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이 그토록 시청자들의 애를 태우더니만 드디어 아버지(장용)께서 아들을 알아 보셨습니다. 아무 말씀도 못하고 걸어와 보듬어 안으며 “미안하다, 귀남아”하고 오열하시는데 말 그대로 가슴이 미어지는 줄 알았어요. 삼십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다른 식구들 생각해서 내색 않고 누르고 감춰두었을 그 숱한 감정들이 한 순간에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지 싶어요. 테리 강(유준상), 아니 귀남 씨 역시 만감이 교차했는지 울지도, 입을 열지도 못하더군요. 그저 떨리는 손으로 아버지를 끌어안던 장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런데요. 지금 와 하는 얘기지만 하도 알 듯 알 듯 하다가 무위로 돌아간 적이 많았던 터라 만약 보육원까지 찾아간 이번에도 별 소득이 없었다면 시청을 아예 포기하려고 했습니다. 끌어도 너무 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특히나 소포 포장을 뜯고 아들을 잃어버릴 당시 손수 떠 입혔던 스웨터를 발견했을 때, 이건 너무나 명백한 증거인지라 바로 게임 끝이려니 했거든요. 그런데 또 다시 별 일 아닌 것으로, 비슷한 옷이 있을 수 있다는 쪽으로 상황이 전개가 되다 보니 보는 입장에서는 갑갑증이 일어날 밖에요.
사실 갓난아기도 아니고 대여섯 살쯤에 헤어졌다면, 어지간하면 알아볼 만도 하지 않나요? 우리 아이 어릴 적 친구를 이십년 만에 길에서 마주친 적이 있는데 긴가, 민가 하는 정도가 아니라 대번에 알아보겠던 걸요. 어린 시절 얼굴이 여전히 남아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 많은 식구들 중 단 한명도 눈에 익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물론 호흡이 긴 주말 드라마라는 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그래도 작은 어머니(나영희)의 까닭 모를 방해 공작까지 봐야하는 통에 아주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었다고요. 게다가 하도 막장 드라마를 많이 봐서일까요?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 저러다 사고 나는 거 아니야?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들은 기억상실증에라도 걸리면 어쩌지? 뭐 이런 불안감까지 엄습하더군요. 어이없죠?
장차 ‘시월드’를 껴안게 될 윤희 씨에겐 파란이 예고됩니다
어쨌든 이제는 속 편히 볼 수 있겠습니다. 무엇보다 어머니(윤여정)와 할머니(강부자)께서 얼마나 기뻐하실지, 상상만으로도 흐뭇해요. 시절이 좋아 아들 선호사상이 사라졌다지만 어르신들에게는 여전히 귀하디귀한 아들일 테니까요. 그래서 이름도 ‘귀남’이지 않습니까. 그 귀한 아들 잃어버리고, 그리고 뒤이어 딸을 연달아 낳아 기르는 동안 어머니가 시어머니로부터 받으셨을 심리적인 압박, 충분히 짐작이 갑니다. 그런데 기적처럼 아들이 살아 돌아온 데다 금상첨화로 더 없이 괜찮은 인품의 청년으로 성장했으니 오죽 기쁘실까요. 그처럼 잘 길러주신 양부모님들께 살이라도 베어드린다 한들 아깝지 않을 것 같습니다.그러나 인생이란 게 늘 그렇듯 기쁨은 잠시 잠깐일 뿐, 닥쳐올 엄청난 파란이 예고되고 있으니 이를 어쩝니까. 그렇지 않아도 이미 앙숙 사이인데 그도 부족해 무려 고부간이 되고 말았네요. 능력 있는 고아와 결혼하길 소망했던 귀남 씨의 아내 차윤희(김남주) 씨로서는 뒷목을 잡고 쓰러질 일일 겁니다. 미국에서 자라난 귀남 씨로서는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겠지만 우리나라 여성들은 ‘시’자라면 아주 질색들을 하거든요. ‘시월드’라 부르며 경계를 하는가 하면 오죽하면 ‘시’자 들어갔다고 시금치도 안 먹는다는 얘기가 있겠어요. 저는 며느리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몇 년 안에 며느리를 보게 되는 입장인지라, 그리고 제 딸 또한 남의 집 며느리가 될 터라 흥미진진하게 양 쪽을 오가는 마음으로 지켜보게 되지 싶어요.
현명한 귀남 씨라면 고부 사이에서 중심 잘 잡을 거라 믿어요
사실 저는 귀남 씨가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 끼어 갈팡질팡하는 세상 모든 남자들의 해답이 되어주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길이 아니면 가지 않는, 타협을 모르는 귀남 씨가 아닙니까. 지난번 병원에서 VVIP급 환자의 새치기 진료를 강요받았을 때 오래 기다려온 환자들이 우선이라며 단호하게 거절하던 모습, 감동이었어요. 따라서 여느 남자들처럼 자신이 할 효도를 아내에게 미루는 일은 당연히 없지 싶고요. 아내 또한 존경심이 우러나오는 남편이기에 남편이 하고자 하는 일에 사사건건 토를 달지는 못할 겁니다. 자기 집 식구들을 아끼고 챙기는 만큼 처갓집 식구들에게도 그 못지않게 최선을 다할 게 분명하니까요. 어머니를 포함한 가족들도 지금처럼 막무가내로 윤희 씨에게 경우 없이 굴지는 못하겠죠?
그리고 말이 나온 김에 부탁 하나 할게요. 막내 동생 방말숙(오연서) 씨 얘긴데요. 타고난 미모와 애교로 뭇 남성들을 쥐락펴락하는 모양이더라고요. 문제는 고가의 가방을 선물 받자마자 연락을 끊어버리는 꽃뱀들이나 할 짓을 서슴지 않는다는 거예요. 아 정말 이런 여성, 사회악이지 않습니까? 부디 그 못된 버릇, 깨끗이 고쳐주기 바래요. 그러고 보니 앞으로 귀남 씨가 감당해야 할 숙제들이 산적해 있네요. 이런 불편함 때문인지 지난날 이산가족 찾기 방송을 통해 눈물의 상봉을 한 가족들 중에 다시 인연을 끊은 분들도 꽤 많다고 하더라고요. 사람들은 차윤희 씨의 앞날이 걱정이라지만 저는 귀남 씨가 받을 문화적 충격이 더 걱정스럽더군요. 그래도 워낙 긍정적이고 씩씩한 분이니까 잘 해내시겠죠?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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