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극한 일을 당하면 어르신들 입에서 절로 나오는 탄식이 있죠.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라는 넋두리 말이에요. 그런데 대체 무슨 연유일까요. MBC 에는 그 소리가 절로 나올 분이 왜 이리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우선 유지선(차화연) 씨부터 꼽는 게 좋겠네요. 지난 25년, 그 긴 시간 동안 어디 하루라도 마음 편한 날이 있었겠습니까. 과거 남편의 제자와 정분이 나 이혼을 했을 당시 어린 두 딸을 두고 집을 나와야 했으니 그때부터가 마음이 아마 지옥이었을 겁니다. 자신이 저지른 죄를 두고두고 속죄하겠다며 고된 간병인의 길을 택했으니 몸 또한 편한 날이 없었을 테고요. 그러다 간병을 맡았던 장병두(이순재) 회장의 질기고 질긴 구애로 결국 부부의 연을 맺게 됐지만 괴팍한 성미 때문에 허울이 좋아 회장 사모님이지 가사도우미와 다름없는 처지일 뿐이죠. 전처 자식인 우진(류진)은 생모에게 모질었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 때문에 새어머니를 늘 싸늘하게만 대해왔고요. 따라서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이었을 거예요. 그런데 그도 모자라 이제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일이 줄을 이어 들이닥치네요.

왜 이리 기함할 일들이 줄줄이 벌어지는지요

부모로서 가장 두려운 일이 자식 일에 걸림돌이 되는 일일 진데 딸 둘 모두에게 돌아가며 상처를 주게 생겼으니 이를 어쩌면 좋아요. SBS 의 지영선(한혜숙)의 경우야 계획 하에 헤어졌던 딸 자경(윤정희)을 며느리 자리로 데려왔다지만 지선 씨는 의도치 않게 작은 딸 주미(김소은)를 며느리로 맞이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MBC 쪽과 흡사한 상황인가요? 어쨌거나 그 사실을 누가 알까 두려워 전전긍긍하던 차에 큰 딸 주영(서영희)이까지 조카며느리로 들여야 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으니 피가 마를 일입니다. 더 기구한 건 동서이자 주영의 시어머니가 될 애자(김창숙) 씨가 바로 지난 날 지선 씨와 문제를 일으켰던 남자의 누나라는 사실이겠죠.

사실 지선 씨는 전생이며 팔자타령을 할 수는 없는, 해서도 안 될 입장이라고 봅니다. 평생을 마음 졸이며 살아왔고 보아하니 앞으로 맞닥뜨려야 할 일들도 장난이 아니지 싶지만, 그 모든 것이 알고 보면 본인의 선택이 초래한 일들이니 말이에요. 남편의 제자와의 사랑도 용납하기 어려운 잘못이었지만 아무리 장 회장이 강권을 했다 해도 불륜을 저질렀던 남자의 누님이 아랫동서가 되는 난감한 상황만큼은 결코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거였잖아요. 드라마 속 얘기라지만 윤리적으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말이죠. 첫 단추도 잘 못 끼웠는데 설상가상 다음 단추까지 잘못 꿰었으니 뒤죽박죽 엉망이 될 밖에요. 정작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라는 소리를 할 사람은 바로 애자 씨지 뭐겠어요. 남부끄러운 스캔들 때문에 일생 내 나라를 등지고 숨죽이며 살아야 했던 동생만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질 마당에 스캔들 당사자를 맏동서로 모시게 됐으니 속이 제 속이었겠어요? 그런데 무슨 죄가 그리 컸던지 이번엔 아들 우빈(지현우)이 목을 매는 여자가 원수나 다름없는 맏동서의 딸이라고 합니다. 그야말로 피를 토하고 거꾸러질 일이죠. 사랑보다 사람으로서의 도리가 중요하지 않나요?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욕을 보시는 건 주영이 할머님(반효정)이시지 싶어요. 어미 없이 길러온 손녀딸 둘을 다 출가시키시고 이젠 고생 끝 행복이다 싶으셨겠건만 죽는 날까지 마주치지 않길 바랐던 며느리와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강구해야 하는 한심스런 처지가 된 거니까요. 지난번에 남편 제자와 바람났던 며느리를 그때 용서했으면 어땠을까 후회하시는 기색이시던데요. 평생을 혼자 살다가 간 아들이 제 안사람을 끝내 마음에서 내려놓지 못했던 것 같다며 속상해 하기도 하셨죠. 그래요. 어쩌면 할머님으로서는 용서하지 못하셨던 것이 잘못 꾄 첫 단추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칼칼하고 올곧으신 성정으로 봐서 도무지 받아들이실 수 없는 패륜이었겠지만 어미 떨어질 손녀딸들을 봐서 한발 물러나주셨다면 적어도 모두가 지금 같은 불행은 만나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지금은 잘못 끼운 첫 단추를 고치고 두 번째 단추를 제대로 끼울 순간이 아닐까요?

물론 어미 없이 살아온, 게다가 불행한 결혼 생활에서 벗어나 기적처럼 새로운 짝을 찾은 불쌍한 손녀딸을 생각하시면 억장이 무너지실 거예요. 저 또한 딸 키우는 입장이라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애자 씨에게 지선 씨의 딸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라는 건 지나치게 가혹한 요구라고 생각되지 않으세요? 남녀 간의 사랑도 귀하겠지만 사람으로서의 도리와 윤리도 잊어서는 안 되는 거잖아요. 더구나 주영이는 안타깝게도 엄마를 닮은 건지 맺고 끊음이 도통 분명치 않아 아직까지 전남편에게 휘둘리곤 하더군요. 얼마 전 전남편(심형탁)이 막무가내로 잡아끈다고 덜렁 그 차에 올라타는 걸 보고 기함을 할 뻔 했어요. 아마 그대로 혼인이 이루어지면 그 때문에라도 불화가 끊이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할머님께서 어서 정신을 수습하시고 교통정리를 해주셔야 되겠어요. 세상의 모든 잘못 된 일이나 잘 된 일이나 다 까닭이 있는 법이라지만 할머님께 이 삶은 왜 이리 잔인하기만 할까요.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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