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이 선배 가수의 명곡을 노래하는 KBS <불후의 명곡 2>는 출연자들의 음원을 판매하지 않을 예정이다. MBC <우리들의 일밤>의 ‘나는 가수다’는 다른 음원들과 분리된 별도 차트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리얼리티 쇼의 노래들이 대중음악 차트를 흔들어놓은 결과다. 차트의 영향력만이 아니다. 홍대 인디 신에서 오랫동안 기반을 다진 포크와 복고는 그 토양의 영향을 받은 김지수와 장재인이 Mnet <슈퍼스타 K 2>에 출연하면서 보다 큰 상업적인 힘을 갖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어쿠스틱 기타를 치는 여성 듀오 스피넬이 데뷔했고, 걸그룹 에이핑크는 데뷔 전 김윤아와 어쿠스틱 기타를 치며 ‘꿈의 대화’를 부르는 CF를 찍었다.

리얼리티 쇼는 음원 차트를 바꿨고, 차트는 트렌드를 바꾼다. 그리고 트렌드는 음악의 보다 근본적인 부분을 건드린다. <슈퍼스타 K 2>에서 장재인이나 허각의 등장이 강렬했던 건, 실력뿐만 아니라 ‘리얼’하게 전달되는 목소리의 힘이 컸다. 넓은 공간에서 들리는 단 한 사람의 목소리가 출연자의 개인사와 합쳐져 강한 흡인력을 가졌다. MBC <위대한 탄생>의 ‘위대한 캠프’에서 셰인과 한승구의 목소리는 지나칠만큼 크게 울리면서 홀을 꽉 채웠다. 덕분에 다른 악기 소리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지만, 두 사람의 목소리만큼은 생생했다. <위대한 탄생> 결선의 분위기가 갈수록 식은 것은 리얼리티 쇼의 특성에 대한 고려 없는 사운드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출연자들은 노래에 따라 MR과 라이브를 섞었고, 화려해진 사운드 탓에 오히려 보컬이 큰 존재감을 주지 못했다. 출연자들이 가장 절실하게 노래하는 순간, 사운드가 오히려 목소리의 힘을 반감시켰다. 리얼리티 쇼는 기존 음악과는 다소 다른 관점에서 사운드에 접근해야할 필요가 있는 셈이다.

음악 리얼리티 쇼가 바꾼 사운드의 트렌드



2NE1의 ‘Lonely’나 씨스타19의 ‘Ma boy’ 등의 곡들은 편안하고 기분 좋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나는 가수다’의 사운드가 훌륭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쇼의 사운드는 보컬이 다른 사운드보다 한 발 앞에서, 보다 울림을 가지도록 세팅 돼 있다. 보컬은 생생하고, ‘라이브’의 현장성이 부각된다. 임재범이 ‘빈잔’의 첫 소절을 부를 때, 그는 웅얼거리듯 노래하지만, ‘나는 가수다’의 사운드 믹싱은 그 목소리마저 공연장을 꽉 채우는 것처럼 퍼지도록 잡아낸다. 반면 록 기타는 날카로움이 다소 줄어들고, 드럼도 중심을 잡아주는 정도로만 드러나는 아쉬움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소리들을 놓치지는 않는다. 모든 사운드를 최대한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목표라면 ‘나는 가수다’의 사운드가 최선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가수다’는 악기간의 조화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소리의 울림을 강조했고, 그만큼 현장감을 불어넣을 수 있었다. 그만큼 가수들이 후반부에 들려주는 폭발적인 열창이 시청자에게 더 강한 인상을 줄 수 있다. 사운드적인 면에서 ‘나는 가수다’는 음악적인 완성도와 리얼리티 쇼에 최적화된 사운드의 접점을 발견했다. <위대한 탄생>이 ‘조용필 미션’에서 조용필의 밴드 위대한 탄생을 초청하고, <불후의 명곡 2>가 ‘100% 라이브’를 강조하는 것은 연출자들이 리얼리티 쇼에 필요한 사운드가 무엇인지 알아간다는 증거일 것이다.

새로운 관점의 사운드는 대중 음악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지난 13일 2NE1의 박봄은 네이버를 통해 밴드 버전으로 신곡 ‘Don`t cry’를 불렀다. 베이시스트 이태윤, 기타리스트 함춘호 등 정상급 세션들이 참여했다. ‘나는 가수다’ 등을 통해 라이브 연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박봄의 공연은 우연으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스튜디오에서 녹음했음에도 ‘Don`t cry’는 보컬의 울림을 강조하며 현장성을 보다 부각시켰다. 2NE1이 최근 발표한 ‘Lonely’는 보다 명확하게 사운드의 어떤 변화를 보여준다. 2NE1은 일렉트로니카 사운드 대신 기타를 중심으로 한 어쿠스틱 사운드를 전면에 내세웠다. 보컬은 뚜렷한 초점을 갖는 대신 공간 전체에 울려 퍼진다. 라이브 연주가 가능한 사운드와 울림이라는 요소가 트렌드를 앞세우는 걸그룹의 노래에 녹아들었다. 임정희의 ‘Golden lady’도 어쿠스틱 기타로 시작해 밴드 형태의 사운드가 곡을 이끌고, 보컬이 울림을 갖고 넓게 퍼진다. ‘Golden lady’의 뮤직비디오에서는 임정희가 밴드와 함께 노래한다. 리얼리티 쇼가 부각시킨 어떤 경향은 그렇게 대중이 듣는 소리를 일정부분 바꾼다.

그러나 쇼의 감동과 음악의 감동은 다르다



가수의 절실함을 바탕으로 감동을 얻는 ‘나는 가수다’에서 김연우는 자신의 창법을 버린 후에야 1위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반전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나는 가수다’에서 보컬의 울림은 공연의 현장성을 강조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가수들의 열창이 현장성이 강조된 사운드를 통해 더 절절하게 와 닿는다. 반면 스튜디오에서 녹음 된 ‘Lonely’와 ‘Golden lady’는 현장성 대신 보컬이 퍼지는 느낌 자체를 강조한다. ‘Golden lady’의 프로듀서 방시혁은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 등에서 목소리를 압축한 듯한 밀도 있는 보컬로 전달력을 극도로 높였다. 반면 ‘Golden lady’는 목소리를 퍼지게 하며 밀도를 낮춘다. ‘Lonely’와 ‘Golden lady’ 모두 절절한 감동 대신 부드럽게 퍼지는 목소리로 곡의 감정을 서서히 띄운다. 밴드 형태의 음악은 아니지만 씨스타 19의 ‘Ma boy’도 목소리가 퍼지면서 편안하고 기분 좋은 느낌을 강조한다. ‘Lonely’는 모든 디지털 음원차트 1위를 기록했고, ‘Golden lady’와 ‘Ma boy’도 차트 상위권을 기록 중이다. 분명히 지금은 리얼리티 쇼의 시대지만, 대중은 리얼리티 쇼의 음악과 다른 음악을 들을 때 얻고자하는 감정이 다르다. 그리고 제작자들은 리얼리티 쇼가 일으킨 어떤 트렌드를 자신들의 방식으로 소화하기 시작했다.

리얼리티 쇼의 음악과 다른 음악이 갈리는 이 지점은 다시 리얼리티 쇼에 영향을 줄 것이다. ‘나는 가수다’에서 김연우는 청중평가단의 호응을 이끌어내려면 더 폭발적인 보컬을 써야할지 고민한다. 관객들이 가수의 절실함을 바탕으로 감동을 느끼는 ‘나는 가수다’에서 이런 창법은 경쟁에서 유리할 수 있다. 하지만 대중은 리얼리티 쇼를 본 뒤에도 음악을 듣는다. 이소라가 부른 보아의 ‘No.1’은 청중 평가단의 순위와 별개로 큰 화제를 모았다. ‘No.1’은 무대에서는 다소 난해한 음악일 수도 있었지만, 동시에 충격적인 해석이 돋보였다. ‘나는 가수다’가 모든 노래가 아니라 리얼리티 쇼의 공연에 어울리는 노래에 대한 선호도 투표라는 점이 명확해지면 가수들도 보다 부담없이 노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나는 가수다’를 비롯한 음악 리얼리티 쇼가 대중음악계 전체를 대표한다는 오해에서 벗어나 각자 목적과 특징이 뚜렷한 쇼로 자리잡을 수 있다. 가수가 리얼리티 쇼에 출연하고, 리얼리티 쇼는 음악을 바꾼다. 그 사이에 음악의 정의가 왜곡되기도 한다. 하지만 쇼가 만들어내는 음악의 감동과 그 바깥에 있는 음악의 감동은 다르다. 그 사실을 인지할 때, 대중음악의 또 다른 길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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