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 감독 흑백영화 '자산어보' 주연
입신양명 꿈꾸는 청년 어부 창대役
"창대의 시각 아는 게 중요했다"
"설경구와 호흡, 더할 나위 없이 행복"
입신양명 꿈꾸는 청년 어부 창대役
"창대의 시각 아는 게 중요했다"
"설경구와 호흡, 더할 나위 없이 행복"
"영화 마지막 지점에서 창대가 좋은 어른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영화 '자산어보'에서 흑산도의 청년 어부 창대는 가난하고 서자라는 미천한 신분을 갖고 있다. 성리학의 도리를 따라 입신양명을 꿈꾸며 글을 배우지만, 그 열망만큼 조건이 뒷받침되진 못하는 것이다. 이미 쇄락해가던 조선 후기 왕조의 흐름 속에 창대가 따르고자 했던 본래의 성리학도 무너져가고 있었다. 곧은길로 나아가고자 했으나 썩어가는 세상 속에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창대를 연기한 변요한은 "불안함과 용기를 모두 갖고 있는 창대의 모습이 매력적이었다"며 "창대의 용기와 저의 용기가 같이 맞아떨어졌다"고 말했다.
창대는 정약전 선생의 저서 자산어보 서문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실존인물이나 알려진 바는 없다. 자산어보 서문에서 정약전 선생은 그에 관해 가난해 책이 많진 않았으나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해양생물에 박식했으며 차분하고 꼼꼼한 성품을 가진 섬마을 소년이라고 소개한다. 정약전 선생은 그에게 도움을 받아 자산어보를 완성했다고 적었다. 기록이 거의 없는 인물이기에 창대의 대부분은 변요한 스스로 만들어야 했다.
"창대는 분명 저와 닮아있는데 제 그릇만으로 표현하기엔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친구들, 그리고 저보다 인생을 더 많이 사신 분들까지 주변을 돌아보니 그들과도 다 닮아있더라고요. 그분들을 통해 창대 캐릭터에 영감을 얻었고 시나리오라는 뿌리를 바탕으로 파생시켜나갔죠."변요한이 어려웠던 것은 '전라 흑산도 어부'로서 창대의 모습은 아니었다. 전라 사투리를 배우고, 물고기를 낚거나 노를 젓는 법을 익히는 노력도 기울였지만 더 중요했던 건 창대의 마음에 스며드는 일이었다. 그는 "창대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아는 게 어려웠다"고 이야기했다. 순수한 섬 청년 창대의 얼굴에 세월이 깃들며 조금씩 달라지는 얼굴과 분위기도 인상적이다.
"서른세 살에 '자산어보'를 찍었어요. 젊은 창대를 연기할 땐 젊어지고 싶었고 마지막 장면이라는 목적지까지 나아가면서 시간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이 들고 싶었죠. 시나리오를 통해 내용이야 물론 알고 있었지만 창대가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했어요.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해요. 창대의 선택들도 다 용기였다고 생각해요. 응원하는 마음으로 연기했죠."
수묵화의 질감이 느껴지는 고상함은 흑백영화만이 담아낼 수 있는 영상미다. 화려한 색이 없기에 인물이 더욱 또렷하게 보인다는 건 배우에겐 두려움이 될 수도 있는 부분이다.
"흑백영화는 색채감이 없어요. 오로지 풍경, 그리고 배우의 표정과 눈빛으로 묘사되죠. 알고 있었지만 겁이 났어요. 그래도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건 이준익 감독님 덕분입니다. 본질적으로 다가가자, 서툴더라도 거짓말 하지 말자고 하셨죠. 맞아떨어지는 연기가 아니라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죠. 그래서 오로지 창대로서 말하도록 집중했어요. 그랬더니 좀 더 수월해졌고 다른 영화와 다르지 않다고 느꼈죠."
극 중 사학죄인 정약전을 적대적으로 여기던 창대가 그와 수직적 관계인 스승과 제자, 수평적 관계인 벗으로 거듭나는 과정은 뭉클함을 자아낸다. 변요한은 정약전을 연기한 설경구와 "같은 카메라 앞에서 정약전 선생과 창대로서 숨 쉬었고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고 돌아봤다."기본이지만 지키기 어려운 건데 설경구 선배님은 아침에 일어나서 주변 정리를 하고 의상 입을 준비를 미리 하고 오세요. 현장에서는 이미 숙지돼 있어서 아무리 긴 대사로 후루룩 소화해낼 수 있을 만큼 약전 선생이 돼 있으시죠. 카메라 앞에 설 때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 후배로서 배웠어요. 이게 공적인 모습이라면 사적으론 따뜻하세요. 보여주기식 언행이 아니라 자연스레 묻어나는 기품이 멋있는 분이시죠. 계산적이지 않고 사랑이 많으신 분이에요."
변요한은 "해를 거듭할수록 발전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데뷔 10년 차를 맞은 그는 배우로서, 사람 변요한으로서 어떤 소망을 갖고 있을까.
"좋은 사람의 기준이 뭔지 모르겠지만 잘 살고 싶어요. 정직하고 정의롭게. 진정성이 없다면 진정성 있는 척을 하고 싶지도 않아요. 정직하게 살아간다면 제 그릇도 넓어지고 사랑도 많아지고, 지킬 건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될 것 같아요. 이런 틀 안에서 산다면 좋은 배우도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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