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식 평론가가 추천하는 이 작품]
수많은 관객에게 사랑 받는 대작부터 소수의 관객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는 숨은 명작까지 영화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텐아시아가 '영화탐구'를 통해 영화평론가의 날카롭고 깊이 있는 시선으로 우리 삶을 관통하는 다채로운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박태식 평론가가 이번에 소개할 영화는 재개봉작인 '굿바이'입니다.
'굿바이'는 첼리스트에서 장례지도사가 된 다이고가 떠나는 사람들과 남겨진 우리에게 전하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이 안겨주는 행복과 삶의 가치를 일깨우는 영화입니다.
우리는 한 때 죽음을 끼고 살았다. 집안 어르신이 돌아가시면 안방에 병풍을 치고 뒤에 모셔뒀다가 하루 뒤 입관하고 다시 하루가 지나면 발인을 하여 장지로 보내드렸다. 그리고 동네를 오가면서 가까운 선산에 묻힌 어르신에게 즐거이 인사드리곤 했다. 마치 살아계신 듯 말이다. 한데 세상이 많이 바뀌어 집에서 돌아가셨든 밖에서 운명하셨든 시신을 병원 냉동실에 넣어뒀다가 시 외곽에 마련된 공원묘지에 모신다. 그리고 1년에 한두 차례 성묘를 가는데서 후손된 도리를 찾는다. 하지만 그나마도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광경이 됐는데 대부분 고인을 화장해서 보내드리기 때문이다. 그리된 데는 땅이 부족하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재개봉작인 '굿바이'(감독 다키타 요지로)를 보며 새록새록 옛 생각이 난 것은 당연한 이치다.한 때 동경에서 잘나갔던 첼로 연주자 다이고(모토키 마사히로)는 교향악단이 해체되는 바람에 아내 미카(히로스에 료코)와 함께 쓸쓸히 고향으로 돌아온다. 첼로 연주 외엔 딱히 이렇다 할 재주가 없는 그는 '여행을 도와주는 회사'에서 낸 구인 광고를 봤고, 사장인 이쿠에이(야마자키 츠토무)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자신이 염습사(장례지도사) 견습 사원 면접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깜짝 놀란 다이고는 회사 문을 나서려 했으나 사장이 제시하는 월급 액수는 차마 그의 발길을 떨어지지 못하게 만든다. 사실 구인광고에서 취직까지의 과정이 워낙 재미있어 처음엔 이 영화가 코미디는 아닌가 하고 착각할 정도였다. 그렇게 전직 첼리스트의 염습사 인생이 시작된다.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직업들로 무엇이 있을까. 감독은 첼로 연주자와 염습사를 상대적인 직업으로 제시한다. 첼리스트는 손이 생명이다. 부드럽고 강하고 정확하게 눌러주는 손힘이 있어야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염습사도 손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하는 직업임에 틀림없다. 시신에 옷을 입히고 손가락 힘을 이용해 주름을 펴고 예쁘게 화장을 마쳐야지 고인을 보내는 가족들의 회한이 줄어든다. 그러니 최선을 다할 수밖에. 전혀 엉뚱한 상상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두 직업은 서로 친밀하게 만나고 있다. 감독의 신선한 발상 덕분이다.아내, 남편, 자식, 부모, 친척 등 고인의 가족들은 염하는 자리에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싸움도 하고 화해도 한다. 죽은 자가 산 자의 기분을 지배하는 셈이다. 그 모든 과정에서 다이고는 주로 방관자의 자리에 서 있지만 가끔씩 본의 아니게 끌려들어가기도 한다. 염습사를 천직으로 여겨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고인의 가족끼리 싸움을 하다말고 갑자기 다이고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인생 그렇게 막 살다가는 저렇게 시신이나 만지는 염쟁이가 되고 만다'는 몹쓸 말을 한 것이다. 말을 한 당사자는 물론 젊은이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서였겠지만 그 말을 듣고 있어야 하는 다이고는 크나큰 맘의 상처를 받는다. 게다가 버스에 같이 탄 여학생들은 다이고에게서 알코올 냄새가 난다며 자리를 피하고 가까웠던 친구는 자신의 딸을 다이고에게서 떼어 놓는다. 그 중에서도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하루는 아내가 직업의 포기를 요구하며 떠나버린 날이었다. 모두 다이고가 지고가야 할 업이다.
'굿바이'에서 받은 인상은 감독이 복선을 매우 좋아한다는 점이다. 어린이 첼로, 이런 저런 모양의 자갈돌맹이들, 아버지의 희미한 얼굴, 목욕탕의 주인 할머니와 손님 할아버지, 할머니 목에 감았던 수건, 들판에서 첼로연주, 버섯과 민물 문어와 닭튀김 등등. 그렇게 여기저기 깔아놓은 복선들을 쫓다 보면 어느 사이엔가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에 접근하게 된다. 곧 삶과 죽음은 하나라는 것이다.생각해봤더니 필자도 몇 번인가 염하는 과정을 지켜본 적이 있었다. 그 중 어머님과 아버님을 염하던 모습은 생생히 기억난다. 시신이 깨끗하게 닦여지고 수의를 입히고 입안에 쌀을 물리고 천으로 얼굴을 덮기까지 꽤 오랫동안 고인에게서 조금도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잠시 염습사의 얼굴을 보았는데 면도를 얼마나 깔끔하게 했는지 턱 부분이 유난히 파래보였다. 그리곤 끝. 눈물이 앞을 가려 더 이상 고인을 자세히 지켜볼 수 없었다. 그렇게 이별은 너무나 슬프게 다가왔다.
'굿바이'는 고인을 보내는 가족의 입장이 아니라 염습사의 입장에서 만들어졌다. 그의 턱은 여전히 파랬고 익숙한 손놀림도 예전에 보던 것이었고 진행되는 과정마다 일일이 설명을 붙이는 것도 귀에 선했다. 그러나 염습사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전혀 들어보지 못한 것이었다. 살아있으면서도 죽음에 가까이 가 있는 사람인 염습사, 그들은 삶과 죽음이 내는 소리를 모두 듣고 있었다. 평소에 우리는 마치 죽음이란 우리와 상관없는 일인 양 태평스럽다. 하지만 죽음은 우리 주위를 끊임없이 맴돌다가 부지불식간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넋 놓고 살아가는 우리와는 달리 장례 일을 담당하는 이들에게 죽음이란 어찌 보면 삶보다 가깝게 느껴질 수 있겠다.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한 때 우리가 그랬듯 죽음을 끼고 산다. 죽지 않으려면 먹어야 하고 기왕 먹을 양이면 맛있게 먹는 게 바람직하다. 염습사는 불교, 유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등 종교에 구애받지 않는다. 어떤 신앙을 가진 사람이든 최선을 다해 꾸미면 그로써 족하다. 아내를 잘 보내줬다며 감사를 하든, 살아있을 때 얼굴과 너무 다르다며 비난을 하든, 최선을 다해 보내드리면 되는 것이다. 다이고에게 묶여있던 삶과 죽음의 매듭은 아버지의 염을 치르면서 풀어진다. 희미했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면서 다이고의 한도 그 긴 여정을 끝낸다. 81회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수상작이다.
박태식(영화평론가)
박태식 평론가가 이번에 소개할 영화는 재개봉작인 '굿바이'입니다.
'굿바이'는 첼리스트에서 장례지도사가 된 다이고가 떠나는 사람들과 남겨진 우리에게 전하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이 안겨주는 행복과 삶의 가치를 일깨우는 영화입니다.
우리는 한 때 죽음을 끼고 살았다. 집안 어르신이 돌아가시면 안방에 병풍을 치고 뒤에 모셔뒀다가 하루 뒤 입관하고 다시 하루가 지나면 발인을 하여 장지로 보내드렸다. 그리고 동네를 오가면서 가까운 선산에 묻힌 어르신에게 즐거이 인사드리곤 했다. 마치 살아계신 듯 말이다. 한데 세상이 많이 바뀌어 집에서 돌아가셨든 밖에서 운명하셨든 시신을 병원 냉동실에 넣어뒀다가 시 외곽에 마련된 공원묘지에 모신다. 그리고 1년에 한두 차례 성묘를 가는데서 후손된 도리를 찾는다. 하지만 그나마도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광경이 됐는데 대부분 고인을 화장해서 보내드리기 때문이다. 그리된 데는 땅이 부족하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재개봉작인 '굿바이'(감독 다키타 요지로)를 보며 새록새록 옛 생각이 난 것은 당연한 이치다.한 때 동경에서 잘나갔던 첼로 연주자 다이고(모토키 마사히로)는 교향악단이 해체되는 바람에 아내 미카(히로스에 료코)와 함께 쓸쓸히 고향으로 돌아온다. 첼로 연주 외엔 딱히 이렇다 할 재주가 없는 그는 '여행을 도와주는 회사'에서 낸 구인 광고를 봤고, 사장인 이쿠에이(야마자키 츠토무)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자신이 염습사(장례지도사) 견습 사원 면접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깜짝 놀란 다이고는 회사 문을 나서려 했으나 사장이 제시하는 월급 액수는 차마 그의 발길을 떨어지지 못하게 만든다. 사실 구인광고에서 취직까지의 과정이 워낙 재미있어 처음엔 이 영화가 코미디는 아닌가 하고 착각할 정도였다. 그렇게 전직 첼리스트의 염습사 인생이 시작된다.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직업들로 무엇이 있을까. 감독은 첼로 연주자와 염습사를 상대적인 직업으로 제시한다. 첼리스트는 손이 생명이다. 부드럽고 강하고 정확하게 눌러주는 손힘이 있어야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염습사도 손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하는 직업임에 틀림없다. 시신에 옷을 입히고 손가락 힘을 이용해 주름을 펴고 예쁘게 화장을 마쳐야지 고인을 보내는 가족들의 회한이 줄어든다. 그러니 최선을 다할 수밖에. 전혀 엉뚱한 상상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두 직업은 서로 친밀하게 만나고 있다. 감독의 신선한 발상 덕분이다.아내, 남편, 자식, 부모, 친척 등 고인의 가족들은 염하는 자리에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싸움도 하고 화해도 한다. 죽은 자가 산 자의 기분을 지배하는 셈이다. 그 모든 과정에서 다이고는 주로 방관자의 자리에 서 있지만 가끔씩 본의 아니게 끌려들어가기도 한다. 염습사를 천직으로 여겨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고인의 가족끼리 싸움을 하다말고 갑자기 다이고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인생 그렇게 막 살다가는 저렇게 시신이나 만지는 염쟁이가 되고 만다'는 몹쓸 말을 한 것이다. 말을 한 당사자는 물론 젊은이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서였겠지만 그 말을 듣고 있어야 하는 다이고는 크나큰 맘의 상처를 받는다. 게다가 버스에 같이 탄 여학생들은 다이고에게서 알코올 냄새가 난다며 자리를 피하고 가까웠던 친구는 자신의 딸을 다이고에게서 떼어 놓는다. 그 중에서도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하루는 아내가 직업의 포기를 요구하며 떠나버린 날이었다. 모두 다이고가 지고가야 할 업이다.
'굿바이'에서 받은 인상은 감독이 복선을 매우 좋아한다는 점이다. 어린이 첼로, 이런 저런 모양의 자갈돌맹이들, 아버지의 희미한 얼굴, 목욕탕의 주인 할머니와 손님 할아버지, 할머니 목에 감았던 수건, 들판에서 첼로연주, 버섯과 민물 문어와 닭튀김 등등. 그렇게 여기저기 깔아놓은 복선들을 쫓다 보면 어느 사이엔가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에 접근하게 된다. 곧 삶과 죽음은 하나라는 것이다.생각해봤더니 필자도 몇 번인가 염하는 과정을 지켜본 적이 있었다. 그 중 어머님과 아버님을 염하던 모습은 생생히 기억난다. 시신이 깨끗하게 닦여지고 수의를 입히고 입안에 쌀을 물리고 천으로 얼굴을 덮기까지 꽤 오랫동안 고인에게서 조금도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잠시 염습사의 얼굴을 보았는데 면도를 얼마나 깔끔하게 했는지 턱 부분이 유난히 파래보였다. 그리곤 끝. 눈물이 앞을 가려 더 이상 고인을 자세히 지켜볼 수 없었다. 그렇게 이별은 너무나 슬프게 다가왔다.
'굿바이'는 고인을 보내는 가족의 입장이 아니라 염습사의 입장에서 만들어졌다. 그의 턱은 여전히 파랬고 익숙한 손놀림도 예전에 보던 것이었고 진행되는 과정마다 일일이 설명을 붙이는 것도 귀에 선했다. 그러나 염습사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전혀 들어보지 못한 것이었다. 살아있으면서도 죽음에 가까이 가 있는 사람인 염습사, 그들은 삶과 죽음이 내는 소리를 모두 듣고 있었다. 평소에 우리는 마치 죽음이란 우리와 상관없는 일인 양 태평스럽다. 하지만 죽음은 우리 주위를 끊임없이 맴돌다가 부지불식간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넋 놓고 살아가는 우리와는 달리 장례 일을 담당하는 이들에게 죽음이란 어찌 보면 삶보다 가깝게 느껴질 수 있겠다.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한 때 우리가 그랬듯 죽음을 끼고 산다. 죽지 않으려면 먹어야 하고 기왕 먹을 양이면 맛있게 먹는 게 바람직하다. 염습사는 불교, 유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등 종교에 구애받지 않는다. 어떤 신앙을 가진 사람이든 최선을 다해 꾸미면 그로써 족하다. 아내를 잘 보내줬다며 감사를 하든, 살아있을 때 얼굴과 너무 다르다며 비난을 하든, 최선을 다해 보내드리면 되는 것이다. 다이고에게 묶여있던 삶과 죽음의 매듭은 아버지의 염을 치르면서 풀어진다. 희미했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면서 다이고의 한도 그 긴 여정을 끝낸다. 81회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수상작이다.
박태식(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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