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원래 에너지 넘치니까”라고 말하면 좀 억울할 것 같다. 10시간에 걸친 녹음을 마친 후 SBS 파워FM 생방송을 앞둔 사이, 잠시 짬을 내 인터뷰를 하는 붐의 목은 이미 쉬었고 입술은 버석하게 말라있었다. 지친 모습이 역력한데, 붐이 호기롭게 먼저 운을 떼 무거운 공기를 환기시킨다. “자, 시작해볼까요? 전 무슨 이야기든 좋습니다!” 이번 달에 소화해야 하는 방송활동만 라디오까지 총 9개. “약간 과부하인 상태인 건 맞아요.” 이런 스케줄 속에서 매일 하는 라디오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라디오에 대한 애정을 버릴 수 없다고 한다. “방송 들으시는 분들에게서 따뜻한 마음을 많이 느껴요. 어디 가면 고기도 더 많이 주시고. (웃음) 이게 힘들다고 그냥 쉽게 그만둘 수 있는 게 아니구나 싶고, 저에게 의지하는 분들이 꽤 많다는 걸 느끼고 있어요.” 작은 방송사의 리포터였던 시절, 톱스타들의 멘트 한 마디를 지푸라기처럼 잡아야 했던 그때 김희선에게 던진 재기 발랄한 멘트로 대형 방송사의 리포터들을 제치고 독점 인터뷰를 따냈던 그의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어떻게 하면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을 더 잘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던 그는 ‘붐 아카데미’처럼 어느 프로그램에 가든 자신의 색깔이 담긴 코너를 만들어낸다.
매일 1부를 꾸미는 코너 ‘클럽 1999’도 그런 생각에서 나온 코너다. “원래는 금요일에만 하던 거였어요. 그런데 8시나 9시에 문자 사연 오는 걸 보면 야근 중이신 분들이 많더라고요. 우리나라 분들이 6시에 퇴근하는 분들이 거의 없어요. 진짜 저녁이 없어요. 그래서 이런 분들에게 파이팅을 주고 싶어서 매일 하자고 했어요. 늘 라이트하고 에너지 넘치게 가려고 해요. 비가 오면 잔잔한 노래 말고 김건모의 ‘빗속의 여인’처럼 비와 관련된 파이팅 있는 노래를 선택해요. 예전에 음악 감상실에서 하던 것처럼 녹음실 안에서 춤도 추고. ‘저희가 풀어 드릴게요, 그냥 (라디오를) 틀어만 주세요’ 하는 거예요.”
‘파이팅’은 이제 붐을 상징하는 수식어가 됐다. 얼마 전 KBS 무대에 올라서도 ‘파이팅’을 외치던 그다. 하지만 붐은 그날 무대에서 쏟아지는 환호에 어쩔 줄 몰라 하며 참 많이 떨었고, 그 떨림은 마이크와 전파를 타고 보는 이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음악을 정말 좋아해요. 예능을 비롯한 방송활동이 일이라면 음악은 제 꿈이고, 저를 충전시켜줘요. 저희 집에는 화장실, 거실, 주방, 방, 컴퓨터 옆에 모두 음악 재생을 할 수 있는 스피커가 설치돼 있어요.” 음악을 꿈이라 말하면서 스스로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르던 붐이 꼼꼼하게 고른 추천곡 리스트를 내밀었다. 라디오 DJ답게 노래를 듣는 순서까지 짜왔다. “꼭 순서대로 들어보세요. 애피타이저로 시작해 디저트까지 코스요리처럼 짜 봤어요.”1. 다이나믹 듀오(Dynamic Duo)의
“다이나믹 듀오가 군대에서 묵힌 열정이 아주 그대로 담겨 있는 곡입니다. 의 타이틀곡 ‘불타는 금요일’을 첫 트랙으로 추천하고 싶어요. 클럽 음악들이나 파이팅 하게 해주는 음악들도 처음부터 막 신나면 재미가 없거든요. 이 노래에는 ‘강약 중 강약’이 있어요. 중간에 나오는 기타 연주 부분이 특히 너무 좋아요. 사실 힙합과 록이 어울리기가 쉽지 않은데, 너무나 절묘하게 잘 맞췄거든요. 아주 다이나믹 듀오스럽고, 가장 에너지 넘치는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곡으로 시작을 하면 이 기운이 다른 노래들까지 그대로 전달되지 않을까 해서 첫 곡으로 선택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출첵 (Feat. 나얼 of 브라운아이드소울)’과 ‘Ring My Bell (Feat. 나얼 of 브라운아이드소울)’을 잇는 최고의 곡이라고 생각해요.”
2. Black Eyed Peas의
“전역하고 간 첫 여행이 제주도였어요. 올레길과 우도 주변을 꽤 많이 걸었어요. 그때 ‘Alive’를 처음 접했는데 되게 좋더라고요. 그때 기억 때문에 이 노래는 들으면 언제든 제주도의 올레길을 걷고 있는 듯해요. 저를 기분 좋게 해주는 음악이에요. 이렇게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기분 좋아지는 음악을 좋아하거든요. 첫 번째 트랙으로 피치를 좀 올린 다음엔 기분 좋게 Black Eyed Peas의 ‘Alive’를 들으면 참 좋을 것 같아요. 드라이브할 때, 여자 친구랑 같이 어디 여행 갈 때도 참 좋을 것 같은 곡이에요. 제가 Black Eyed Peas를 워낙 좋아해요. 한국의 Black Eyed Peas가 다이나믹 듀오라고 생각합니다. 연결이 또 이렇게 되네요? 하하하. 아주 천재들인 것 같아요.”
3. 이현도의
“한 번 잔잔하게 갔으면, 또 한 번 지를 필요가 있습니다. 이현도 선배님의 ‘폭풍 / You Got The Funk!’로 가겠습니다. 1998년에 나온 노랜데, 그때 당시 전자음이 가장 많이 들어갔었던 곡인 것 같아요. 아마 거의 처음으로 일렉트로닉 느낌의 노래를 힙합 비트로 만든 곡일 거예요. 전자음도 좋지만, 가사 자체가 힘을 마구 줍니다. 엎어지고, 힘들고, 지쳐있는 분들을 일으켜 세워줄 겁니다. 배틀 붙을 때 꼭 트는 음악이거든요. 이 노랜 정말 힘을 줘요. 특히 사기 당하신 분들이나 사업에 실패하신, 좀 하드코어하게 힘든 분들이 들으시면 많은 힘이 될 거예요. 혼자라고 느낄 때, 세상 모두가 예스라고 했는데 나만 아니라고 생각했을 때 들으시면 파이팅 할 수 있는 노래입니다.”4. Pitbull의
“네 번째로는 ‘Bon, Bon’을 들어보세요. 제가 음악에 대해 하나 내세울 게 있다면 가사에 ‘붐’이 들어가면 제 것 빼고 다 잘 된다는 겁니다. (웃음) Black Eyed Peas ‘Boom Boom Pow’도 그렇고, Pitbull의 ‘Bon, Bon’도 그래요. 이 노래는 Pitbull의 Yolanda Be Cool, DCup의 ‘We No Speak Americano’의 샘플링을 얻어 랩을 한 거예요. 미국과 한국의 랩 스타일도 좋아하지만, 남미 출신의 Pitbull이 하는 스페인 랩 스타일이 참 섹시해서 좋아요. 그래서 이건 아마 외로운 여성분들에게 파이팅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곡으로 아주 정점을 찍는 거죠. ‘불타는 금요일’로 피치를 올린 다음, Black Eyed Peas로 잠시 준비운동하고, 이현도의 ‘폭풍’으로 올라가죠? 그리고 ‘Bon, Bon’으로 에너지를 아주 끝까지 끌어올리는 거예요.”
5. Jason Mraz의
“자, 실컷 에너지 올렸으니 다음 단계로 내려가 볼까요? 갑자기 훅 내려가는 것 같지만, 사실 ‘The Freedom Song’은 Jason Mraz 노래 중에 가장 신나는 노래예요. 라운지 클럽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곡이죠. 샴페인이나 와인을 들고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춤 못 추는 사람들도 흥겹게 리듬에 몸을 맡길 수 있을 것 같은 노래예요. 리얼 세션 사운드여서 귀도 정화해 줘요. 좋은 사람들이랑 기분 좋은 대화하고, 기분 좋게 클럽에서 나온 듯한 느낌이 드는 노래예요. 제가 친구들이나 형들과 함께 술을 마시거나 하는 자리에서 자주 틀곤 해요. 멜로디 라인이 너무 예쁘고, 뒤에서 기타를 비롯한 세션이 빵빵하게 모든 사운드를 채워줘요.”
붐은 에 아이돌 그룹이 게스트로 출연할 때, 방송 활동을 하면서 아이돌 그룹을 만나면 더 기운을 내고 밝게 대한다. “전 아이돌 그룹을 볼 때 다른 사람들이 보는 것과는 좀 다르게 봐요. 이제 막 시작한 친구들의 마음을 이해하거든요. 열심히 하는 친구들이 너무 예뻐요. 제가 했었던 일들을 지금의 그들은 저보다 훨씬 더 잘하고 있지만 그래도 돕고 싶어요. 많이 보려고 하고, 많이 찾아주려고 해요.” 다시 생각해 보건대, 성실한 사람이다. 에너지가 닳아 없어질 만하면 충전해서 채우고 그걸 다시 아낌없이 쓰고, 주는 것으로 스스로의 의미를 찾는다. 그는 “원래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은 아니다. 지치고 힘들 때 그 순간을 이겨내기 위해 마음을 고쳐먹는 사람이다. “가진 사람들만 행복한 게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사람들도 어떤 마인드를 가지느냐에 따라 충분히 에너지를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들을 응원하고 싶고,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제 에너지를 더 나누고 싶고 그래요.”
글. 이경진 인턴기자 romm@
사진. 이진혁 el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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