 있다(웃음). 실은, 농담이다. 그 친구 목소리 정말 좋다. 정정한다. 아무튼, 한예종 동기들이 다 목소리가 좋다. 그러다보니 나도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아마 그때부터 목소리 좋은 친구들을 따라 해보려고 노력하기도 했다.Q. 그 성우가 됐다는 친구는 누군가.
최재웅 : 성우 최지훈. 돈 잘 번다.
Q. 옆으로 새는 질문이긴 한데, 배우 생활은 경제적으로 불안정하니까 그 친구를 보거나 혹은 다른 사회생활을 하는 친구들을 보며 후회한 적은 없을까.
최재웅 : 난 돈 욕심은 없다. 벌면 벌고 말면 마는 스타일이다. 그래도 이제 결혼도 했으니 벌어야 하긴 하지만. 아무튼 돈 보다는 재미있게 사는 게 더 중요하다.
에서 인상깊은 연기를 펼친 최재웅
Q. 그런데 마스크는 말이지.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인생기조와는 달리 꽤 엘리트적이다(웃음). 그래서 때는 외교관, 에서는 교수 역을 맡았나 보다.최재웅 : 엘리트 전문? 하하. 몰랐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렇다.
Q. 이러다 실장님 전문 배우로 전향하는 것 아닌가 몰라.
최재웅 : 그럴 리가(웃음).
Q. 배우가 된 계기도 재미있더라. 인문계가 가기 싫어서 예고를 갔었고, 그래서 연기를 하게 됐다고.
최재웅 : 계기는 그게 맞다. 그리고 예고는 놀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공부를 시키는 학교도 아니고 고등학생이 연극하고 뮤지컬 하니까 엄청 놀았다. 남들이 야자할 때 우리는 노래 연습하고 공연 보러 다니고 그랬으니까. 다시 생각해봐도 그런 천국은 없다. 그런데 한예종에 진학한 뒤로는 ‘헉’ 했다. 재미는 있었지만 수업이 너무 많더라. 오전 8시부터 저녁 7시까지, 공강도 없이 학교에서 살았다.Q. 처음 연기가 어렵다 절감한 순간도 그렇다면 대학 재학 시절인가.
최재웅 : 대학재학 시절도 그랬지만, 졸업하고 운 좋게 이라는 작품을 하게 됐는데 그곳에 오래 활동하신 선배님들이 많이 계셨다. 이후에도 라는 작품에서 선배들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너무 편안하게 연기하시는데, 20대 중반인 내게는 그게 어떤 신의 경지 같다 여겨졌다.
Q. 도드라지는 연기보다는 아무렇지 않게 편안한 몸짓이 실은 가장 어려운 연기이니까, 그렇게 여길 법도 하다. 그런데 한예종 출신들은 연기를 참 잘한다. 늘 궁금했던 부분인데 한예종 커리큘럼에는 특별한 게 있나.
최재웅 : 자연스러운 것에 치중돼 있긴 한다. 일상적인 대사와 상황이 많은 안톤 체호프 작품으로 워크샵을 하기도 한다. 또 움직임 수업이라고 몸 쓰는 수업이 많다. 그 수업 덕분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그리 특별한 것은 없다. 대학교 수업은 비슷비슷하다.
Q. 계원 예고 동기들 중에는 조승우, 김다현처럼 꽤 유명해진 친구들도 있다. 그런 친구들과 만나서 연기 이야기를 하진 않겠지(웃음).
최재웅 : 당연하다. 옛날 친구들 만나면 다 쓸데없는 이야기뿐이다. 건설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야구 이야기가 가장 많은 지분율을 차지한다. 나이가 들면서 서로 위해주고 칭찬해주는 비율이 늘긴 했지만.Q. 는 어떻게 출연하게 됐을까. 최재웅의 얼굴과 차가운 기운은 퍽 잘 어울리더라.
최재웅 : 갑자기 연락을 받고 찍게 됐다. 의 PD님이 내 공연을 보셨다고 하더라. 갑자기 연락을 받았기에 준비를 할 시간이 길지 않았다. 대본만 열심히 봤다. (옆에 있던 소속사 관계자가 ‘저렇게 말은 하지만 실은 굉장히 공을 들여 준비했다’고 귀띔했다)
에 출연 중인 배우 최재웅
Q. 열심히 준비했으면서 못했다고 하고, 대본만 열심히 봤을 뿐이라고 말하는 건 마치 ‘어제 공부 못 했어’라고 해놓고는 시험은 1등하고 ‘교과서만 봤을 뿐이야’라고 말하는 얄미운 우등생을 보는 느낌이다.최재웅 : 순간 집중력이 강한 편이긴 하다. 그래도 정말 3일 준비하고 갔다. 대본에 어려운 용어도 많고 외우느라 고생했다. 또 주상욱 씨와 심리전을 펼치는 신이 있는데 밀도가 높은 신이라 잘 표현하려면 호흡이 잘 맞아야 했다. 비록 내가 속한 곳은 아니었지만 현장 분위기가 워낙 좋아 그런 면에서 도움을 받기도 했다.
Q. 영화 으로는 그해 한국 영평상 등에서 신인남우상을 받기도 했다.
최재웅 : 그 뒤로 다른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고, 사람들이 이제는 상을 받았다는 사실조차도 잘 모르니까 그런 말을 들으면 요즘은 민망하다.
Q. 소속사에서는 앞으로는 TV나 영화에 집중시키고자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아무래도 오래 머물러 무대가 더 편하긴 한 것 같다. 무대 위의 최재웅은 정말이지 훨훨 날고 있더라.
최재웅 : 그렇다. 공연의 경우, 많이 해봐서 그 흐름을 아니까 비교적 여유롭게 할 수 있다. 그러나 TV나 영화는 아직 여유가 없다. 그쪽으로 경험이 많은 것도 아니고, 눈치 보면서 열심히 배우는 단계다.
Q.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강점은 무엇인가.
최재웅 : 요즘은 배우들도 자연스럽게 하려고 노력하는데, 아직은 공연 연기는 다소 오버스럽게 표현되는 연기가 많다. 나의 경우에는 라이센스 뮤지컬을 많이 안 해서 그런지 몰라도 무대에서도 연기가 좀 자연스러운 것 같다. 편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기도 하고. 실은 과 같은 공연은 너무 과하게 표현하면 이상하게 보이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런 연기가 맞는 공연도 있지만 말이지.
Q.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
최재웅 : 목표를 두고 사는 스타일은 결코 아니다. 흘러가는 대로 살자 주의다. 하고 있는 것을 잘 하고 있으면 결과는 따라오겠죠라는 그런 주의다.
글,편집.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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