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할 것 같지만 자유롭고 단조로운 듯하지만 쉽게 풀리지 않는다. 밴드 블랙백은 그렇게 매번 예상에서 빗나간다. 보컬 장민우, 기타 이성복(제프), 베이스 이혜지, 드럼 구태욱으로 구성된 이 밴드는 비슷한 취향을 공유할 것 같지만 각자의 색깔이 분명하게 가졌고, 진지해 보이지만 때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이 “무의식 중에 있는 것 같다”는 4차원 멘트를 남긴다. KT&G 상상마당의 ‘밴드 인큐베이팅’ 선발부터 지난 1월 발매한 첫 EP , 최근 KBS 에서의 인상적인 라이브까지 한 번 본 사람들의 뇌리에 큰 파도를 일으키는 블랙백의 힘은 바로 이러한 부조화다. 술집보다는 카페에서 주로 대화를 하고 “누가 아닌 우리가 되고 싶다”는 다짐을 남기는 블랙백은 그들의 음악처럼 접할수록 흥미롭다. 그저 음악을 계속 하는 것이 목표라는 블랙백의 대화를 옮긴다.

얼마 전 에서 반응이 좋았다고 들었다. KBS 출연의 여파인가. (웃음)
이혜지: 잘 모르겠다. 호응이 좋았다고는 들었는데 (웃음) 무대에서는 그만큼은 못 느꼈다.
구태욱: 우린 낮에 공연했는데 밤에 공연했던 팀들에 비하면 그렇게 큰 호응은 아니었다.

“정체되지 않는 것, 그래서 에 나왔다”

지난 시즌에 이어 두 번째로 에 출연했다. 다시 도전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장민우: 지난해에는 우리가 설 수 있는 무대에 최대한 많이 나가서 이름을 알리는 게 목표였다. 그래서 방송에 출연해 뭔가를 얻었다기보다 시도 했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었다. 올해는 무엇보다 우리의 특정 모습을 보여주려고 의도했다는 게 다르다. 그 중 하나가 무대를 치밀하게 컨트롤하는 모습이었던 것 같다. 음반을 들었을 때보다 무대에서의 에너지가 훨씬 강했다.
장민우: 아무래도 음반과 공연은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에너지 차이가 난다. 음반은 혼자서 듣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공연은 불특정 다수와 함께 하지 않나. 해외 뮤지션들의 라이브를 모니터링 하기도 했는데 확실히 한국 사람들은 한 사람이 소리를 질러야 다 같이 지르기 시작하더라. 우리는 그런 사람들과 더 깊게 소통하고 라이브에서 그 에너지를 끌어내기 위해서 노력했다.

관객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기 위해 무대 퍼포먼스도 미리 연습하거나 준비하나.
이성복: 그렇다. 사실 예전에는 퍼포먼스의 중요성을 정말 몰랐다. ‘뭘 그런 걸 연구하나. 그냥 연주하다 나오면 나오는 거지’ 이 정도로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중요성을 느낀다. 를 하면서도, 를 하면서도 느꼈고 매일 느끼는 것 같다. 연습실에 붙어있는 거울 보고 연습도 많이 한다.
구태욱: 나도 표정 연습 말고 자세나 모션 연습 많이 하고 있다. 하하하.

3차 예선 마지막 무대에서는 S.E.S의 ‘Dreams Come True’를 편곡했다고 들었다. 어떻게 그 곡을 선곡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이성복: 곡의 코드나 가능성, 뼈대를 들으면서 모니터링 하는데 ‘Dreams Come True’의 가사나 멜로디, 코드 진행, 변주했을 때의 가능성이 마음에 들었다. 다만 원곡의 방방 뜨는 느낌은 우리랑 안 맞는 것 같아서 후렴구를 기타 리프로 돌렸다. 원곡에서는 가장 많이 들리는 부분이지만 우리 무대에서는 맨 마지막에 들을 수 있던 거다.
장민우: 가사 없이 연주만 들어도 그림이 그려져야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흔히 ‘비주얼 사운드’라고 하는데, 통일된 그림을 떠올릴 수 있는 음악을 해야 된다. ‘Dreams Come True’가 그 경우였고 10대 때 처음 듣던 것과 달리 계몽적인 인상을 받았다. 우리 음악에도 일상적인 내용보다 좀 더 생각을 했을 때 나오는 가사처럼 나름대로 계몽적인 게 있기 때문에 그 곡에 공감했다. 그래서 나름 메인 테마를 기타 리프로 돌렸지만 그 부분 때문에 방송에서 점수를 못 받았던 것 같다. 심사의 기준과 밴드 생각이 달랐던 건데, 결과가 아쉽지는 않나.
장민우: 물론 탈락한 순간에는 쓰렸다. 하지만 많이 배우게 된 것 확실하다. 트랜스픽션이 에 도전한 이유가 “예전 열정을 되찾고 싶다”였는데 그 말이 되게 인상적이더라.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밴드라 롤링홀에서의 공연도 봤었는데 3차 경연 무대에서 예전의 그 모습을 잠깐 본 것 같았다. 음악, 퍼포먼스부터 화장까지 신경을 엄청 썼고 무대에서도 죽을 듯이 공연했다. 우린 그 팀만큼의 에너지는 못 됐던 거다. 이건 활동을 길게 한 팀과 짧게 한 팀의 차이가 아니다. 모든 밴드가 고민해야 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정체되지 않는 것. 우리도 그 순간을 돌파하는 게 필요했고 에 나왔다. 아마 방송에 나온 모든 팀들이 그랬을 거다.

“우리도 똑같은 20대이지만 직접적으로 말하고 싶지 않은 것뿐이다”

진지하고 철학적인 면이 음악 색깔과도 비슷하다. 뿐 아니라 첫 EP 발표 후 나이에 비해 진지하게 음악을 하고 클래식한 음악을 한다는 평을 많이 들었을 것 같다.
장민우: 표현 방식의 차이일 뿐이다. 우리도 똑같은 20대이지만 난 내 음악적 뿌리인 60-70년대 흑인 음악을 좋아하고 멤버들 모두 음악의 전통성, 진정성을 따지는 사람들이다. 다만 직접적으로 말하고 싶지 않은 거다. “난 정말 당신들과 진심으로 소통하고 싶다. 좀 더 생각해봐” 이렇게 메시지를 주는 스타일이다.
이성복: 물론 무대에 오를 때는 메시지도 주고 동시에 ‘오늘 분위기 다 죽여야지’라는 생각도 한다. 근데 이게 누굴 진짜로 죽이겠다는 게 아니라 신나게 놀아보겠다는 의미다.
이혜지: 에휴, 설명 안 해도 다 알아. (웃음)
이성복: 아, 그런가? (웃음)

서로 알던 사이었는데 이성복이 먼저 멤버를 모아 밴드를 결성했다고 들었다. 처음부터 네 명이 좋아하는 음악이 비슷했는지 궁금하다.
장민우: 그건 아닌 것 같다. 사실 멤버들끼리 음악적으로 교류한 건 최근이다. 난 중학교 때 격투기를, 고등학교 때 광고 사진을 공부하면서 음악은 교회를 통해 자연스럽게 접했다. 어느 날 친구가 준 제프 버클리의 라는 앨범의 ‘Mojo Pin’을 듣다가 확 꽂혔다. 나는 내 취향을 알았지만 작년까지 어떤 멤버가 무슨 음악을 좋아한다고 하면 ‘그렇구나’ 정도만 인지하고 우리 스타일은 합주를 하면서 만드는 정도였다.
이혜지: 근데 각자가 좋아하는 음악이라는 게 정확히 뭔지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은 그냥 무의식중에 있는 거 같다.
장민우: 멤버들은 다 아는데 구체적으로 잘 모를 뿐인 것 같다. 혜지는 감성적인 게 중요하고 태욱이는 음악 장르보다 드러머가 멋있는 게 중요하고. 그게 멤버들 특성 같기도 하다.
구태욱: 나도 내가 드러머만 멋진 음악을 좋아하는지 생각해봤는데 꼭 그런 것 같지만은 않다. 어떤 에너지가 풍겨져오면 그 뮤지션이 너무 좋아진다. 근데 그 에너지가 어떤 건지는 모르겠다.
장민우: 진짜 까다로운 거다. (웃음) 백만 명 정도가 환호해주는 밴드한테 그 에너지를 느끼는 것 같다. 그럼 이렇게 멤버들 개성이 다른데 어떻게 하나의 색깔이 담긴 앨범을 완성했나.
장민우: 일단 초반 곡은 내가 거의 작곡했고 멤버들과 함께 최종적으로 완성했다. 내가 만들어서 내 의도나 내가 좋아하는 그 음악의 느낌이 어느 정도 들어가는 것 같다. 하지만 거기에 가사와 악기가, 내 목소리가 들어가니까 전혀 다른 곡이 되어 버리더라. 멤버들과 이야기하면서 더 새로운 걸 찾아내고 그게 또 싫지 않아서 멤버들과의 타협이 가능했던 것 같다. 만약 내 솔로였다면 블랙백 음악은 지금 느낌이 아닌 소울, 발라드, 포크였을 거다.
이성복: 가끔 민우가 쓴 곡을 듣고 내가 신나서 “이건 이렇게 저렇게 해보자” 이러고 있으면 멤버들이 가만히 있다가 말한다. “내가 생각한 건 이런 게 아니었어” (웃음) 노래하나 만드는데 멜로디 하나는 크면서도 작은 거 같다. 진짜 곡이 완성되려면 그 외에도 곡 길이나 기타 선율처럼 작곡만큼 힘든 작업이 많이 필요하다. 그걸 같이 하는 걸 무시할 수 없는 거다.

앨범에서 작곡과 편곡은 모두 블랙백으로 되어 있는 것도 이러한 합동 작업을 의미하는 건가.
장민우: 그렇다. 처음에 작사는 쓰는 사람이 확실하니까 그 이름으로 나가고 나머지는 모두가 참여했으니까 공통의 목소리로 가자고 약속했다. 멤버들 개성이 강하다 보니까 역할이 더 빨리 잡혔다.

서로 의견을 교환하는 게 굉장히 중요할 것 같은데 정해진 스케줄대로 움직이는 바른 생활 밴드라고 들었다. 오히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기 어려울 때는 없나.
이성복: 그래서 최근 우리가 대화하는 시간을 따로 만들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합주를 하는데 그 중 한 시간을 빼서 카페에서 대화를 한다. 건전하게. (웃음)
이혜지: 아니면 합주 끝나고 같이 밥 먹기로 정한다. 그게 은근히 힘들더라. (웃음)
구태욱: 사실 지금은 잘못된 걸 알지만 예전에는 불만이 많았다. 나만 의욕이 넘치는 것 같고 다른 멤버들은 안 그러는 것 같았으니까. 이제는 내가 제일 불만이 없다. 그 땐 그런 걸 몰랐고 불만을 풀 만한 대화를 못했던 거다.
장민우: 나랑 태욱이는 매일 연주하다 밥 먹고 자고 일어나서 또 같이 연습하면서 거의 같이 살았는데도 마음속의 대화가 없었다. 같이 사는 가족이 더 소원한 것처럼 가끔은 그런 부분을 일부러라도 건드려줄 필요가 있다는 걸 알았다. 이혜지는 사이트도 운영하고 멤버들을 조율하는 것 같은데 가장 마지막으로 합류한 멤버로서 처음 친해지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이성복: 아니다. 철없는 딸 키우는 거 같다. 혜지 역할은 베이스랑 징징대는 거다. (웃음)
장민우: 사실 나랑 태욱이, 제프(이성복)는 꾸준히 했지만 베이시스트가 조금 자주 바뀔 때 혜지가 들어왔다. 처음 들어올 때 코드가 2개인 가장 쉬운 곡을 혜지가 쳤는데 본인 스타일이 나오더라. 보통 그렇게 쉬운 곡이면 성의 없게 치는데 혜지는 안 그랬다.
이혜지: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 처음엔 나 혼자 벽을 만들었다. 민우 빼고 다른 멤버들도 낯을 가려 힘들었다. 초반에는 멤버들이 “뭐 먹을래?”, “같이 놀까?” 그래도 “난 집에 갈래” 하고 사라졌다. 그럼 멤버들이 문자를 보내 주더라. ‘오늘도 수고했어’ 이렇게. 지금은 많이 친해졌다.

“누가 아니라 우리가 되고 싶어서 시작했다”

그럼 이제는 음악 작업외의 다른 시간에는 어떻게 노는지 궁금하다. (웃음)
구태욱: 남들이 보면 ‘쟤네 왜 저래’ 할 정도로 일상에서 아무 것도 아닌 거에 웃는다. 우리가 생각해도 이상하다.
이성복: 요즘 우리끼리는 영화 대사 따라하는 게 유행이다.
구태욱: 그러면서도 각자 취향은 또 다 다르다. 나랑 민우 형은 휴대폰 게임을 안 하는데 나머지 둘은 정말 좋아한다.
장민우: 게임 한 번 하면 지존이 될 때까지 하기 때문에 다 해버리고 끝낸다. 자잘한 휴대폰 게임처럼 목적 없는 게임은 안 한다. (웃음)

이름과 음악을 많이 알리게 되면서 이제 대중의 시선을 더 신경 쓸 수도 있을 것 같다. 나이에 비해 인디 신 안에서도 드문 음악을 한다는 것이 불안하지는 않나.
장민우: 사실 회사 사장님도 우리 음악은 사람들이 쉽게 들어줄 음악이 아니라고 하셨다. 처럼 5분, 10분 만에 승부를 볼 수 없지만 대신 한 시간짜리 공연이면 다른 밴드에게 꿀리지 않는다고 하신 말씀이 가장 냉정했고 위안이 됐다. 앞으로 순간 성공을 하고 대중의 평가를 들을 수 있지만 우린 지금 당장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음악을 계속 하기 위해 달리고 있는 거다. 우리에게 앞으로 더 좋은 작품을 보여줄 에너지가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성복: 모든 사람이 우리 음악을 좋아할 순 없는 거 같다. 우리가 밴드를 시작한 지 4, 5년이 지났지만 사람들이 우리를 알아보기 시작한 건 1년 전부터다. 중간에 정말 힘든 일이 많았지만 그만큼 긴 무명시절을 견뎌냈기 때문에 조급하진 않다. 보통 20대 초반이면 많은 시행착오를 겪거나 성급한 목표를 세울 수도 있는 법인데 대범하게 음악을 하는 것 같다.
장민우: 보통 밴드들은 되고 싶어 하는 밴드가 있다던데 처음부터 우린 그런 게 없었다. 우린 누가 아니라 우리가 되고 싶어서 시작한 것뿐이다. 물론 활동하면서 배우고 싶은 밴드들은 봤지만. 그래서 조급하지 않다. 3, 4년 안에 성공하지 못한다고 해서 음악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니까. 다만 우린 꾸준히 앨범을 내고 활동을 하면서 인디 신 안의 특정 자리를 계속 차지하고 있을 거다.
구태욱: 사실 난 어릴 때부터 드럼을 배우고 싶어 했지만 내가 이 자리까지 오게 될 줄은 우리 엄마도 몰랐을 거다. 그냥 막연히 드럼을 배우고 싶었고 드럼 배우기 위해 고등학교 때까지 성당에서 살다시피 했다. 남들한테 “너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이런 말을 들으면 더 안 되는 것 같다. 난 그런 말은 전혀 안 들었고 그냥 재밌어서 계속 했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그냥 계속 음악을 하고 싶을 뿐이다.

그렇다면 블랙백의 다음 목표는 뭔가.
장민우: 일단 정규 앨범을 준비하려고 한다. 그리고 더 많은 페스티벌에 서는 게 목표다.
이성복: 라이브를 하나의 쇼로 봤을 때 지금보다 더 나은 쇼를 만들고 싶다.

글, 인터뷰. 한여울 기자 sixteen@
인터뷰. 윤희성 nine@
사진. 이진혁 eleven@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