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키리에의 노래' 이와이 슌지 감독 인터뷰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를 떠올리면, 지나가버린 청춘의 아련함과 가슴이 먹먹해지는 느낌이 든다. "오겡끼데스카"라며 추억 속 빛바랜 대상을 향해 안부를 묻던 '러브레터'(1995), 짝사랑하는 사람을 막연하게 바라보며 다가갈듯 다가가지 못하는 머뭇거림이 느껴지는 '4월 이야기'(1998),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소년의 버겁지만 아름다운 시절을 다룬 '릴리 슈슈의 모든 것'(2001)까지. 신작 '키리에의 노래'로 돌아온 이와이 슌지 감독은 키리에의 노래를 통해 재난으로 망가진 신체와 마음을 복원한다.
'키리에의 노래'는 노래로만 이야기하는 길거리 뮤지션 키리에(아이나 디 엔드), 자신을 지워버린 친구 잇코(히로세 스즈), 사라진 연인을 찾는 남자 나츠히코(마츠무라 호쿠토) 세 사람의 비밀스러운 사연을 들려줄 감성 스토리. 연출을 맡은 이와이 슌지 감독은 영화 '러브레터', '4월 이야기', '립반윙클의 신부'로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키리에의 노래'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에서 비롯된 상처, 사랑, 우정을 담은 자유와 희망에 관한 음악 영화 같다. 지진에 대한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겨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키리에의 노래'는 동일본대지진이 있던 이듬해에 집필했던 단편 소설에서 출발했다. 이후, 많은 것들이 융합되면서 이번 작품이 나왔다. 아이나 디 엔드의 캐스팅으로 초반에 설계했던 부분들이 많이 바뀌었다. 나와 관련된 많은 것이 세세하게 담겨있는 영화로, 특히 나츠히코(마츠무라 호쿠토)은 학창 시절의 기억에서 빌려온 캐릭터다. 그 친구가 실제로 미야기현의 이시노마키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 멘션에 자주 놀러 갔다. 나츠히코처럼 그 친구도 나중에 의사가 됐지만, 지금은 뇌졸중으로 몸이 안 좋아 요양시설에 들어가 있다. 옛 고향 친구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다.영화 '러브레터', '4월 이야기', '릴리 슈슈의 모든 것' 등으로 한국 관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신작 '키리에의 노래' 한국 개봉도 남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다.
한국을 처음 방문했던 것은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4월 이야기'로 초청받아서였다. 그 뒤에는 '러브레터'가 한국에서 개봉하면서 다시 방문하게 됐다. 그때 신인 감독이었는데, 한국에 방문했던 경험이 인생의 강력한 힘이자 지지가 됐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아이나 디 엔드가 연기한 키리에 캐릭터는 독특하다. 말을 할 때는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지만, 노래할 때는 자신만의 언어를 구사하며 세상에 소리치는 느낌이다. 처음에 캐릭터 구상을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다.
노래하는 주인공이 나오는 설정은 예전부터 있었다. 말을 못 하는 여자로 구체화한 것은 2011년에 동일본대지진을 겪으면서 덧붙인 아이디어였다. 두 부분이 융합하면서 키리에라는 캐릭터가 탄생했다.
키리에 역의 아이나 디 엔드는 일본의 유명 아이돌 그룹 BiSH 멤버다. '키리에의 노래'를 통해 처음 연기를 도전하는 만큼 우려도 있을 것 같다. 어떤 매력으로 캐스팅을 진행하게 됐나.아이나 디 엔드가 무대에서 노래하는 영상을 봤다. 엄청난 표현력을 지니고 있어서 연기에 대한 우려는 따로 없었다. 한 가지 걱정은 고등학생 시절의 철없는 모습도 표현해야 했는데, 잘할지 고민은 됐다. 첫 촬영이 설원에서 고등학생의 모습을 촬영하는 것이었고, 현장에서 아이나 디 엔드의 연기를 보고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녀의 재능은 훨씬 많고 아직 영화에 보여주지 못한 것이 많다.
음악 영화에 도전하게 된 계기가 뭔가.전작인 '라스트 레터' 안에 들어가는 소설이 있다. 소설을 확장해서 '라스트 레터'의 속편을 만들려고 했는데, 실현되지 못했다. 대신 소설 속의 인물이 '키리에의 노래'의 기본 이야기가 됐다. 처음에는 히로세 스즈가 연기한 마오리가 도쿄에 가서 노래하는 이야기였다. 아이나 디 엔드를 캐스팅하면서 노래를 잘하는 사람으로 바뀌면서 음악 영화가 된 것 같다.
코바야시 타케시 음악감독과 영화 '릴리 슈슈의 모든 것',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3·11: 이와이 슌지와 친구들' 등 세 작품을 함께 작업했다. 영화감독의 입장에서 코바야시 타케시와의 협업은 어떤가.
코바야시 타케시 음악감독은 단순히 작업을 하는 관계를 넘어서 오랜 기간 함께 창작을 해온 동료다. 가끔 술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인간적으로 코바야시 타케시는 사회 공헌 활동도 많이 하는데, 그를 존경하는 바다.
원래 179분 분량(디렉터스컷)에서 일반상영본은 119분으로 줄여서 개봉했다. 직접 편집했다고 들었다. 어떤 부분에 중점을 뒀는가.
이 작품은 음악이 굉장히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3시간 분량의 '키리에의 노래: 디렉터스 컷'에서 2시간이 이야기, 나머지 한 시간은 음악(콘서트)이라면, 2시간 버전은 1시간이 음악이고 나머지 1시간이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혹시 한국 배우와 협업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눈여겨보고 있는 배우는 따로 없나.
기회가 된다면, 한국 배우와 협업을 해보고 싶다. '장옥의 편지'(2017)로 배두나 배우와 단편 작업을 같이 해본 적이 있다. 하지만 장편 영화를 해본 적이 없어서 같이 해보고 싶다. 또한, 이번에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송강호 배우를 만나 악수를 하기도 했는데 같이 작업을 해보고 싶다.
평소 K-콘텐츠도 즐겨본다고 들었다. 따로 챙겨본 콘텐츠나 창작에 영향을 받은 경험이 있나.
영화를 처음 시작한 순간부터 한국 영화의 성장을 같이 지켜봤기에, 한국 콘텐츠에 친근감을 가지고 있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 빠져서 본 적이 있다. 한국 콘텐츠는 굉장히 훌륭하고 진화해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경우, 영화와 만화의 문화가 분리되어 일종의 괴리감이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또한, 애니메이션에 비해서 실사 팬들이 압도적으로 적어 투자되는 예산도 낮다. 그럼에도 AI와 같은 새로운 기술들이 나왔으니 상상한 것을 창조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다.
팬데믹으로 인해 극장 상황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한국 관객들은 신작 '키리에의 노래'를 찾아보면서 기대하고 있다. 소감이 어떤가.
나름대로 과거의 작품을 돌아보지 않고 관객들이 기대하는 작품들이 만들기 위해서 열중했던 것 같다. 나의 작품을 이해해주고 기다리는 팬들이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앞으로도 뒤처지지 않고 실망하지 않을만한 작품을 만들 것이니 응원 부탁한다(웃음)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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