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피겨스케이팅을 폐지할 수 없을까.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김연아가 피겨 프리스케이팅을 마치는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배우는 30대에 접어들면서 외적인 아름다움을 잃어가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지만, 여성 피겨스케이팅 선수의 전성기는 길어야 20대 중반까지다. 그들은 10대 초반에 피겨스케이팅을 시작해도 “늦다”는 말을 듣고, 10대 후반에는 세계 무대에 나갈 것을 요구 받는다. 그리고 올림픽은 10대 시절부터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피겨 스케이팅만 했던 그들에게 단 7분 안에 사람들을 감동시키라고 요구한다. 여성 피겨스케이터들은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세계인의 눈에 남길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무대가 끝나는 순간 다른 인생을 생각해야 한다. 선수에게 “귀엽다”라고 말하면서도 그 선수의 경력에 대해 “위대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종목. 우리는 최고의 아름다움을 위해 소녀들의 청춘을 빼앗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소녀, 세상과 가장 우아한 전투를 벌이다 그래서 김연아는 신이었다. 적어도 밴쿠버 올림픽의 7분 동안이라면 그러하다. 동계 올림픽 전부터 TV에는 자신의 금메달을 기원하는 CF가 나오고, 팬들은 어떤 아이돌 스타보다 더 그를 숭배한다. 그리고 기자들은 끊임없이 아사다 마오에 대해 묻는다. 아사다 마오가 트리플 악셀을 고집한 것은 잘못이 아니다. 만 19세의 소녀라면, 트리플 악셀을 해냈을 때 금메달을 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것이 인간적이다. 김연아가 프리 스케이팅에서 150.6을 받은 직후 아사다 마오가 실수를 저지른 것 역시 인간적인 일이다. 아사다 마오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슬럼프를 이겨내고 올림픽에 맞춰 최상의 컨디션을 찾았다. 다만, 김연아가 그 위에 있었을 뿐이다.
김연아의 쇼트 프로그램 직전, 언론에서 늘 라이벌이라고 강조했던 선수는 자신의 최고점을 찍었다. 하지만 김연아는 트리플 악셀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는 트리플 러츠와 트리플 토룹을 더 완벽하게 성공했다. 만 19세 소녀의 몸 안에 철혈의 여제의 영혼이 깃들었음을 확인하는 순간. 어떤 시청자들은 가슴이 떨려 김연아의 경기를 생방송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건 김연아의 선전을 바라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밴쿠버 올림픽 선수단의 귀국 기자회견에서 입상하지 못한 곽민정 선수는 의자에 앉지도 못한 채 50분을 서있었다. 김연아가 아무리 좋은 성적을 거둬도 그의 많은 CF 출연은 비판의 대상이 됐고, 그의 어머니는 아무런 구설수도 일으키지 않은 상황에서도 “어머니의 지나친 간섭은 자식을 망칠 수 있다”는 주장마저 들었다. 김연아가 밴쿠버 올림픽에서 단 한 번만 삐끗했어도, 그에게 어떤 비난이 쏟아질지는 우리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다. 그 끔찍한 중력을 뚫고 김연아는 우아하게 날아올랐다. 프리스케이팅이 끝난 직후 김연아가 흘린 눈물을 보며 SBS의 캐스터는 그에게 “미안합니다”라고 말했다. 오직 피겨스케이팅만으로, 김연아는 이 아름다운 여성들이 상상도 못할 정신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납득시켰다. 김연아는 아사다 마오와 대결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세상과 가장 우아한 전투를 벌였다.
빙판 위에서 추는 가장 아름다운 춤 그러나 김연아의 싸움은 승패가 무의미한 것이다. 김연아의 무대는 점프가 아닌 그 외의 시간에 완성된다. ‘죽음의 무도’건 ‘본드걸’이건,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팅이 보여주는 예술적인 표현력은 늘 경탄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김연아의 프리스케이팅에는 그 모든 안무를 뛰어넘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안무가 시작된 뒤 1분 16초쯤 피아노 연주가 잠시 멈췄을 때, 김연아는 허리에 손을 얹고 몸을 살짝 뒤틀며 여성스러운 몸짓을 보여준다. 더블 악셀과 트리플 토룹을 끝낸 직후에는 웃으며 유유히 빙판 위를 흐른다.
그는 다채로운 변화를 보여주는 거쉰의 곡에 자신의 안무를 맞추지 않았다. 대신 그는 이미 들리지 않는 마지막 음을 늘리듯, 거쉰의 곡이 멈춰있는 순간마저 자유롭게 춤을 췄다. 위대한 발레리나가 그러하듯, 김연아는 음악을 자신의 몸짓으로 늘리고 압축하고, 다시 새롭게 해석했다. 비록 한 차례 점프 실수가 있긴 했지만, 김연아가 갈라쇼에서 선보인 안무는 그의 피겨스케이팅이 가진 가치를 잘 보여줬다. 김연아는 점프 보다는 다채로운 몸짓을 중심으로 안무를 구성했고, 안무의 하이라이트는 점프가 아니라 오랫동안 허리를 뒤로 꺾은 채 이동하는 이나바우어였다. 동시대에 한정한다면, 김연아는 지금 가장 궁극에 가까운 피겨스케이팅을 한다. 피겨스케이팅을 전혀 모르는 대중이 봐도 그 차이를 알 만큼, 김연아는 피겨스케이팅을 빙판 위에서 추는 가장 아름다운 춤으로 만들어놓았다.
그녀의 인생에 건배를 “Here she is, Yu-na Kim!” 갈라쇼의 장내 아나운서는 김연아에게 어떤 수식어도 붙이지 않았다. 만 19세에 김연아는 이미 그런 존재다. 타고난 신체조건, 완벽한 기술, 그보다 더 완벽한 마음가짐을 가진 피겨스케이팅의 토털 패키지는 가장 큰 무대에서 가장 완벽한 무대로 정점을 찍었다. 물론 누군가는 벌써 올림픽 2연패를 거론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아직 시도하지 않은 트리플 악셀”이라는 말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김연아는 이미 피겨스케이팅으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이뤘다. 이제 남은 것은 오직 피겨스케이팅 자체에 대한 예술적 성취뿐일 것이다. 그건 온전히 자신과의 싸움이고, 자신만이 깨달을 수 있는 만족일 수도 있다. 누구도 그것을 위해 20대의 몇 년을 더 전 국민의 국가대표로 살라고 할 수는 없다. 김연아는 프리스케이팅을 끝낸 직후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다”며 “이루고 싶은 꿈이었기 때문에 빨리 해치우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 모든 게 끝났다는 게 속이 너무 너무 시원하다”고 말했다. 그렇게 모든 무대가 끝난 뒤에야 김연아는 짤막하게나마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물론, 살면서 단 한 번도 자신의 일에서 최고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거나, 그 경지에 오를 생각조차 없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김연아에 대해 수많은 이야기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그가 달성한 것만으로도, 우리는 김연아를 계속 응원해야할 것이다. 그의 피겨스케이팅이 아닌 그의 인생을 위해.
글. 강명석 two@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소녀, 세상과 가장 우아한 전투를 벌이다 그래서 김연아는 신이었다. 적어도 밴쿠버 올림픽의 7분 동안이라면 그러하다. 동계 올림픽 전부터 TV에는 자신의 금메달을 기원하는 CF가 나오고, 팬들은 어떤 아이돌 스타보다 더 그를 숭배한다. 그리고 기자들은 끊임없이 아사다 마오에 대해 묻는다. 아사다 마오가 트리플 악셀을 고집한 것은 잘못이 아니다. 만 19세의 소녀라면, 트리플 악셀을 해냈을 때 금메달을 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것이 인간적이다. 김연아가 프리 스케이팅에서 150.6을 받은 직후 아사다 마오가 실수를 저지른 것 역시 인간적인 일이다. 아사다 마오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슬럼프를 이겨내고 올림픽에 맞춰 최상의 컨디션을 찾았다. 다만, 김연아가 그 위에 있었을 뿐이다.
김연아의 쇼트 프로그램 직전, 언론에서 늘 라이벌이라고 강조했던 선수는 자신의 최고점을 찍었다. 하지만 김연아는 트리플 악셀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는 트리플 러츠와 트리플 토룹을 더 완벽하게 성공했다. 만 19세 소녀의 몸 안에 철혈의 여제의 영혼이 깃들었음을 확인하는 순간. 어떤 시청자들은 가슴이 떨려 김연아의 경기를 생방송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건 김연아의 선전을 바라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밴쿠버 올림픽 선수단의 귀국 기자회견에서 입상하지 못한 곽민정 선수는 의자에 앉지도 못한 채 50분을 서있었다. 김연아가 아무리 좋은 성적을 거둬도 그의 많은 CF 출연은 비판의 대상이 됐고, 그의 어머니는 아무런 구설수도 일으키지 않은 상황에서도 “어머니의 지나친 간섭은 자식을 망칠 수 있다”는 주장마저 들었다. 김연아가 밴쿠버 올림픽에서 단 한 번만 삐끗했어도, 그에게 어떤 비난이 쏟아질지는 우리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다. 그 끔찍한 중력을 뚫고 김연아는 우아하게 날아올랐다. 프리스케이팅이 끝난 직후 김연아가 흘린 눈물을 보며 SBS의 캐스터는 그에게 “미안합니다”라고 말했다. 오직 피겨스케이팅만으로, 김연아는 이 아름다운 여성들이 상상도 못할 정신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납득시켰다. 김연아는 아사다 마오와 대결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세상과 가장 우아한 전투를 벌였다.
빙판 위에서 추는 가장 아름다운 춤 그러나 김연아의 싸움은 승패가 무의미한 것이다. 김연아의 무대는 점프가 아닌 그 외의 시간에 완성된다. ‘죽음의 무도’건 ‘본드걸’이건,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팅이 보여주는 예술적인 표현력은 늘 경탄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김연아의 프리스케이팅에는 그 모든 안무를 뛰어넘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안무가 시작된 뒤 1분 16초쯤 피아노 연주가 잠시 멈췄을 때, 김연아는 허리에 손을 얹고 몸을 살짝 뒤틀며 여성스러운 몸짓을 보여준다. 더블 악셀과 트리플 토룹을 끝낸 직후에는 웃으며 유유히 빙판 위를 흐른다.
그는 다채로운 변화를 보여주는 거쉰의 곡에 자신의 안무를 맞추지 않았다. 대신 그는 이미 들리지 않는 마지막 음을 늘리듯, 거쉰의 곡이 멈춰있는 순간마저 자유롭게 춤을 췄다. 위대한 발레리나가 그러하듯, 김연아는 음악을 자신의 몸짓으로 늘리고 압축하고, 다시 새롭게 해석했다. 비록 한 차례 점프 실수가 있긴 했지만, 김연아가 갈라쇼에서 선보인 안무는 그의 피겨스케이팅이 가진 가치를 잘 보여줬다. 김연아는 점프 보다는 다채로운 몸짓을 중심으로 안무를 구성했고, 안무의 하이라이트는 점프가 아니라 오랫동안 허리를 뒤로 꺾은 채 이동하는 이나바우어였다. 동시대에 한정한다면, 김연아는 지금 가장 궁극에 가까운 피겨스케이팅을 한다. 피겨스케이팅을 전혀 모르는 대중이 봐도 그 차이를 알 만큼, 김연아는 피겨스케이팅을 빙판 위에서 추는 가장 아름다운 춤으로 만들어놓았다.
그녀의 인생에 건배를 “Here she is, Yu-na Kim!” 갈라쇼의 장내 아나운서는 김연아에게 어떤 수식어도 붙이지 않았다. 만 19세에 김연아는 이미 그런 존재다. 타고난 신체조건, 완벽한 기술, 그보다 더 완벽한 마음가짐을 가진 피겨스케이팅의 토털 패키지는 가장 큰 무대에서 가장 완벽한 무대로 정점을 찍었다. 물론 누군가는 벌써 올림픽 2연패를 거론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아직 시도하지 않은 트리플 악셀”이라는 말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김연아는 이미 피겨스케이팅으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이뤘다. 이제 남은 것은 오직 피겨스케이팅 자체에 대한 예술적 성취뿐일 것이다. 그건 온전히 자신과의 싸움이고, 자신만이 깨달을 수 있는 만족일 수도 있다. 누구도 그것을 위해 20대의 몇 년을 더 전 국민의 국가대표로 살라고 할 수는 없다. 김연아는 프리스케이팅을 끝낸 직후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다”며 “이루고 싶은 꿈이었기 때문에 빨리 해치우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 모든 게 끝났다는 게 속이 너무 너무 시원하다”고 말했다. 그렇게 모든 무대가 끝난 뒤에야 김연아는 짤막하게나마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물론, 살면서 단 한 번도 자신의 일에서 최고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거나, 그 경지에 오를 생각조차 없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김연아에 대해 수많은 이야기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그가 달성한 것만으로도, 우리는 김연아를 계속 응원해야할 것이다. 그의 피겨스케이팅이 아닌 그의 인생을 위해.
글. 강명석 two@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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