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바뀌는 꼴 좀 보고 싶습니다"
같은 곳을 향해 가는 두 남자가 있다. 정치인 김운범(설경구)과 그를 돕고자 나타난 선거 전략가 서창대(이선균)다.
돈 없고 백도 없지만, 김운범은 세상을 바꾸겠다는 열정 하나로 정치판에 뛰어 들었다. 결과는 뻔했다. 열정만으로 바꿀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었다. 네 번이나 낙선한 김운범 앞에 서창대가 나타났다. 서창대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선거 전략을 펼쳤다. 선거판을 읽는 명석한 두뇌, 여기에 '승리'를 위해서라면 물불 안 가리는 방식이 결국 통했다. 김운범은 서창대와 손을 잡은 이후 연이어 선거에서 승리하며 승승장구 했고, 결국 당을 대표해 대통령 후보까지 올라선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날. "옛날에 그리스 살던 아리스토텔레스란 아저씨가 이런 말을 했다. 정의가 바로 사회의 질서다." 이렇게 말하는 김운범을 향해 서창대는 "플라톤은 정당한 목적에는 수단을 가릴 필요가 없다고 했다. 플라톤이 아리스토텔레스 스승이다."라고 받아쳤다.
승리의 목적에는 수단과 정당성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김운범과 과정보다 결과를 중요시 하는 서창대 사이에 점차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시대와 분야를 막론하고 누구나 마주할 수 있는 딜레마다. 끝까지 정당해야 할까, 살기 위해서라면 양심 따위는 버리는 것이 맞을까.
전작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을 통해 마니아 팬을 흡수한 변성현 감독은 1960년~1970년대 시대적 배경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차별화 된 소품과 의상으로 절로 감탄하게 하는 미장센을 완성했다.
실존 인물인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그의 선거 참모 엄창록을 모티브로 만든 이 영화에서 배우들의 연기는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특히 설경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그대로 흉내내지 않았다. 그의 행보를 쫓았지만, '김운범'이라는 인물로 재창조 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그러면서도 말할 때의 톤, 걸음걸이 등 김대중 전 대통령을 완전히 지우지는 않았다.
이선균 역시 역사적인 기록이 많지 않은 실존 인물을 표현하기 보다, '물불 안가리는 선거전략가', 그리고 출생 환경 탓에 '그림자'처럼 숨어야 했던 '서창대'라는 인물로 온전히 담아내기 위해 힘을 쏟았다.
'킹메이커'에는 짜릿한 액션, 배꼽을 빠지게 하는 코믹함은 없다. 그래서 자칫 정치와 인간의 갈등 등을 담아내는 이야기가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를 채우는 것이 배우들의 연기 향연이다. 설경구, 이선균 뿐만 아니라 조우진부터 김성오, 유재명, 전배수, 윤경호, 김새벽, 서은수, 박인환까지 배역의 크기에 상관 없이 조연들이 신스틸러를 자처해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공교롭게도 현실에선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연일 뉴스에선 대통령 후보들의 지지율, 행보 등을 보도 하고 있다. 변 감독과 배우들은 "선거를 염두에 두고 개봉시기를 잡은 것이 아니다. 코로나19로 밀린 끝에 선보이게 된 것"이라고 강조 했다. 아무렴 어떤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서창대가 잘못 됐다고 말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누군가에겐 선거 시기를 타고 관심을 유발하는 것도 하나의 수단 일텐데 말이다.
노규민 텐아시아 기자 pressgm@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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