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현지민 기자]
배우 문소리 / 사진제공=필앤플랜
배우 문소리 / 사진제공=필앤플랜
“‘평범함’은 주관적인 단어예요. 때문에 ‘난 평범해’라고 확신할 수 없죠. 다만 평범함을 지향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데뷔 전까지 지극히 평범했고, 데뷔한 후에도 평범한 외모라는 말을 많이 들었죠. 그 평범함으로 지금까지 버텼고요.”

18년차 배우 문소리가 평범한 ‘인간 문소리’로 돌아왔다. 1999년 ‘박하사탕’을 통해 화려하게 데뷔한 후 수많은 작품에서 주연으로 활약한 그지만 이번엔 민낯을 드러냈다. 연출·각본·주연까지 맡은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를 통해서다. 이 영화는 그가 2013년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에 입학해 2년 동안 연출 공부를 하며 만든 단편 ‘여배우’ ‘여배우는 오늘도’ ‘최고의 감독’ 등 세 편을 모아 완성한 장편이다.

이 영화는 메릴 스트립 부럽지 않은 트로피 숫자, 화목한 가정 등 남들한테 있는 것은 다 있지만, 정작 맡고 싶은 배역의 러브콜은 끊긴 데뷔 18년 차 중견 배우 문소리의 이야기를 그린다. 극 중 문소리의 삶은 피곤하다. 배우로서 설 자리가 좁아지는 현실에 갑갑해 하면서도 무보수 특별출연을 예의 있게 거절해야 한다. 엄마의 성원에 풀메이크업을 하고 치과 홍보 사진을 찍어야 하고, 은행에선 대출 서류에 사인을 한다. 문소리는 “극은 100% 픽션이지만 100% 진심”이라고 했다. 같은 상황을 겪진 않았지만 누구나 한 번쯤 느껴봤을 감정을 극으로 표현해낸다.

“지인들이 모여 적은 예산으로 만든 극이에요. 영화판에서 만난 동갑내기 친구들과 종종 만나 맥주 마시며 남의 영화에 대해 얘기했는데, 하루는 배급하는 친구가 저예산 영화 개봉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에 신청하자고 제안했어요. ‘꼭 그래야겠니?’라며 말리기도 했는데 낄낄거리며 작업하다가 여기까지 왔네요.”

세 개의 막은 각각 다른 배경으로 구성된다. “배우는 연기력이 아니라 매력”이라고 한탄하며 영화 관계자들 앞에서 싫은 소리를 못하는 문소리의 모습이 1막에 담겼고, 2막엔 배우이자 딸이자 엄마로 살아가는 문소리의 고뇌가 담겼다. 마지막은 죽은 영화감독의 장례식장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다. 장례식장을 찾은 문소리는 선후배와 만나 예술에 대해 얘기한다. 고인에 대해 냉담한 시선을 유지하며 시종 까칠한 모습을 보이던 문소리는 고인이 아들에게 남긴 영상을 보다 눈물을 쏟아낸다. 문소리는 “눈물 장면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눈물이 관객들에게 감정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1차적으론 극 안에서 돌아가신 감독님에 대한 애도의 마음일 거고, 2차적으론 제 과거에 대한 반성의 눈물입니다. 과거엔 연기를 하며 감독님, 동료들에게 날이 서있었어요. 두려움 때문이었죠. 무언가 손해를 볼 것만 같고 상처받을 것 같아 날카로워지고 공격적이었어요. 작품이 칭찬을 받고 상을 타는 데서 오는 행복은 겨우 며칠이에요. 사람들과 부딪히며 노력한 시간들이 정말 소중한 거죠. 그걸 깨닫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됐어요.”

배우 문소리 / 사진제공=필앤플랜
배우 문소리 / 사진제공=필앤플랜
극의 포스터도 인상적이다. 빨간 드레스를 입은 문소리가 끝없는 트랙을 달리고 있다. 극 안에 표현되는 ‘날 것’의 문소리와는 또 다른 매력이다.

“극 안엔 ‘문소리의 민낯’이 그려지니 포스터엔 화려한 모습을 담자는 의견이 모아졌어요. 친구가 제작비를 아끼자며 제 드레스 스틸컷을 찾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던 중 제니퍼 로렌스가 드레스를 입고 넘어지는 사진을 보게 됐죠. 반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생이 계단처럼 오르막길만 있진 않잖아요. ‘인생은 긴 레이스’라는 의미에서 붉은 트랙을 달렸죠. 무더운 날에 고생하며 찍었는데 인상적인 사진이 나온 것 같아 다행입니다.”

문소리는 꾸준히 영화 연출을 할 계획이냐는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안 하겠다’고 단정할 순 없지만 지금 해야 할 일에 집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출이 배우 생활에 도움이 될까요? 잘 모르겠어요. 영화 ‘아가씨’ 촬영 중에 유카타만 입고 벚나무에 매달려있는 신이 있었어요. 와이어에 매달렸는데 몸에 고정한 하네스(안전벨트)가 다 비치더라고요. ‘머리를 풀어 가리는 게 어떨까요?’라고 제안했더니 박찬욱 감독님이 ‘문 감독이 좋은 제안을 했다. 연출하더니 달라졌다’고 하더라고요. 다른 감독님들도 ‘문 감독 말 듣자’라며 짓궂게 놀려요. 하하. 배우로서 할 수 있는 제안도 괜히 민망해지는 기분이 들었죠.”

문소리는 어디에서 행복을 느낄까. 의외로 소박한 답이 돌아왔다. 그는 “뜨거운 물에 몸을 담글 때와 책을 읽을 때 행복을 느낀다”며 웃었다.

“훗날 딸이 크면 주려고 자주 편지를 쓰는 편이예요. 가장 먼저 남긴 말이 ‘네 엄마가 정신이 없어지더라도 따뜻한 물이 담긴 욕조와 책을 늘 가까이하게 해주렴’이랍니다. 하하.”

현지민 기자 hhyun418@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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