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벽에 기대 무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여진구. 햇살이 비치는 카페테라스에 기댄 채 환하게 웃고 있는 여진구. 분명 똑같은 파란색 트렌치코트 차림이지만 사뭇 다른 분위기다. MBC 의 왕세자 훤과 QTV 의 열여섯 여진구를 번갈아보는 느낌이 바로 이런 걸까. 마음에 품은 연우(김유정)에게 아무런 힘이 되어주지 못한 채 그 아이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의 훤에서, 이탈리아 한복판에서 젤라또 아이스크림 하나에 입이 귀에 걸린 중학교 3학년으로 돌아온 여진구는 여전히 ‘엄마 미소’를 부르는 소년이었다. “연기를 아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임했던 에 대해 이야기할 때조차 “으하하하” 호탕한 웃음소리를 숨기지 못했다. 아직까지 “첫사랑에 대한 감정을 느껴보지 못했지만” 나중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참 남자다운” 쿨한 어른이 되고 싶은 전교부회장 여진구와의 흐뭇한 대화를 옮긴다.
* 또 한 명의 훤, 김수현과의 인터뷰도 이어집니다

의 여행지를 직접 정했다고 들었는데, 왜 이탈리아에 가고 싶었어요?
여진구: 초등학교 때 교과서에 유적지가 나오면 항상 콜로세움 같은 이탈리아 유적지가 포함돼 있었어요. 사진으로만 보던 유적지를 실제로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주변에서 이탈리아에 대해 많이 들으니까 굉장히 가까운 나라처럼 느껴지는데 또 그렇지가 않잖아요. 제가 가보고 싶은 나라로 첫 여행을 가게 돼서 좋았어요.

열여섯 살에 혼자 여행을 가게 될 거라고 생각해 본 적 있어요?
여진구: 당연히 스무 살 넘어서 갈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빨리 하게 될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으하하.“전 딱 봐도 중학생인 것 같진 않잖아요”

이번 프로그램에서는 배우 여진구가 아니라 열여섯 살 여진구의 모습이 많이 보였어요. 길도 많이 헤매고 가방도 잃어버릴 뻔했잖아요. (웃음)
여진구: 제가 그 정도 일 줄은 몰랐어요. 항상 엄마나 매니저 형이랑 같이 다니니까 길 찾는 것도 어려워 보이지 않는 거예요. 어른스럽게 여행을 잘하는 아이처럼 나올 거라고 예상했는데, 내레이션 녹음을 할 때 편집본을 봤거든요. 제가 막 “어? 여기 어디지?” 이러고 있더라고요. 지도를 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지금 어디에 있는 건지 모르겠고.

혹시 ‘의 이훤으로 쌓은 멋있는 이미지가 무너지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은 안됐어요?
여진구: TV에 나오는 사람들한테 갖고 있는 환상 같은 게 있잖아요. 이렇게 허당 같은 모습을 보여드리면 부담이 덜 될 것 같았어요. 여진구가 아직 많이 어리구나, 라고 생각하실 거 아니에요. 진짜 여진구를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서 편집하고 싶은 장면도 없었어요.

사람들이 배우 여진구에 대해 어떤 환상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여진구: 공부를 굉장히 잘 한다든가 (웃음) 아니면 뭐든지 다 잘할 것 같다는 말씀을 많이 하세요. 사실 전 그렇지 않거든요. 분명히 못하는 게 있고 실수도 많이 하고. ‘역시 얘는 이런 것도 잘하는 구나’라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어떡하지? 살짝 틀린데?’라고 생각해요. 하하. 또래 배우들처럼 마냥 귀여운 느낌보다 30대 누나 팬들조차 ‘오빠라고 부르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어른스러운 이미지가 강해서 그렇게 비춰지는 게 아닐까요?
여진구: 제가 생각해도 제 얼굴이 그렇게 동안이 아니에요. 딱 봐도 중학생인 것 같진 않잖아요. 한 고1이나 고2 정도로 보이는데, 거기다 목소리까지 성숙하다보니까 많은 분들이 어른스럽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근데 목소리가… 좀 더 높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게 친구들을 부르면 잘 못 들어요. 가끔 친구들이 저한테 목소리 깔지 말라고 놀려요. 원래 이런 건데…

의 김도훈 감독도 진구 군을 캐스팅할 때 “이 어린 배우에게 마음을 뺏기는 게 맞는 건가라고 헷갈릴 수 있는 캐스팅”을 노렸다고 하시더라고요.
여진구: 대본 리딩을 할 땐 그런 생각을 못했어요. 제 귀에 들리는 목소리와 실제 목소리가 다르니까 제 목소리가 얼마나 낮은지 모르는데, 감독님은 계속 괜찮다고 말씀해주셔서 뭔가 좀 불안한 장면들이 있었어요. 그래도 감독님을 믿고 감독님이 좋다고 하시면 “아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하고 그대로 연기했는데 다행히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셨어요.

어렸을 때 눈물 연기를 할 땐 일부러 슬픈 상상을 했는데 이번에는 진짜 연우와 훤의 상황에 몰입했다고 들었어요.
여진구: 그렇게 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좀 신기했어요. 어렸을 땐 좀 더 자극적인 상상이 필요해서 부모님과 관련된, 정말 해서는 안 될 상상을 하면서 감정을 잡았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대본을 가지고 감정을 잡아도 되는구나, 이 역할에 몰입을 하면 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부모님한테 죄송한 마음이 많이 없어졌어요. (웃음) 이번 드라마를 통해 연기적으로 한 걸음 더 진화한 것 같아요. “ 같은 영화를 찍어보고 싶어요”

촬영에 들어가기 전부터 남다른 각오를 하고 들어갔나 봐요.
여진구: 처음에는 평소에 하던 것처럼 훤을 연기하면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저도 모르게 제 연기 톤이 잡혀있더라고요. 그동안 제가 좀 강한 역할을 많이 맡다보니까 세자에 어울리지 않는 무사 톤이 나왔어요. 세자는 차분하고 근엄해야 되는데 제가 자꾸 사납고 날아다니는 톤으로 대본을 읽으니까 감독님께서 저를 부르셔서 얘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연기를 아예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모든 걸 처음부터 쌓아나갔고, 예전 작품보다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상대배우 유정 양과 애틋한 감정 연기를 했던 건 어땠어요? 아무래도 드라마 초반에는 어린 훤과 연우의 로맨스가 중심축이었는데.
여진구: 로맨스에 몰입하는 게 어려웠어요. 첫사랑에 대한 감정을 아직 느껴보지 못해서 이게 뭔지 헷갈리고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어떻게 아셨는지 감독님이 찾아와 주시더라고요. 형선(정은표) 선생님도 옆에서 많은 얘길 해주셨어요.

어떤 얘기를요?
여진구: 선생님의 첫사랑 얘기? 하하. 그 때는 이런 느낌이었다고. 선생님이 그 순간의 표정까지 직접 지어주셔서 도움이 많이 됐어요. 막연하게나마 첫사랑에 대한 환상이나 로망 같은 게 있어요?
여진구: 남들보다 좀 화려한 것 같아요. 뭔가 막, 공원을 빌려서 좋아하는 여자를 가운데에 앉혀놓고 프러포즈를 하는 상상을 하고 있는데, 이게 제 생각에는 감독님들과 선생님들 때문인 것 같아요. 하하. 어렸을 때부터 선생님들의 첫사랑 얘기를 들으니까 저도 모르게 성대한 첫사랑을 꿈꾸고 있어요.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게 됐을 때 로맨스 영화에 출연하게 된다면, 어떤 영화를 찍고 싶어요?
여진구: 성인이 된 이후에 이런 저런 경험을 하고 감정을 쌓게 되면 정말 달달한 영화를 찍어보고 싶어요. 요즘 개봉한 영화로 치면 이요.

아니 은 15년 전 스무 살 때 첫사랑을 경험한 이야기인데 그걸 이해했단 말이에요? (웃음)
여진구: 사실 잘 모르죠. 삼촌이나 이모 세대의 영화 같더라고요. 근데 이제훈 형과 수지 누나는 뭔가 아는 것처럼 보여서 저게 어떤 느낌일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봤어요. SBS 끝나고 했던 인터뷰에서 ‘마의 16세’가 걱정된다고 했는데, 진짜 16살이 된 본인을 평가해본다면 어때요?
여진구: 아직 크고 있는 중이라 ‘마의 16세’ 위기를 잘 넘긴 건지 장담은 못하겠어요.

키는 원하는 만큼 크고 있어요?
여진구: 꾸준히 크고 있습니다. 때보다 한 12cm 정도 컸는데 앞으로 딱 그만큼만 더 컸으면 좋겠어요.

새 학기가 시작됐는데 같은 반 친구들과는 많이 친해졌어요?
여진구: 원래 다 알고 있던 사이에요. 저는 뭐, 3학년 전체가 친구니까요. (웃음)

그래서 전교 부회장에 떡하니 당선된 거군요!
여진구: 원래 출마할 생각이 없었는데, 지금 전교 회장이 된 친구가 저한테 제안을 했어요. 선거에 같이 나갈 친구가 필요한데 널 생각하고 있다고. 전 학교도 많이 못 나가는 사정이 있으니까 우선은 생각해보겠다고 했는데, 한 번 해보면 나중에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더라고요. 리더십도 길러질 것 같고 전교 부회장이라는 자리를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내적으로 쿨한 남자가 되고 싶어요”

학교 축제 사회도 본다면서요?
여진구: 축제 기획은 선생님들께서 해주시는데, 프로그램을 이끌고 진행하는 건 저랑 회장 친구가 하죠. 축제는 10월쯤에 해요.

혹시 추진해보고 싶은 축제 프로그램이 있어요?
여진구: 여장남자대회 한 번 해보고 싶어요. 하하.

직접 출연하려고요? (웃음)
여진구: 저는 아니고요, 친구들 중에서 몸매가 여자처럼 예쁜 애들이 있거든요. 친구들 분장해주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요. 무조건 다 치마 입혀야 되고, 진한 아이라인과 가발도 필요해요. 최대한 여성스럽게!

본인이 참여해보고 싶은 이벤트는 없어요?
여진구: 생각 안 해봤어요. 아직까지는 친구들 놀리는 게 가장 재밌어요.

요즘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큰 관심사는 뭐에요?
여진구: 친구들은 걸 그룹에 관심이 많은데, 전 걸 그룹이 싫은 건 아닌데 그렇다고 되게 열광하는 편도 아니에요. 요즘엔 기타가 제일 좋아요. 그런데 기타를 치다 보니까 박자 감각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올해부터 ‘바이러스’라는 학교 밴드부에 들어가서 드럼을 배우고 있어요. 드럼을 치면 스트레스도 해소될 것 같고, 뭔가 드러머 하면 과격하고 파워풀한 사람 같다는 환상도 있었고요.

또래보다 빨리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되돌아보면 나에게도 사춘기 시절이 있었던 것 같아요?
여진구: 물 흐르듯 지나온 것 같아요. 친구들 얘기 들어보면 사춘기 때 엄마, 아빠랑 얘기도 안하고 밥도 안 먹었다고 하더라고요. 전 안 그랬거든요. 어떻게든 부모님께 빌붙어야 (웃음) 밥도 먹을 수 있었고, 스케줄 때문에 차를 타고 이동하다 보니까 엄마, 아빠의 심기를 건드리면 좋을 게 없다는 걸 알았어요. 친구들이 “나 가출할까봐” 그러면 저는 “왜? 집이 제일 좋아. 마음껏 먹고 잘 수 있잖아”라고 말했어요.

그런 점에서 내가 또래 친구들보다 어른스럽다고 느껴지기도 해요?
여진구: 친구들이 가끔 철없는 행동을 하면 부끄럽긴 해요. 갑자기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면 전 옆에서 호객행위를 해요. “저기 애들이 춤추고 있어요. 재밌으니까 가보세요.” 그리고 전 창피하니까 도망가고. 으하하하.

나중에 어떤 남자가 되고 싶어요?
여진구: 남들이 봤을 때 참 남자네, 이런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참 남자다운 아이구나 하는 느낌?

그렇게 보이기 위해 내 안에 뭘 더 채워야 할 것 같아요?
여진구: 외적으로는 키도 좀 크고 근육도 키워야 할 것 같고, 내적으로는 쿨해야 될 것 같아요.

본인이 생각하는 ‘쿨한’ 남자는 어떤 남자에요?
여진구: 섬세할 땐 섬세하되 소심해보이지 않고, 베풀 때는 한 없이 베풀어주는데 아낄 때는 아끼는 사람이요. 약간 대인배 같은 스타일이죠.

열여섯 살의 여진구는 어때요? 쿨한 편인가요?
여진구: 저는 지금 필요 이상으로 너무 베풀고 있어요. 하하. 요즘 친구들이 “진구야, 너 한 번 베풀 때 되지 않았니”라고 물어봐서 부담스러워요. 예전에 용돈이 생겨서 기분 좋게 친구들이랑 떡볶이를 먹고 제가 냈거든요. 근데 한 명이 내다보면 다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잖아요. 아… 사주질 말았어야 했는데. (웃음) 이제 좀 아껴야겠어요. 갑자기 확 끊을 순 없으니 점점 금액을 줄이려고요.

글. 이가온 thirteen@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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