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걸그룹 멤버는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최선을 다해도 대중에게 비난을 받는다. MBC 얘기다. 아니, MBC ‘나는 가수다’ 얘기일지도 모르겠다. 드라마 속 구애정은 국보소녀를 해체한 장본인이라는 오해 때문에 국민 비호감 연예인이 되었고, 핑클 출신의 옥주현은 가수로서의 업적이 거의 전무한 상태에서 ‘나는 가수다’의 경연에 참여한다는 이유로 대중의 곱지 않은 시선을 견뎌야 했다. 심지어 고성을 지르며 선배 가수와 싸웠다는 루머 때문에 고통을 겪어야하기도 했다. 2011년 상반기 가장 핫한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의 이 공통점은, 과연 우연일까.

물론 이 옥주현의 일을 반영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보소녀 해체, 스폰서 루머 등 자신이 하지 않았던 일에 대해 침묵한다는 이유만으로 해명 혹은 자숙을 요청받는 드라마의 상황은 현실의 우리에게도 너무나 낯익은 광경이다. 2011년을 열며 가장 화제가 됐던 뉴스는 고현정의 수상 소감에 대한 비판, 그리고 빅딜설이었다. 고현정의 수상 소식에 대해, 그의 겸손하지 못한 소감에 대해 불편해하거나 비판할 수는 있다. 그 와중에 제작을 위한 SBS와 고현정의 빅딜이 있었다는 루머가 생길수도 있다. 하지만 루머를 또 하나의 사실로 삼아 불편해하고, 비판하고, 해명을 요구하는 건 이미 본래 사건에 대한 의견이나 해석의 차원을 벗어난 일이다.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 아니라는 순진한 불가지론은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무차별한 의혹 제기로 변질됐다. 상반기 최대의 사건이었던 서태지, 이지아의 이혼이 이지아닷컴으로, 최악의 사건이었던 故 송지선 아나운서의 자살이 임태훈닷컴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보라. 진실을 원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화제의 중심이 되는 건, 1차 텍스트인 사건이 아닌 그것을 둘러싼 수많은 논란 그 자체다. 이러한 소비 방식은 옥주현닷컴에서 볼 수 있듯, 방송이라는 텍스트에도 비슷하게 적용되었다.

논란이 엔터테인먼트로 소비되는 기이한 역전

올해 예능의 가장 큰 대세라 할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의 화제성은 그래서 흥미롭다. 한동안 월요일만 되면 포털 연예면을 모조리 잠식했던 ‘나는 가수다’ 신드롬은 어떤 면에서 일종의 ‘나진요’라 할만 했다. 소름 돋는 무대에 대한 감탄부터 음원 싹쓸이 현상에 대한 분석, 기성 가수의 서바이벌이라는 형식에 대한 고찰 등 프로그램 자체에 대한 다양한 층위의 해석도 있었지만, 그와 비슷한 분량으로 룰 개정에 따른 옥주현과 JK김동욱에 대한 밀어주기 의혹, 편집 실수에 대한 고의성 논란이 인터넷을 달궜다. 의혹 제기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문제는 방송이 스스로 해명하기 전에 그것들을 마치 팩트처럼 유통하고 그에 대해 평가하는 과정이다. 결국 신정수 PD는 연출이 아닌 기자간담회를 통해 직접 해명을 하고 억측에 대한 자제를 부탁해야 했다.MBC 역시 마찬가지다. 지지부진했던 예선과 달리 멘토 스쿨부터 탄력을 받았던 이 쇼는, 정작 시간이 흐를수록 무대의 퀄리티에 대한 분석보다는 시청자 문자 투표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특정 멘토 간 알력에 대한 논란이 더욱 화제가 됐다. 확정되지 않은 멘토들의 시즌 2 불참 여부는 쉽게 기사화됐고, 의혹은 더욱 커졌다. 김종진에게 극찬을 받았던 밴드 AXIZ가 심사위원 신대철이 키운 팀이더라는 의혹에 시달린 KBS 의 경우는 더하다. AXIZ의 퍼포먼스는 연주부터 태도까지 흠 잡을 게 없었지만 기사를 통해 의혹을 접하고 부정적 인식을 가지게 된 사람 중 시청률 4~5퍼센트의 프로그램을 직접 보고 판단하는 이가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다. 공정한 경쟁을 모토로 하는 이들 쇼에게 공정성과 과정의 투명성을 바라는 건 필연적인 일이다. 하지만 제작진에게 눈에 보이는 완성도보다 증명하기 어려운 결백을 요구하는 순간부터 이러한 진실 공방의 게임은 텍스트라는 실체를 잃고 자체적으로 부유한다. 엔터테인먼트가 논란을 만들어낸다기보다는, 논란이 엔터테인먼트로 소비되는 기이한 역전. 물론 이것이 이들 프로그램의, 그리고 서바이벌 쇼의 전부는 아니다. tvN 와 SBS ‘김연아의 키스 & 크라이’처럼 오페라나 피겨 스케이팅 같은 전문 영역을 선택해 경쟁보다는 도전자들의 발전 속도에 방점을 찍는 프로그램도 있고, 서바이벌 포맷의 범람 속에서 등장한 괴작 KBS 같은 경우도 있다. 다만 이런 역전이 서바이벌 쇼를 계기로 드러난 동시대의 어떤 경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누군가의 아픔으로 얻는 즐거움을 끊자

올해 유독 예능과 드라마의 온도 차이가 느껴지는 건 이러한 경향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지난해 상반기의 KBS 와 MBC , SBS 만큼의 마스터피스가 눈에 띄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SBS 이나 MBC 처럼 호평을 받고 비교적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들도 눈에 띄는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프로그램의 화제 여부는, 시청률이라는 수치가 아니라 TV가 꺼진 이후의 이야기를 통해 결정된다. 하지만 연예 기사를 포함한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올해의 이야기들은 서사의 함의를 분석해 담론을 생산하는 것보다는, 쉽게 진실을 알 수 없는 영역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흘러갔다. 지난해 말부터 방영한 SBS 을 제외하고 신드롬에 가까운 열풍을 일으킨 거의 유일한 드라마가 이러한 현상을 담은 이란 건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구애정이 행복을 찾은 결말의 카타르시스는 그녀가 극복해야 했던 장애물의 크기와 비례한다. 재벌 2세 남자친구의 어머니보다, 국제 테러 조직보다 높은 장애물은, 쉽게 말하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지금 이곳의 연예계였다. 시청자들이 공감했던 이러한 현실 인식은 과연 자기반성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이야기들은 텍스트에 단단히 뿌리 내린 모습일 수 있을까. 알 수 없지만, 그러길 바란다. 누군가를 아프게 하며 얻는 즐거움은 결국 우리 역시 피로하게 만든다는 걸 학습하기에 지난 6개월은 충분한 시간이었으니.

글. 위근우 기자 eight@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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