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드라마냐고 물어봤는데 아니라고 하더라” MBC 일일 드라마 <살맛납니다>에 참석한 권오중은 연출자 김대진 감독에게 이 작품이 ‘막장 드라마’가 아니라는 말을 듣고서야 <살맛납니다>의 출연을 결정했다고 한다. ‘막장 드라마’는 어느덧 배우의 출연 여부를 가르는 기준이 된 것이다. 19일 서울 마포 베스트웨스턴 프리미어 가든 호텔에서 제작발표회를 연 <살맛납니다>는 노골적인 ‘막장 드라마’였던 같은 시간대의 전작 MBC <밥줘>와의 차별화를 선언하며 시작한 작품이다.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김유미, 이태성, 권오중, 홍은희, 김성은, 오종혁 등 연기자들은 한 결 같이 <살맛납니다>를 “따뜻한 드라마”라고 말했고, 김대진 감독은 “끝날 때까지 모든 사람들이 보고 웃을 수 있는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출연료 자진 삭감까지 하며 참여하는 작품

젊은 세 커플과 중장년층 세 커플이 결혼과 이혼을 겪는다는 <살맛납니다>의 스토리는 얼핏 보면 ‘꼬고 또 꼬인’ 관계를 부각한 드라마처럼 보인다. 하지만 김대진 감독은 이 커플들을 통해 “세대별, 계층별로 다른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려 했다”고 말했다. 평생을 금슬 좋게 살아온 부부부터 경제적 이유로 이혼의 위기에 놓인 부부, 원치 않은 아이로 결혼해 서로의 소통에 문제가 생긴 부부, 그리고 늦은 나이에 가진 것 없이 만난 연인 등 다양한 유형의 사람과 사랑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젊은 출연진들 외에도 박인환, 고두심, 김일우, 임예진, 임채무, 박정수 등 유명 중견 배우들이 대거 출연할 수 있었던 것은 드라마의 내용에 반한 출연진들이 출연료를 삭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만큼 제작진과 출연진 모두 드라마의 방향에 동의하고 있는 작품인 셈. <밥줘!>가 물러난 시간대에 <살맛납니다>가 김유미의 말대로 “온 가족이 함께 밥 먹으며 볼 수 있는 드라마”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혼전임신? 낳아야지” 홍민수, 김유미
마치 남자 이름 같은 캐릭터의 이름에서 볼 수 있듯, 홍민수는 터프한 성격의 30대 여성. 에어로빅과 태권도를 동시에 가르치며 고시생 남자친구를 7년째 뒷바라지하던 중, 남자친구가 정말 고시에 합격해 결혼할 날만 기다린다. 하지만 늘 그렇듯 고시생 애인은 조건 좋은 여자 찾아 떠나고, 홍민수는 우연히 술친구가 돼 버린 여섯 살 연하의 남동생 친구 장유진과 원치 않는 혼전임신을 하게 된다. 실제로 김유미도 “원래 연하는 남자로 느껴지지 않았는데 이번에 하면서 그것도 괜찮을 수 있겠다 싶었다. 이태성이 애 늙은이 같다. (웃음) 이런 성숙한 연하도 있다는 걸 알았다”고.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은 아들 장유진, 이태성
“‘엄친아’라는 말을 몰라서 처음에는 ‘엄마하고 친한 아들’인줄 알았다.” 제작발표회에서 이태성은 웃으며 자신이 생각했던 ‘엄친아’의 뜻에 대해 말했다. 하지만 이태성이 연기하는 장유진은 정말로 ‘엄마하고 친한 아들’이다. 지극히 가부장적이고 세속적인 아버지(임채무) 밑에서 자라 아버지처럼 의사가 되지만, 아버지 때문에 평생을 눌려 지낸 어머니(박정수)에게 더 마음을 쓰는 캐릭터가 장유진. 그만큼 아버지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크고, 이런 감정은 그가 변변찮은 집안의 홍민수와 결혼하면서 드러나게 된다. “임채무 선생님과 박정수 선생님이 이제 넌 내 아들이니까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르라고 하셨다. 드라마지만 실제 가족 같다. 이런 진실성이 담긴 연기를 할 수 있는 게 즐겁다.”

귀엽고 착하지만 무능한 남편 변창수, 권오중
권오중은 제작발표회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작품의 매력에 대해 설명한 배우였다. <살맛납니다>에 가장 먼저 캐스팅됐다는 그는 “정신이 피폐해지는” 막장 드라마가 아닌 <살맛납니다>같은 작품에 출연한 것이 너무 기쁘다고. 그가 연기하는 변창수는 <살맛납니다>에서도 가장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줄 캐릭터. 사람 좋고 아내에게도 애교가 많지만 회사 생활은 별 비전 안 보이고, 투자한 주식은 폭락해 가정에 빚더미를 안겨준다. “나도 애를 키우고 있어서 결혼 생활에 대한 이야기들이 실감나게 드라마에 나올 수 있다. 내가 집에서 하는 행동들이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권오중의 말대로 변창수가 무능한 가장의 모습을 실감나게 그릴 수 있을까.

“이번 캐릭터는 욕은 안 먹겠구나 싶었다” 홍경수, 홍은희
홍은희는 MBC 일일 아침 드라마 <흔들리지마> 출연 당시 주변에서 먼저 “너무 세다”며 위로를 할 만큼의 악역 캐릭터를 연기했었다. 이 때문에 배역에 “머리가 아플 만큼” 몰입을 하는 노력이 필요했다고. 적어도 <살맛납니다>에서는 그런 고생은 안 해도 될 듯 싶다. 그가 연기하는 홍경수는 약간 공주병 기질이 있기는 하지만 평범한 결혼 생활을 하는 여자. 그러다 남편의 주식이 폭락해 빚을 지면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밝고 귀여운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이 이 캐릭터의 관건이라고.

결혼은 현실 나예주, 김성은
나예주는 능력 없는 아버지 때문에 평생을 고모와 고모부의 눈치를 보며 산 인물. 그런 인생이 싫어 열심히 공부해 의사가 되어 조건 좋은 남자와 결혼하려 하지만, 자신에게 순수하게 다가오는 홍진수와 조건 좋은 남자 사이에서 갈등한다. “실제의 나는 감성적인데 예주는 이성이 앞선다”는 김성은의 설명처럼 지극히 현실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캐릭터. “결혼에 대한 기대가 많다. 일찍 결혼해서 아이 낳고 기르고 싶었는데, 곧 결혼하게 되는 상황에서 이 작품에 출연하게 됐다. 유준상-홍은희, 션-정혜영 부부처럼 일과 사랑 모두 이상적으로 하고 싶다.”

사랑밖에 모르는 순수 청년 홍진수, 오종혁
권오중은 오종혁에 대해 “드라마 게시판에는 오종혁의 팬 밖에 없다”고 말했다. 클릭비는 활동을 중단한지 오래지만, 그만큼 아이돌 스타였던 오종혁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다. 아직은 가수 시절 버릇이 남아 카메라를 정면으로 보기도 하고, 상대 배우인 김성은과의 호흡 이전에 “실수를 최대한 줄여서 촬영 시간을 줄이는 게 목표”라지만, 다른 배우들은 그가 생각 이상으로 잘한다는 칭찬을 계속 했다. 일일 드라마에서 백수지만 성실하게 살려고 하는 캐릭터 홍진수로 연기자 인생을 출발하는 그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관전 포인트
김대진 감독은 “온 국민이 몇 달만이라도 따뜻하고 행복함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만큼 기존의 ‘막장 드라마’와는 차별화되는 드라마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힌 셈이다. 특히 김대진 감독이 마니아 팬들을 모았던 옴니버스 드라마 MBC <옥션 하우스>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한국 드라마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미장센과 와이드 화면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었던 그 드라마를 연출하던 그가 정식 연출작인 <살맛납니다>를 통해 일일 가족 드라마에 새로운 경향을 끌고 올 수 있을까.

사진제공_MBC

글. 강명석 (two@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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