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입국 노동자들을 분당으로 실어 나른 남자가 원인불명의 바이러스에 감염돼 사망한다. 환자가 사망한지 채 24시간이 되지 않아 분당의 모든 병원에서 동일한 환자들이 속출한다. 호흡기를 통해 초당 3.4명 감염, 36시간 내 사망에 이르는 사상 최악의 바이러스는 ‘감기’, 이에 정부는 2차 확산을 막기 위해 감염 발발 도시 분당을 폐쇄한다. 피할 시간도 없이 격리된 사람들은 일대혼란에 휩싸이고, 대재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사람들의 사투가 시작된다.

황성운 : 지나친 욕심이 만들어낸 과잉 범벅! ∥ 관림지수 5 / 캐릭터매력지수 5 / 감기처방지수 5
정시우 : 반면교사 삼아야 할 캐릭터들∥ 관람지수 4 / 캐릭터매력지수 4 / 감기처방지수 4황성운: 첫 단추부터 모든 게 예상 가능하고, 한 치의 벗어남도 없이 정해진 길을 그대로 따라간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전형적이고, 어떤 인물의 행동은 설득력마저 떨어진다. 너무나도 익숙한 감기가 주는 공포를 다루고 있지만 아쉽게도 감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계속 다른 이야기를 건드린다. 또 후반부에 들어 과도하게 ‘전작권’(전시작전통제권)을 물고 늘어지는 것도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과도한 욕심이 만들어낸 ‘과잉’이 이곳저곳에서 보인다.

치명적 감기 바이러스의 원인은 밀입국자란 단순한 설정 아래 영화는 시작된다. 치명적 바이러스에 노출됐을 때의 사람들의 반응과 대처 그리고 혼란 등을 보여주는데 중심을 뒀다. 그러면서 이야기의 갈래가 여러 곳으로 퍼진다. 구조대원 지구(장혁)와 미르(박민하) 그리고 감염내과 전문의이자 미르의 엄마 인해(수애)를 중심으로 불법 밀입국자 운반책 병기(이희준), 대통령(차인표), 지구의 동료 구조대원 경업(유해진)과 전직 고위 군관 국환(마동석) 등 바이러스에 맞닥뜨린 모든 인물들은 각기 다른 이야기를 품고 달려간다. 하지만 여러 갈래의 이야기들이 유기적인 연관성 속에 하나로 모이질 않는다. 각기 갈 길을 그냥 갈 뿐이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과 행동들이 계속해서 튀어 나온다. 그러면서 집중도도 떨어진다.

각 캐릭터의 설정과 연결고리도 느슨하다. 촘촘하지 못한 인물들의 관계와 설득력 부족한 행동들이 가득하다. ‘그 상황에서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그러다 보니 어느 한 인물에 감정을 쏟기도 애매하다. 지구가 미르를 그토록 지켜주려고 하는 이유, 잘 모르겠다. 병기도, 경업도 이해 안 되긴 매한가지다. 영화의 핵심과 무관해 보이는, 과도한 욕심이 만들어낸 이야기들도 아쉬운 점이다. 더욱이 식상하다. 사람들이 격리돼 있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나 무책임하고 무능하게 그려지는 정치인들의 모습 등 별다른 감흥을 느낄 수 없는 장면들이 곳곳에 있다. 또 수많은 엑스트라를 동원하고, 전투기를 띄우는 등 제법 큰 스케일을 보여주지만 효율적인 면에선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스케일처럼 느껴진다.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분당 폐쇄를 놓고, 한미가 격돌하는 후반부에 들어서는 ‘전작권’ 문제를 대놓고 들이댄다. 가벼운 언급 정도가 아니라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장황하게 이어진다. 영화의 핵심인 감기마저 약해졌다. 더 중요한 건 ‘전작권’을 들이대는 과정이 그다지 매끄럽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 의도는 이해하겠으나 세련되지 못한 방법이다. 꼭 하고 싶은 말이었다면 좀 더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차라리 다른 이야기에 좀 더 집중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정시우: 감기라는, 일상에서 가장 흔하게 접하는 질환을 공포로 치환하려는 이 영화의 착상은 영리하다.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과정을 쫓는 속도감이 좋고, 소각장에서 ‘살처분’ 되는 인간 시체들의 이미지가 강렬하며, 한국영화 단골메뉴인 가족신파와 코미디도 잊지 않고 챙겼다. 게다가 최근 진짜사나이로 거듭난 장혁과 연기력과 대중성을 동시에 갖춘 배우 수애, 관객들로부터 두터운 신뢰감을 쌓은 유해진 마동석 이희준까지. 한마디로 더위를 피해 극장을 찾는 관객들의 호기심을 살만한 기본조건은 갖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치명적인 실수만 없다면, 중간은 갈 영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감기’는 이 각각의 요소들이 서로를 팽팽하게 견주거나, 튼튼하게 뒷받침해주지 못하고 따로 흩어져서 우왕좌왕한다. 재난이 주는 공포, 집단 이기심, 일촉즉발 상황에서의 한-미간의 갈등 등 하고 싶은 말들은 많은데 그 이야기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지는 잘 모른다. 기존 재난 영화들에서 봤음직한 공식들을 무리하게 끼워 맞춘 결과 개연성도 매력도 획득하지 못하고 좌초한 느낌이다.에피소드들이 겉도는 ‘감기’는 극 후반엔 심지어 감기라는 소재에 대해 어정쩡한 자세를 취한다. 강대국에 맞서는 한국의 민족적 자긍심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보여주기 위해 감기라는 소재를 빌려온 게 아닌가란 인상마저 인다. 전시작전통제권을 두고 벌이는 대한민국 대통령(차인표)과 미 대표간의 갈등이 클라이맥스를 꿰차더니, 이들의 갈등이 봉합되자 영화는 별 다른 문제의식 없이 서둘러 막을 내린다. 감기 바이러스에 대한 묘사는 뉴스속보 하나로 짧게 언급되고 말 뿐이다. 사건은 크게 벌려놓고, 그에 대한 결과는 제대로 수습하지 않고 어물쩍 넘어가는 이 영화의 화술은 영화 전체의 완성도를 현격하게 떨어뜨린다. 주객이 전도됐다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일 거다.

놀랍게도, 이 영화의 치료를 힘들게 하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는 또 있다. 바로 캐릭터다. 자식 앞에서 이기적이 되는 어미(수애)의 극심한 모성이 이해 안 되는 바는 아니지만, 이것이 비슷한 방식으로 반복되면서 여자주인공을 민폐캐릭터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국민의 안전을 우선하는 소방대원(장혁)의 정의감엔 박수를 보내지만, 과하다 싶은 친절은 때론 오지랖 넓은 사람으로 보이는 답답함을 준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성을 반쯤 놓고 있는 마동석과 이희준 캐릭터도 개연성에 있어 심각한 결격사유다. 기본기 좋은 배우들의 연기는 아쉽게도, 허망한 서사와 엉성한 캐릭터 안에서 납작해져 버렸다. 이 영화의 인물들은 앞으로 나올 재난영화 캐릭터들의 ‘반면교사’로 삼을만하다.

‘감기’는 ‘비트’ ‘무사’ 등으로 굵직한 흔적을 남겨 온 김성수 감독이 ‘영어완전정복’ 이후 10년만에 내놓은 작품이다. 젊은 감각으로 주목받았던 감독의 지난날을 떠올려 보면, 다소 ‘올드’해져 버린 시선이 내심 아쉽다. 극중 미군에 붙은 국무총리가 대통령에게 “참, 답답하십니다!”라고 쏘아붙이는 (믿기 어려운) 대사를 나오는데, 어쩌면 이건 너무 많은 것을 우겨 넣으려고 한 이 영화에 더 적합한 말인지도 모른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