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자의 삶에 절대 용납 될 수 없는 세 가지가 있다. 종교, 병 그리고 연애. 믿음이 없어서도 건강을 과신해서도 사랑을 못 느껴서도 아니다. 바로 “반드시 돈이 들어가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세상에 쓸모없는 물건은 하나도 없다”는 삶의 철학 아래 악착 같이 돈을 모으는 구홍실(한예슬)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난다. 이 남자가 서울에서 자주 가는 세 곳이 있다. 카페, 극장 그리고 여관. 취직이라고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초라한 스펙에 학자금 대출에 장기라도 팔아야 하는 신용 등급, 게다가 “여태까지 살았으니 앞으로도 대충 살겠지”라는 청순나태한 정신 상태까지 가진 천지웅(송중기)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거움과 행복 그리고 로맨스를 쫓는다. 해야 하는 일과 필요한 것들만 있는 여자와 하고 싶은 일과 원하는 것들만 있는 남자. 도통 교차점을 찾을 길 없는 이 남녀의 유일한 공통점이 있으니, 바로 둘 다 가난하다는 것이다.


로맨스, 안된다고 하지 말고 아니라고 하지 말고 어떻게? 모아보고!


2011년을 사는, 88만원 세대라고 이름 붙여진 청춘들. 취직을 위해 30초 안에 짜장면을 원샷 해야 했던 백진희 양에게도, 죽어라 뛰는데도 계속 그 자리였던 82년생 지훈이에게도, 어떤 세대 전체에게 내려진 공평한 불행은 구조가 낳은 필연적 장애로 그들의 발목을 붙잡는다. 그리하며 이들 앞의 로맨스는 크고 빛나는 덩어리의 상태가 아니라 티끌같이 작고 초라한 상태가 되어야만 비로소 행복의 세상으로 힘겹게 진입 할 수 있게 된다. 어쩌면 이런 세대의 초상화를 그리는데 있어 송중기와 한예슬은 적절한 모델처럼 보이지 않는다. ‘꽃미남’이란 수식을 위해 태어난 것 같은 하얗고 뽀송뽀송한 송중기와 부잣집 철부지 아가씨의 코스튬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발랄한 한예슬. 이 두 사람이 마주한 옥탑방의 거주자들이라는 설정은 아마 극장을 찾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한 상상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되고 몇 분이 지난 후, 관객들은 송중기와 한예슬이 영락없이 초라하고 궁핍해 보이는 신기한 착시 효과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는 연애 불능의 현실 속에서 티끌 같은 로맨스의 가능성을 주워내는 높은 시력만큼, 이 화사한 청춘 남녀의 몸에 칙칙한 현실의 옷을 입혀내는 놀라운 담력을 함께 지닌 영화다.

“우리가 만나서 어쩔 건데? 이런 거지같은 인간들끼리 만나서 어쩔 거냐고!” 끝내 피하고 싶었던 가장 아픈 질문을 스스로 던지는 는 어쩌면 꿈이나 환상 일지 모르는 나무 하나를 영화 속으로 옮겨 심는다. 물론 그렇게 허락된 로맨스조차 그들을 안락한 세상으로 데려다 주는 마법의 양탄자는 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고된 길 위에 잠시 부는 미풍인 들 어떠랴. 이대로 멈출 수 없는 삶이라면 다시 걸어 갈 수밖에 없는 것을. 연애가 어렵다 하되 사람 앞에 일이로다. 모으고 또 모으면 못 이룰 리 없건 마는, 사람이 제 아니 모으고 청춘만 간다 하더라.

글. 백은하 기자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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