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보다 캡처


재주를 부리는 사람 따로 있고 돈 받는 사람 따로 있다. 출판계에서 자조적으로 나오는 목소리다. 캐릭터를 만든 창작자의 주머니는 가볍고 출판사와 유통사 플랫폼 주머니만 묵직하다.

유독 출판계에서 창작의 가치를 존중받지 못하는 불합리한 사건이 잦다. 창작자만 호구(매우 위태로운 처지나 형편)가 되는 불공졍한 계약이 반복되고 있지만, 문제를 삼는 경우는 드물다. 법이 창작자를 보호해주고 있지 않기 때문. 지난 11일 '검정고무신' 캐릭터를 만든 이우영 작가가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그는 2018년부터 캐릭터 대행회사 형설출판사(이하 형설)와 저작권 위반으로 소송 중이었다. 저작권 위반으로 고소를 당한 쪽은 이우영 작가였다.

1992~2006년 '소년챔프'에 연재된 '검정고무신'은 1960년대 서울을 배경으로 초등학생 기영이와 중학생 기철이와 가족들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그린 만화. 이우영·이우진 작가가 그림을 그리고 이영일 작가가 글을 썼다. 당시 최장수 연재 기록을 세웠고 45권짜리 단행본이 출간됐다.

텐아시아는 '검정고무신' 분쟁배경에 관한 사실확인서를 입수했다. 이우영 작가와 형설의 소송이 길어지면서 형설 측이 법원에 제출한 낸 문서다.

1998년 KBS와 새한동화의 송정율 감독 제작 투자로 '검정고무신'이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됐다. 우리에게 익숙한 애니메이션 캐릭터는 원작자의 캐릭터를 송정율 감독이 애니메이션에 맞게 살짝 수정했지만, 원 캐릭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검정고무신' 만화의 반응이 좋아 2000년(검정고무신 2기), 2004년(검정고무신 3기), 연달아 제작하게 됐다. 이때까지 '검정고무신 만화'의 저작권은 KBS 미디어가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었다. 형설은 2004년경부터 만화를 출판하며 이영일 작가와 故 이우영 작가와 접촉했다. 출판사 측은 검정고무신' 저작물의 줄거리 및 캐릭터를 기획하고 진행 방향을 결정했으며 '검정고무신' 저작물 창작에 깊숙이 관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형설은 2007년 10월 출판의 권리를 형설이 관리하는 제안을 했고 작가들은 이에 수긍하고 손해배상 조항을 추가해 사업권계약서를 체결했다. 이후 2008년 형설의 대표이사가 다른 작가들과 함께 저작권자로 명시된 채 사업권설정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검정고무신'은 저작권위원회에 등록된 미술저작물이 아니어서 저작권보호에 한계가 있었고, 작가들과 협의해 저작권위원회에 저작자 등록을 했다. 이우영 작가는 군대에 있을 때 동생이 연재를 대신했기에 동생의 지분을 요청했고, 이를 받아들여 '검정고무신'에 대한 지분은 형설 장대표가 36%, 이영일 작가가 27% 이우영 작가가 27%, 이우진이 10%가 됐다. 형설은 '검정고무신' 활성화를 위해 애니메이션을 계약에 포함시켰고 투자금을 지불했다. '검정고무신' 4기 애니메이션은 시청률 1위를 기록했고 많은 시상식에서 상을 받았다. 형설은 '검정고무신' 4기의 성공과 캐릭터 상품화 등이 형설 측의 투자와 공격적 마케팅 때문이라고 밝혔다.

분쟁의 시작은 이우영 작가가 2018년 '검정고무신' 지분을 다시 돌려 달라고 요구하면서다. 이우영 작가는 형설 측에 직접 사업을 할테니 모든 사업권 계약은 무효라고 주장하며 KBS를 비롯해 새한동화, 라이센싱 사업자들에 내용증명을 보냈다.

이우영 작가는 애니메이션 4기 진행 알지 못했고 동의하지 않았다, 사업권설정계약이 무효다, 저작자 등록이 잘못됐다고 주장하며 형설 장대표를 고소했다. 계약이 이뤄지며 원작자의 몫이 지나치게 줄었다고도 주장했다.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는 원저작자에게는 3% 수준만 가게 하고, 이마저도 캐릭터 저작권 보유 비율대로 나눠 분배하도록 했다고 부연했다. 이런 계산법으로 KBS와 함께 '검정고무신' 4기를 만들 때까지 형제 작가가 4년 동안 받은 돈은 435만원이었다는 게 이우영 작가의 설명이다.

형설이 제출한 작가별 계약금 지급내역에 따르면 2014년 1분기부터 2020년 1분기까지 이우영 작가가 받은 정산금은 1042만원.

형설 측은 이우영 작가가 다른 곳에서 만화를 그렸다며 1억 원의 민사소송까지 제기했다.

이우영 작가는 다수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계약 기간도 없는 부당한 계약의 수정을 제가 요구하면서부터 갈등이 불거졌고, 급기야 피소까지 당했다"고 말했다. 또 '검정고무신' 극장판도 "원작자인 저에게 허락도 구하지 않고 만들었으며 얼마 되지 않는 원작료 까지 지급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이우영 작가는 "캐릭터 대행 회사로부터 자신들 허락 없이 검정고무신 캐릭터를 등장시킨 만화를 그렸다는 이유로 피소돼 소송을 진행중"이라며 "원작자가 왜 캐릭터 대행회사 허락을 얻어서 만화를 그려야 하는지, 왜 피고인의 몸으로 재판을 받아야 하는지 어리둥절하기만 합니다만 순리대로 잘 해결될거라 믿고 있다"고 인터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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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 '검정고무신'을 원작으로 하지만, 애니메이션 캐릭터는 원작을 수정 보완한 엄연히 다른 것이라는 입장이다. 당시 관행에 따라 맺은 계약을 최근 나온 문체부 표준계약서와 비교할 순 없다고 주장한다.

인기 캐릭터의 원작자의 정산금이 1042만 원이라는 건 상당히 납득하기 어렵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창작의 가치가 창작자의 노력이 존중받지 못하는 건 문제가 있다.

'검정고무신'을 둘러싼 소송은 창작자가 보유한 저작권을 사업이라는 명목으로 포괄적, 배타적으로 양도받아 행사해 생긴 일이다. 만화계는 이를 불공정한 계약으로 보고 있다. 출판계에서 원작자가 돈을 받지 못하는 상황은 반복되고 있다. '구름빵'의 백희나 작가 역시 소송에 휘말려 패소했다. 불공정한 상황에서 창작자를 지켜줄 수 있는 건 법이다. 창작자를 보호할 법의 개선이 시급해 보인다.

우빈 텐아시아 기자 bin0604@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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