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숨바꼭질’ 포스터

성공한 사업가 성수(손현주)와 그의 아내 민지(전미선)는 두 아이와 고급 아파트에서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그는 지독한 결벽증을 갖고 있고, 거기엔 형에 대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 어느 날 그는 인연을 끊고 살다시피 하던 형의 실종 소식을 듣는다. 형의 행방을 쫓던 그는 형이 살던 아파트 집집마다 새겨진 정체불명의 암호를 발견한다. 또 형 얘기에 유독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주희(문정희)도 이상하다. 별다른 단서를 찾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 성수는 자기 집 초인종 옆에서 정체불명의 암호를 보게 된다. 14일 개봉.

기명균 : 평범해서 더 무서운 무대, 집에서 펼쳐지는 소름끼치는 숨바꼭질. ∥ 관람지수 7 / 공포지수 8 / 반전지수 7
황성운 : 호기심 가득하게 시작해 어설프게 막 내린 숨바꼭질. ∥ 관림지수 6 / 공포지수 8 / 반전지수 6기명균 : 영화를 본 지 한 일주일 지나서였나, 악몽을 꿨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반. 내 방 침대 위였다. 평소였다면 안심하고 다시 잠을 잤을 테지만, 그날따라 두려움은 가시지 않았다. 누군가 ‘야쿠르트 아줌마’를 가장하고 문을 두드리지 않을까. 잠긴 문을 억지로 열려 하지 않을까. 헐거워진 도어락이 내 믿음을 저버리고 문을 활짝 열어주지 않을까. 결국 침대에서 일어나 이중 잠금장치까지 잠갔다. 잠그고 침대로 오는 그 짧은 길에 또 다른 불안이 솟아났다. 집 안에 누군가 숨어 있지 않을까. 옷장 속에 웅크리고 앉아 섬뜩한 미소를 흘리고 있지 않을까. 좁은 방이라 다행히 사람이 숨을 만한 공간은 많지 않았다. 몇 군데 들춰보고 나서야 조금 편한 마음으로 다시 잠들 수 있었다. 다음 날 출근하는 길에 문 옆을 슬쩍 쳐다봤다. 동그라미, 세모, 네모 등의 암호는 없었다. 괜히 안심이 됐다. 이게 다 ‘숨바꼭질’ 때문이다.

‘충격 실화 스릴러’를 표방하지만 영화는 호러에 가깝다. 귀신이나 좀비 없이도 관객의 두려움을 자극한다. 잔인한 장면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소름이 돋는다. 가장 안전한 곳으로 여겨지던 집을 스릴러의 무대로 삼은 것이 주효했다. 집을 드나들 때마다 누군가 우리 가족과 집을 지켜보고, 가족들의 나이와 성별을 의미하는 암호를 초인종 옆에 새긴다. 관객들도 본인의 입장에 충분히 대입해 볼 수 있는 현실적인 공포다. 무대 세팅부터가 탁월하다. 검은 헬멧으로 얼굴을 가린 가해자의 이미지 설정도 불안감 형성에 한몫했다. 그는 결정적인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헬멧 속에 표정을 감춘 채 가만히 서 있을 뿐이다.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헬멧 때문에 표정조차 보이지 않는다. 상대방으로서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가장 무서운 법. 정체를 숨기기 위해 쓴 헬멧이지만, 그 덕에 관객들의 두려움은 배가됐다.

‘숨바꼭질’이 장편 데뷔작인 허정 감독은 신인임에도 세련되고 독특한 연출을 선보이며 공포를 끌어올린다. 영화 초반, 혼자 사는 여자의 집에 숨어든 ‘검은 헬멧’은 CCTV를 통해 처음 모습을 드러낸다. 여자는 화면으로 그를 보고 있지만 실제로 그는 눈앞이 아니라 등 뒤에 있다. 그래서 더 무섭다. 성수가 갖고 있는 결벽증과 길거리 노숙자의 기행(奇行)을 대비시키고, 얼굴에 흉터가 있는 형과 ‘검은 헬멧’을 쓴 침입자를 연결하는 등 사소한 디테일도 허비하지 않는다. 이야기의 반전이나 마무리 과정에서 허점이 있긴 하지만. 이 영화의 또 다른 성과는 배우 문정희의 발견이다. 꾀죄죄한 분장을 하고 좋은 집과 딸에 집착하는 주희는 ‘연가시’에서의 변신 폭을 훌쩍 뛰어넘는다. 성수를 연기한 손현주가 상대적으로 무난해 보일 정도다.
영화 ‘숨바꼭질’ 스틸

황성운 : 무섭다. ‘우리 집에 낯선 사람이 숨어 살고 있다’는 게 이렇게 무서울지 몰랐다. ‘숨바꼭질’을 보고 나면 아마도 초인종 주위를 살펴보지 않을까 싶다.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아니 실제 현실에서 발생한 사건을 토대로 한 덕분에 생생한 ‘공포감’을 전한다. 분명 어설픈 지점이 곳곳에 보인다. 초반 차곡차곡 쌓아왔던 탄탄한 구조도 중반 이후부턴 다소 허술하고, 덜컹거린다. 하지만 분명한 건 안락한 집이 만들어내는 무서움은 탁월했다는 점이다.

‘숨바꼭질’은 호기심 가득한 출발을 알린다. 가족에 대한 비밀과 결벽증을 보이는 성수(손현주), 기이한 행동거지를 보이는 주희(문정희)와 딸 평화(김지영) 그리고 성수의 아내 민지(전미선)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 등 초반에 등장하는 캐릭터들도 꽤나 흥미롭다. 다들 뭔가 비밀을 품고 있는 듯하다. 무엇보다 아파트, 재개발을 앞둔 허름한 아파트가 품고 있는 오싹함이 상당하다. 실종된 형을 찾기 위해 아파트 곳곳을 살피는 성수의 시선으로 보여 지는 아파트는 그 자체로서 하나의 캐릭터 이상의 역할을 해 냈다. 초반 이야기의 흐름도 좋은 편이다. 성수, 주희 그리고 정체불명의 존재까지 등장하는 모은 인물들이 얽히고설키면서 긴장감과 궁금증을 유지한 채 빠르게 흘러간다.

하지만 이 같은 장점은 중반 이후로 무뎌진다. 전반과 후반, 두 개의 이질적인 이야기를 다소 무리하게 하나로 묶어 놓은 듯하다. 초반부 흥미로웠던 설정과 캐릭터가 중반 이후부터는 보이지 않는다. 또 호기롭게 펼쳐놨던 이야기도 충분한 설명 없이 지나간다. 가족에 대한 비밀을 안고 있는 성수의 이야기도, 자기 집에 유달리 집착하는 주희 모녀의 이야기도 서둘러 매듭짓는다. 충분한 설득력이 갖춰지지 않은 채 오로지 ‘성수 vs 검은 헬멧’의 대결에만 초점을 맞춘다. 긴장감 넘쳐야 할 이 대결 구도가 밋밋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검은 헬멧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의 쾌감과 충격도 아주 잠시 뿐이다. 또 쫓고 쫓기는, 육탄전이 펼쳐짐에도 분위기로만 손에 땀을 쥐게 했던 전반부의 느낌을 제대로 이어 받지 못했다. 대중들이 어떻게 판단할진 모를 일이지만, 후반부 흐름에 좀 더 공력을 쏟았다면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배우의 균형도 한쪽으로 쏠린다. 문정희의 강렬함은 꽤나 놀라운 반면 손현주는 전체적으로 감정을 억누른 탓에 두드러지지 않는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기명균 kikiki@tenasia.co.kr
사진제공.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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