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지원 기자]
“다양한 인물이 나오는데도 한 인물에게로 치우치지 않고 누구 한 명도 소외되지 않아요. 영화가 끝나면 캐릭터들 한 명 한 명이 다 기억에 남을 겁니다. 많은 캐릭터, 독특한 구성은 관객들이 영화가 복잡하다고 느낄 수도 있는 요소인데 이 영화는 명료해요.”

지난 19일 개봉한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 미란 역으로 출연한 배우 신현빈은 영화를 이렇게 소개했다. 미란은 사기로 생긴 빚 때문에 가정이 무너지고 불행의 늪에 빠진 주부다. 이 영화는 거액이 든 돈 가방을 차지하기 위해 저마다의 계략을 꾸리는 인간들의 이야기다. 신현빈을 비롯해 전도연, 정우성, 배성우, 윤여정, 진경, 정가람이 주연한 멀티캐스팅 작품이다. 신현빈은 자신이 가장 마지막에 캐스팅됐다고 밝혔다.

“미팅한 날 감독님이 캐스팅하겠다고 결정했어요. 편한 마음으로 갔던 터라 많이 놀랐죠. 기쁘고 감사했지만 부담감도 컸어요. 하고 싶은 마음은 컸지만 하게 될 거라고는 예상을 못했거든요. 미팅에서 감독님께 ‘누가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누군가 하게 된다면 이러이러하면 좋겠다’는 얘기를 몇 번 했었어요. 그 얘길 들은 감독님이 ‘본인이 하시면 된다’고 하셨죠. 하하.”
미란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오히려 악화되기만 한다. 그의 남편은 분노와 배신감으로 미란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심지어 미란에게 가정폭력까지 휘두른다. 한계에 다다른 미란은 술집에서 알게 된 진태(정가람 분)와 함께 남편을 겁줄 계획을 세운다. 미란은 남편 앞에서는 수동적이고 나약하지만 진태를 만난 후에는 대담하고 매서워진다. 신현빈은 미란의 복잡하고 불안한 심리를 입체적이고 세밀하게 그려낸다.

“미란은 외롭고 괴로운 날들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에요. 미란이 한 모든 선택이 옳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저는 그녀가 변해가는 모습이 수월하게 이해됐어요. 미란한테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을 겁니다. 저는 미란이 갖고 있는 아픔과 고통을 관객들에게 설득력 있게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다른 캐릭터들도 마찬가지지만 미란의 행동 역시 예측 가능한 데서 출발해서 점차 예측이 어려워져요. 미란은 연희(전도연 분)에게 영화가 갖고 있는 이야기를 잘 건네주고, 연희가 뛰어가게 만드는 역할을 하죠. 부담감도 있었지만 이런 점들이 매력적인 캐릭터였어요.”

영화에서 미란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연희를 만나면서부터다. 미란은 강렬하고 매혹적인 연희를 동경하고 의지하고 그의 도움을 선의로 받아들인다. 신현빈은 “괴로운 상황으로 인해 변해가는 인물을 연기했지만 감독님을 비롯해 전도연 선배, 정가람 씨가 내가 편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신경 쓰고 배려해줘서 외롭지 않았다”며 고마워했다.“전도연 선배가 있어 든든했어요. 더 치열하게 해내야 한다고 생각하게끔 하는 자극이기도 했죠. 연기하면서 선배의 에너지도 분명 느꼈어요. 미란이 연희를 믿는 마음과 제가 선배에게 의지하는 마음이 실제로 맞닿아있던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미란이 연희와 처음 만나는 장면을 촬영할 때는 제가 편하게 연기할 수 있게끔 스태프들에게 배려해달라는 이야기를 저 몰래 하셨나봐요. 그렇게 하고도 내색하진 않으셨죠. 작은 배려들이 제겐 크게 느껴졌어요.”

영화에서 미란은 거액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위험한 기회를 얻게 된다. 신현빈은 “거액이 든 돈 가방이 실제로 눈앞에 나타난다면 모른 척할 것”이라고 말했다.

“너무 무서울 것 같아요. 큰 돈이 갑자기 나타난다는 것 자체가 분명히 문제가 있는 돈이지 않겠어요? 그 문제와 엮이고 싶지 않아요. 하하. 영화에 출연한 다른 선배들은 신고하겠다고도 하고, 가져가겠다고도 한 걸로 아는데 전 신고조차 안 할 거 같아요. ‘이런 게 왜 여기 있나’라면서 피할 것 같아요. 하하.”
2010년 영화 ‘방가? 방가!’로 데뷔한 신현빈은 제47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 신인연기상을 수상했다. 이후 영화 ‘공조’ ‘변산’ ‘7년의 밤’ ‘PMC: 더 벙커’ ‘힘을 내요, 미스터 리’ ‘클로젯’, 드라마 ‘추리의 여왕’ ‘미스트리스’ ‘자백’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몰입도를 높이는 섬세한 연기를 선보여왔다. 오는 3월 12일 방송 예정인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도 출연한다. 데뷔 10주년을 맞은 신현빈은 그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어떤 분은 제가 낯가리지 않은 척 하는 걸 전보다 더 잘한다고 하더라고요. 그 얘기에 저도 크게 공감했어요. 호호. 10년이라는 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죠. 시작할 때 10년을 생각해봤다면 참 크게 느껴졌을 것 같은데 지금은 큰 차이가 있나 싶기도 해요. 음…. 조급하거나 괴로워하는 시간들이 줄어들고 그런 순간이 와도 잘 보내려고 하는 게 달라진 것 같아요.”

신현빈은 탕웨이, 전인화, 신민아, 이나영 등의 닮은꼴로도 불린다. 다양한 배우들이 보이는 매력적인 얼굴과 중저음의 차분한 목소리, 깊은 눈빛을 가진 신현빈은 앞으로 어떤 연기를 하고 싶을까.

“윤여정 선생님이 ‘연기를 오래하기만 해서 잘하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하셔서 그럼 나는 어떻게 하나 생각한 적도 있어요. 최선을 다해도 아쉬움이 생기는 게 연기에요. 더 나은 연기를 위해 미묘한 변화를 찾아가느라 괴로워하게 되는 것 같아요. 친구들과도 ‘왜 우리가 이렇게 괴로워하면서 하고 있을까’라고 하기도 해요. 선배들도 비슷한 얘길 하는 걸 보면 위로가 되기도 하고 희망이 없나 싶기도 해요. 호호. 저는 느낀 대로 진실 되게 표현하고 싶어요. 연기를 진실 되게 한다는 표현이 참 아이러니하기도 한데요, 제가 납득되고 보는 분들을 속이지 않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성실하게, 충실하게.”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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