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민 / 사진제공=샘컴퍼니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양반, 상인, 노비 등 예전에는 계급이라는 것이 확실하게 있었는데, 학창시절에는 그 옛날의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어요. 사회에 나와서 살다보니 비단 옛날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던 차에, 이런 시나리오를 만나게 되어 좋았습니다. 이 시대에서 무의식으로 나눠진 계급 사회 안에서 사람들이 어떤 걸 양보해야하고 어떤 걸 바라봐야 하는지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좋았어요."

박정민이 넷플릭스 영화 '전,란'에 담긴 의미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임진왜란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전,란'은 조선 최고 무신 집안의 아들 종려(박정민 분)와 몸종 천영(강동원 분)이 각각 선조(차승원 분)의 최측근 무관과 의병이 되어 적대적으로 다시 만나는 이야기. 박정민은 무과 급제 후 선조의 호위를 맡게 되는 종려 역을 맡았다. 종려는 노비지만 천영을 벗으로 생각하며 우정을 쌓아가지만, 임진왜란 중 가족들을 잃은 일로 천영을 오해하면서 천영을 향한 분노를 키워간다."처음부터 종려 역할을 제안받았어요. 제가 좋아하는 시나리오들의 특징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분명하다는 겁니다. 그래야 감독님과 촬영 전후 조금 더 명확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고, 제가 연기해나가는 방식도 어느 정도 설계가 그려지기 때문이에요. 이 시나리오가 그런 면에서 매력적이었어요. 종려는 양반이지만 양반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다가 변해가는 인물이에요. 캐릭터적인 면에 있어서도 제가 도전해볼 만한 게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정식으로 사극 도전은 처음인 박정민. 한복부터 상투, 수염까지 익숙하지 않은 의상과 분장이 어색하기도 했지만 "분장과 의상이 주는 힘도 있었다. 그렇게 갖추면 자연스럽게 이 극과 어울리는 연기가 나왔다. 갖춰입고 사극 연기를 하니 나름 재미도 있었다. 옷, 장식, 칼도 예쁘고 아름다웠다. 할 때는 힘들었지만 카메라에 담길 때 뿌듯했다"고 촬영 당시를 떠올렸다. 검술액션에는 단순 동작을 넘어 종려의 심경, 천영과의 관계성을 잘 담기 위해 감정적인 부분도 신경썼다고. 자신의 의견도 적극적으로 제안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전,란'으로 새로운 얼굴을 보여줬다는 평가에 만족감을 표했다. "멋있으려고 의도한 건 아니에요. 옆에 강동원 선배님, 차승원 선배님 이 계시니까 명함을 내밀 수 없을 것 같아요. 하하. 의상감독님이 영화를 보시고 해주셨던 말씀이 좋았는데, '지금까지 박정민에게 볼 수 없었던 얼굴이 있어서 좋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그 점이 좋았다. 저도 영화를 한 경력이 좀 쌓이다 보니 관객들이 가진 제 기존 이미지나 얼굴이 있잖아요. 거기서 벗어난 걸 이 영화에서 보여줄 필요가 있겠다 싶어서 분장도 신경쓰고 했는데, 그런 말을 들으니 기분 좋습니다."

박정민 / 사진제공=샘컴퍼니


14년 차 배우인 박정민은 지금까지 약 46편의 작품에 참여하며 매번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제는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한 걸까. 박정민은 "더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유독 많이 하고 있는 요즘이다"라며 자신에게 또 다른 새로운 면을 발견하기 위한 시간을 갖고 싶다고 한다."내년에 쉴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걱정이 있어요. 제 개인적인 생활들을 하면서 거기서 얻는 새로운 감정들, 표정들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연기를) 재밌게 하고 싶고, 동어 반복하고 싶지 않아서요. 제가 뭐라고 '한계에 부딪쳤다'는 건 아니에요. 신나게 할 수 있는 계기를 찾고 싶어요. 거울도 좀 보고 어떤 표정도 있는지 분석도 해보고 그러려고 합니다."

박정민 / 사진제공=샘컴퍼니


내년에 휴식기를 가지게 된다면 "출판사 일을 열심히 해보고 싶다"는 박정민. 그는 "내가 운영하는 출판사가 있다. 작가분들 도움을 받아서 책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책방을 운영한 적도 있고 직접 산문집을 출간했을 만큼 책을 사랑한다. 박정민의 출판사에서는 최근 도서 '자매일기'를 출간했다. 향후 시각장애인을 위한 책도 준비하고 있다고.

"앞으로 나올 책이 몇 권 있어요. 제가 출판사를 만들고 운영하는 취지는 사회에서 배려받지 못하고 소외되는 존재들을 조금 더 들여다 보자는 데 있어요. 출판사 대표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은 그런 이야기를 세상에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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