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차인표
나이가 들수록 화나는 일이 많아지는 법이다. 그러니 젊은 시절 새하얀 정장을 차려입고 점잖게 스텝을 밟거나, 하모니카를 불어주던 감미로운 남자가 치미는 분노를 삭이지 못하는 다혈질로 변해버렸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우리가 중년 남성의 페이소스를 모두 다 헤아리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다행히 분노를 표현하는 메소드 연기의 일인자인 차인표가 있어 아주 미약하게나마 짐작해보는 건 가능하다. 돈이 없어 결혼 10주년에 큐빅을 다이아몬드로 속여서 선물해야 하고, 비싼 물가 때문에 시래기 한 다발도 못 사고 돌아와 빗속에서 “시래기들아!!!!”를 외치는 그의 한 마리 짐승 같은 울부짖음을 들으면 절로 웃음이 나….는 것은 아니고 분노의 양치질이라도 함께 해주고 싶은 심정이 된다. 물론 친구 말만 믿은 채 투자했다가 뒤통수를 맞고 개펄에 뒹구는 그의 공허한 눈빛 역시 우리를 웃, 아니 울린다. 그나저나, 차인표는 대체 어떤 생각으로 연기에 집중하기에 분노의 진정성을 이토록 잘 살리는 것일까. 혹시… 농구공과 초콜릿만 있어도 반짝반짝 빛났던 젊은 날이 벌써 저만치 지나가버린 데 대한 회한?
콕콕의 박찬호
나이가 들수록 서러운 일 또한 많아지는 법이다. 그러니 악당을 향해 태양 같은 볼을 날리고 껌을 씹으며 번개 같은 마구를 던지던 호기로운 남자가 조금 소심해졌다고 해도 의아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은퇴에 대한 두려움이란 중년 남성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며, 그것을 자극했을 때 기를 펴지 못하고 쪼그라들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인과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1994년 대학교 2학년 재학 중 계약금 120만 달러에 연봉 10만 9000달러를 받고 LA다저스에 입단한 후 지난해까지 약 8876만 달러(약 1000억원)을 벌어들인 박찬호 역시 그 공포감을 토로하는 래퍼로 변신했을 정도일까. 제아무리 ‘코리안 특급’이라 할지언정 아내가 ‘야구 관두면 뭐하고 살까?’라고 물어보거나, 감독이 ‘어째 공이 예전 같지 않다’고 툭툭 던지는 말 한 마디가 심장에 와서 콕콕 박히는 건 피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권하건데, 콕콕 짚어 인생 설계 차원에서 래퍼를 병행하는 것은 어떨까. 물론 지금 당장 결정하라는 말은 아니다. 날도 더운데 아이스크림이나 먹으면서 천천히 생각해봐도 무방하다.
글. 황효진 기자 seven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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