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답 없는 끝없는 질문에 휩싸인 채 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에 빠져 혼자 괴로울 때조차 별처럼, 저 별처럼, 난 별 넌 별 먼 별 빛나는 별이소라 ‘8’
이소라 ‘난 별’ 中
이소라의 순도 높은 록 음반. 이소라가 앨범에서 록을 시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며 라디오를 진행할 때 록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곤 했다. 처음 이 앨범을 들었을 때는 ‘이소라가 노래하는 김바다 앨범’과 같은 충격을 받았다. ‘이소라가 록을 했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했냐’라는 것일 진데, 이 앨범에서 이소라는 가수가 아닌 ‘이소라 밴드’의 보컬리스트인 것처럼 뚜렷한 스타일의 록을 들려주고 있다. 이전 곡들이 단순히 록 세션 위로 이소라의 목소리를 얹은 정도였다면 ‘8’은 마치 자기 색이 뚜렷한 록밴드처럼 심지가 단단한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이소라 솔로앨범이 아닌 이소라(보컬)-임헌일(기타)-정재일(베이스)-이상민(드럼)-정지찬(건반)의 5인조 록밴드의 앨범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말이다. 가수로써 록을 시도하는 것과, 밴드의 보컬리스트로써 록을 시도하는 것은 천차만별의 결과를 가져온다. 록은 본래 연주자들의 진정한 화학작용을 수반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소라와 오랜 시간 함께 해온 동료들의 기다림(이한철, 정준일은 2009년에 곡을 주고 오랜 시간 곡의 편곡이 바뀌는 것을 지켜봤다고)과, 믿음, 우정이 가능케 한 이 앨범의 울림은 이소라가 이전에 불러왔던 노래들 이상으로 상당하다. 특히 ‘나 Focus’에서 이소라가 소화해내는 록 특유의 드라마틱한 사운드와 멜로디는 단연 압권.
줄리아 하트 ‘인디 달링을 찾아서’
줄리아 하트가 7년 만에 발매하는 새 앨범으로 정규 5집. 앨범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인디의 달링을 찾다니. 실제로 이 앨범을 만든 줄리아 하트의 리더 정바비는 언니네 이발관을 시작으로 가을방학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인디 신에 순정을 바쳐온 남자라 할 수 있겠다. 최근 ‘인디’라는 단어의 정의에 대해 논란도 있지만(그 논란의 이면에는 한국 대중음악 신의 특수성이 자리하고 있다) 정바비의 음악 여정이 이 땅의 인디 신의 한 단면으로 보여준다 해도 과언은 아닐 터. 가을방학이 정바비의 온유한 면, 바비빌이 조금은 질펀한 면을 보여줬다면, 줄리아 하트는 정바비의 그 자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정바비는 앨범 소개 글을 통해 “인디 달링이 실제로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구절을 저 혼자만의 방식으로 좋아했으며 이 역시 인디 달링이란 말이 ‘독립적인 애정의 대상’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어떤 스타일에 국한되기보다는 정바비의 지극히 개인적인 앨범이 아닌가 한다. 이 앨범의 가사들은 어떤 것들은 르포와 같고, 어떤 것들은 수필과 같다. 그리고 기타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멜로디들은 그야말로 꿈결 같다. 심연을 둥둥 떠오르게 하는 음악들.
아마도 이자람 밴드 ‘크레이지 배가본드’
아마도 이자람 밴드의 새 EP. 천상병 시인의 시에 멜로디를 붙인 7곡이 담겼다. 아마도 이자람 밴드는 2010년 ‘천상병 예술제’에 참여해 시인의 작품들에 멜로디를 붙인 노래들을 선보였고, 이 때 이번 앨범에 대한 계획을 세우게 됐다고 한다. 천상병 시의 매력이라면, 특유의 지성을 드러내면서도 비루한 소시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전한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때문에 천상병의 시는 2014년 비정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충분히 큰 울림을 주고 있는 것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 비쳐오는 이 ?빛도 예금통장은 없을테니 / 난 떳떳하다’라는 시구는 SNS 상에 온갖 잡문이 넘치는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안식의 시간을 준다. 아마도 이자람 밴드는 천상병의 시구에 거창한 음악을 입히지 않았다. 시의 정서에 잘 어울리는 사운드를 덧입히고 있으며, 이자람 역시 기교를 부리기는커녕 천상병의 시가 청자의 귀에 잘 들릴 수 있도록 또박또박 노래해주고 있다.
빌리 어코스티 ‘소란했던 시절에’
빌리 어코스티(본명 홍준섭)는 최근 각광받는 신예 남성 싱어송라이터다. 조금 억지스러운 표현이겠지만 ‘한국의 존 메이어’라는 칭호를 붙일만한 남성 아티스트들이 몇 있다. 김선욱, 이윤찬(24일), 그리고 빌리 어코스티가 그들. 존 메이어를 언급한 것은 단지 음악 스타일 때문이 아니다. 이들은 단지 감성에 호소하거나 풋풋함에 기대지 않고 출중한 기타실력을 바탕으로 완성도 높은 음악을 들려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금상 등 갖가지 수상경력으로 이미 실력을 인정받은 빌리 어코스티는 홍대 버스킹, 클럽공연 외에 아이돌그룹 JYJ의 기타 세션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활동을 해왔다. 첫 정규앨범인 ‘소란했던 시절에’를 통해 자신의 스타일을 십분 발휘해 들려주고 있다. 앨범에 흐르는 일관된 정서는 따스함이다. 우리가 흔히 서정적인 음악에 붙이는 따스함이 아니라, 통기타 및 악기들의 따스한 질감을 잘 살리고 있으며 빌리 어코스티의 노래는 훈풍을 담은 듯하다. ‘만약에 우리’는 근래 들은 가장 달콤한 곡. 조원선과 듀엣으로 노래한 ‘고스란히’도 잘 어울린다.
루디 스텔로 ‘Experience’
루디 스텔로의 정규 1집. 킬러컷츠, 레이시오스의 박상진(박상진), 슈가도넛, 레이시오스의 애쉬(기타, 신디사이저), 카피머신의 드럼을 담당한 주연(드럼) 세 명으로 이루어진 일렉트로 팝 밴드다. 최근 일렉트로니카 계열의 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 그에 비례하게 좋은 앨범들도 다수 나오고 있다. 특히 각광받는 팀들은 밴드 사운드와 전자음악을 적절히 섞어낸 이디오테잎, 글렌체크. 최근에는 프롬 디 에어포트, 루디 스텔로 등의 음악도 호평을 받고 있다. 루디 스텔로는 멤버들이 다양한 팀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는 만큼 감각적인 사운드를 뽑아내고 있다. 각각의 곡들의 스타일이 다채로워 마치 포트폴리오를 듣는 듯한 느낌이다. 일렉트로 팝 밴드답게 몸과 마음을 춤추게 하는 댄서블한 리듬의 곡들이 중심을 이루기는 하지만 ‘플레이 더 어스(Play The Earth)’와 같이 여유로운 비트의 곡들, 그리고 ‘비포 선라이즈(Before Sunrise)’와 같은 감상적인 곡들도 눈에 띤다. 밴드 사운드가 강조되다보니 전반적으로 록의 질감도 강하게 느껴진다. 친근한 멜로디 사이로 다소 실험적인 어법들도 들린다.
오재철 라지 앙상블 ‘Time Stamping’
트럼펫 연주자이자 작곡가인 오재철의 빅밴드 앨범. 오재철은 4년 간의 미국 버클리 음대 유학을 마치고 작년 10월 이 앨범을 미국에서 발매했다. 최근 한국에서 1년에 100장 이상의 재즈 앨범이 나오는 등 음반 발매가 늘고 있지만 그 중에서 빅밴드는 찾아보기 힘들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빅밴드가 앨범을 낸 경우는 재즈파크 빅밴드, 서울 솔리스트 재즈 오케스트라 정도. 해외에서는 한국 뮤지션 최정수가 영국에서 현지 연주자들과 함께 자신이 지휘, 작곡, 편곡을 담은 빅밴드 앨범을 낸 사례가 있다. ‘타임 스탬핑(Time Stamping)’은 오재철이 직접 작곡 편곡 지휘를 맡은 오리지널 곡들이 16인조 빅밴드의 연주로 담겼다. 빅밴드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혼 섹션이 만들어내는 풍성한 화음, 앙상블이 충실히 구현되고 있다. 또한 오재철은 과거 스윙 시대의 빅밴드에 머물러 있지 않으며 최근 마리아 슈나이더 빅밴드를 연상케 하는 보다 모던한 접근법, 그리고 드라마틱한 멜로디를 선사하고 있다. 또한 ‘리멤버드, 하들리(Remembered Hardly)’ ‘더 레프트, 파트2(The Left, part2)’에서 나타나듯이 각 악기의 솔로잉을 충분히 살리면서 매 곡마다 다채로운 장면을 보여준다.
넘버원 코리안 ‘내 작은 달력’
6곡이 담긴 넘버원 코리안의 새 EP. 넘버원 코리안은 브라스와 함께 스카 펑크를 중심으로 흥겨운 음악을 들려줘왔다. 이번 앨범에서는 기존의 경쾌함과는 다소 다른 음악을 선보이며 변신을 꾀하고 있다. 레게의 고전적인 어법과 함께 올드스쿨 소울의 요소를 십분 발휘하고 있는 것. 때문에 권우유의 노래는 전에 비해 다소 느긋하고, 조금 느끼하기도 하다. 밴드 편곡에 있어서는 브라스가 여전히 강조되고 있지만, 해먼드오르간이 강하게 드러나면서 끈적끈적한 맛을 전한다. 타이틀 ‘말할까 말까’ 역시 야외 페스티벌보다는 어두침침한 클럽에서 노래하는 것이 어울릴 법하다. 이것은 마치 버터를 바른 넘버원 코리안이라고나 할까? 넘버원 코리안의 색다른 매력을 느껴볼 수 있는 앨범.
Various Artists ‘Ronnie James Dio’
“최고의 헤비메탈-하드록 보컬리스트를 단 한 명만 뽑아 달라”는 무식한 요구에 “로니 제임스 디오”라고 답하면 당신은 유식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로니 제임스 디오처럼 완벽한 록 보컬리스트가 또 있을까? 중후한 음색을 기본으로 천둥이 치는듯한 강렬한 고음, 드라마틱한 멜로디라인, 탁월한 감정처리에 이르기까지 디오는 하나의 표상이라 할 수 있다. 2010년 아쉽게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디오를 추모하기 위해 모터헤드, 롭 헬포드, 글렌 휴즈, 메탈리카, 앤스랙스 등 역전의 용사들이 뭉쳤다. 신을 기리기 위해 전설들이 뭉친 셈이다. 이들 외에 색슨(Saxon)의 비프 바이포드, 코리 테일러, 덕 앨드리치, 루디 사르조, 마이크 포트노이, 배우 잭 블랙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메탈의 베테랑들이 총출동했다. 이처럼 더 화려할 수 없는 라인업은 로니 제임스 디오의 위용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각 뮤지션들은 로니 제임스 디오가 남긴 레인보우, 블랙사바스, 디오 시절에 남긴 명곡들을 각자의 이름값에 걸맞게 나름의 스타일로 재해석해내고 있다. 앨범 마지막 곡으로는 로니 제임스 디오의 노래 ‘디스 이즈 유어 라이프(This Is Your Life)’가 실려 청자를 숙연하게 한다. 앨범 속지에는 참여 뮤지션들이 생전의 디오와 함께 찍은 사진들이 담겨 다시 한 번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나스 ‘Illmatic XX’
힙합 팬들은 2013년을 나스가 한국에 온 해로 기억할 것이다. 2014년은 힙합의 바이블이라 평가받는 나스의 역사적인 데뷔작 ‘일매틱(Illmatic)’이 발매된지 20주년 되는 해다. ‘일매틱’이라는 타이틀은 ‘Ill을 뛰어넘는(Beyond Ill)’이란 뜻을 지닌 조어로 ‘정말 뛰어난, 궁극의’라는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Ill’은 ‘멋진, 죽이는’이라는 슬랭의 의미라고. MTV는 이 앨범을 ‘힙합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 2위’(2005년 선정)로 꼽았고 ‘롤링스톤’은 ‘랩 역사상 최고의 성취 중 하나’라고 평했다. 이외에도 ‘일매틱’의 위대함을 설명하는 아티클은 넘치고 넘친다. 20주년을 맞아 발매되는 ‘일매틱 XX(Illmatic XX)’는 원작의 리마스터반과 함께 데모, 라이브, 리믹스 등이 추가된 2CD로 발매됐다. ‘아임 어 빌런(I’m A Villain)’은 데뷔 전 나스의 랩을 감상할 수 있다.
아바 ‘ABBA Gold 40th Anniversary Edition’
아바의 40주년을 기념한 음반으로 1992년에 발매됐던 히트곡 모음집 ‘아바 골드(ABBA Gold)’에 다른 곡을 선별한 ‘모어 아바 골드(More ABBA Gold)’, 미공개 음원들과 B-사이드 곡들을 모은 ‘B-사이드(B-Sides)까지 3장의 CD로 이루어졌다. 아바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과거 라디오에서 ‘한국인이 사랑하는 팝 명곡 100선’을 선정하면 아바의 ‘댄싱 퀸(Dancing Queen)’이 비틀즈의 ‘예스터데이(Yesterday)’와 1위를 다퉜고, 가끔은 1등을 했던 기억이 난다. 아바가 한국인이 오랫동안 가깝게 지낸 팝음악이라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아바가 결성된 것은 1972년이지만, ‘아바’라는 팀 이름을 정식으로 쓴 것은 1974년 ‘워털루(Waterloo)’로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면서부터라고 한다. 그렇게 따지면 올해가 아바의 40주년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아바의 40주년 앨범은 2012년에도 다른 모양새로 나왔다. 뭐 어떠랴? 아바의 음악들이 팝의 고전인 것은 자명한 사실이고, 그만큼 많이 들려지는 것이 옳다고 본다. 특히 요즘같이 한국이 슬픔에 빠져 있을 때 아바의 아름다운 곡들이 위안을 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음악에게 고맙다고 노래하는 ‘땡큐 포 더 뮤직(Thank You For The Music)’처럼 말이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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