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지원 기자]
영화 ‘윤희에게’에서 첫사랑의 기억을 찾아 딸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윤희 역의 배우 김희애. /사진제공=리틀빅픽처스
영화 ‘윤희에게’에서 첫사랑의 기억을 찾아 딸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윤희 역의 배우 김희애. /사진제공=리틀빅픽처스
“어떤 존재도 귀한 것 같아요. 풀 한 포기, 새 한 마리도 귀하고 이 세상에 나온 이유가 있죠. 어떤 인생이 소중하지 않겠어요?”

세월이 갈수록 깊이와 향기를 더해가는 배우 김희애가 세상의 다양한 사랑을 보여주는 퀴어영화 ‘윤희에게’를 선보였다. 이 영화는 비밀스러운 첫사랑의 기억을 품고 살아온 윤희(김희애)가 딸 새봄(김소혜)과 함께 첫사랑이 살고 있는 일본의 한 작은 마을로 여행을 떠나 과거의 상실을 보듬고 새로운 희망을 얻는 이야기다.

“대본이 소설 한 권처럼 읽혀졌어요. 된장찌개도 MSG가 좀 들어가야 맛있잖아요. 이렇게 MSG를 안 넣어도 될까 싶을 정도로 순수문학 같았어요. 화려한 레스토랑도 좋지만 시골 주인만의 손맛이 느껴지는 작은 식당을 발견한 느낌이었죠. 블로그엔 안 나와있지만 그런 식당을 발견하면 뿌듯하잖아요. 큰 주제를 소소하게 풀어간 게 매력적이었죠.”

영화 ‘윤희에게’의 한 장면. /사진제공=리틀빅픽처스
영화 ‘윤희에게’의 한 장면. /사진제공=리틀빅픽처스
이 영화는 공허한 윤희의 모습을 서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담담하게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김희애는 “윤희가 표현이 별로 없고 계단처럼 감정을 쌓아나가는 것도 아니어서 연기하기 어려웠다”며 “감정을 끌어내줄 음악이 있으면 반복해서 듣고 영화와 책도 많이 봤다. 담금질을 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이혼 후 새봄과 함께 살고 있는 윤희는 교외 공장의 조리실에서 일한다. 고졸 학력의 이혼 여성으로서 윤희가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의 폭은 넓지 않고 생계를 꾸려가는 것도 녹록치 않다. 김희애는 윤희를 안타까워했다.

“한 번뿐인 인생인데 누구에게나 다 소중하지 않겠어요. 누구는 주인공으로 사는데 누구는 투명인간처럼 인생을 부정 당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가요. 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윤희가 있어요.”

김희애는 아이돌그룹 아이오아이 출신인 김소혜와 이번 영화에서 모녀로 호흡을 맞췄다. 조금은 냉랭한 사이였던 모녀가 여행을 통해 벽을 조금씩 허물어가는 모습도 훈훈하다. 김소혜에 대해 김희애는 “다른 역할로 연기한 걸 본 적은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새봄 역으로는 소혜가 세계 최고”라고 칭찬했다.

김희애는 “20~30년 후에 어떤 배우로 생명을 이어나갈지는 모를 일이니 ‘절정’이라는 말은 아끼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제공=리틀빅픽처스
김희애는 “20~30년 후에 어떤 배우로 생명을 이어나갈지는 모를 일이니 ‘절정’이라는 말은 아끼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제공=리틀빅픽처스
1983년 영화 ‘스무해 첫째날’로 데뷔한 김희애는 아름다운 외모와 뛰어난 연기력으로 36년간 정상의 자리를 지켜왔다. 톱스타의 자리에서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드라마 ‘밀회’ ‘내 남자의 아내’, 영화 ‘사라진 밤’ ‘허스토리’ 등으로 연기 변신을 거듭했다. 그 동안 슬럼프를 겪진 않았을까. 김희애는 “슬럼프가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실패, 성공, 상처 모두 인생의 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항상 마지막일 거라는 생각으로 작품을 해왔다”는 그는 최근 다음 작품인 드라마 ‘부부의 세계’를 촬영하다 문득 연기의 즐거움을 느꼈다고 한다.

“어리고 철없을 땐 하기 싫고 힘들었어요. 제작환경도 주먹구구식이고 (연예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도 있고…. 화창한 날이면 화창한 대로, 비오는 날이면 비오는 대로 어딘가로 가고 싶었죠. 며칠 전 촬영장에 도착했는데 촬영 준비는 다 돼 있고 낙엽과 은행이 떨어지는 풍경이 멋졌어요. 후배와 연기를 하는데 그 친구 참, 연기를 살벌하게 잘하더라고요. 그 친구 연기하는 걸 보니 ‘멋있다’는 생각도 들고 카타르시스가 느껴졌어요. 끈을 놓지 않고 해왔더니 이렇게 멋진 순간도 있구나 싶었어요. 많은 분들이 저를 지켜봐주는데 참 감사했어요.”

다시 태어나도 배우가 되겠느냐고 묻자 “그런 운이 주어지겠느냐”며 싱긋 웃었다. 이어 “주어진다면 왜 안 하겠느냐”면서도 “또 다른 삶을 살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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