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한반도가 3개로 찢어져 있던 삼국시대. 유희라고는 도박과 연애질이 전부이던 시절, 국경을 초월한 사랑이 시작되었으니 바로 신라의 선화공주(백은혜)와 백제의 서동(전성우) 설화렷다. 매일 밤 월담으로 숱한 사내들의 마음을 흔들던 선화공주는 셔플댄스의 달인이었고, 어여쁜 처자를 탐닉하던 서동은 21세기쯤에나 주목받을 수 있는 외모의 ‘꽃도령’이었노라 전해진다. 은은한 연등조명 아래 리듬을 타던 선화공주가 꽃신 한 짝을 슬며시 흘리는 순간, 두 남녀와 두 나라의 운명이 뒤틀리기 시작했으니 역시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이렷다. “더럽고 치사한” 더치페이를 고수하는 공주와 그런 공주를 잡기 위해 “선화공주는 맛둥도령하고 밤에 몰래 만나러 간다네”라 외치는 “싱어 송 라이터”의 만남. 이로써 ‘밀당’이 탄생했노라는 믿거나 말거나 본격 고증 철저 사극 판타지 되겠다.


‘밀당’과 로맨틱코미디의 비법을 전수합니다


지난해 시작된 은 KBS , SBS 같은 홍정은-홍미란 작가의 초기작을 연상시킨다. 능청스럽고 털털한 선화와 멋지지만 어딘지 모르게 살짝 재수 없는 서동, 아저씨 외모에 나르시시즘이 과한 선화의 정혼자 해명왕자(윤경호)까지. 일단 쫀득쫀득한 점성의 캐릭터가 무대에 착 달라붙고, 적당한 긴장감과 절묘한 타이밍으로 유지되는 ‘밀당’처럼 배우들의 대사 호흡도 탁구공의 속도감을 쏙 뺐다. 적재적소에 터져 나오는 “마즙 앤 감자” 같은 대사나 “역시 예나 지금이나 스트레스 받으면 먹는 게 여자”라며 극 안으로 들어와 적절히 치고 빠지는 고수의 역할도 탁월하다. 클리셰와 원전대사를 호기롭게 차용하며 시간이 흐를수록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시키는 둘의 만남은 5분에 한 번꼴로 관객을 들었다 놨다 한다. 게다가 무대 구석구석에서 패러디장르 특유의 재기발랄함이 솟아난다. 벚꽃이 흐드러진 봄과 난초가 피어있는 초여름의 호숫가, 근엄한 왕의 집무실 등 계절과 공간을 표현하는 세트에는 화투패가 쓰였고, 타령과 ‘얼레리 꼴레리’ 같은 구전음악의 리듬이 친숙하게 흥을 돋운다. 두 남녀가 핑퐁게임 끝에 진실한 사랑에 이르게 된다는 내용은 다소 뻔한 로맨틱코미디 장르의 범주다. 하지만 이 작품은 결국 같은 장르 안에서 얼마나 신선하고 독특한 세계관을 구축해 밀고 나가느냐에 따라 성패가 좌우된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깊이에 대한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패러디장르야말로 원 텍스트를 철저히 탐구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영역이다. 젠체하지 않고 목적성에 맞도록 집중하는 것, 그리고 대본에서부터 음악, 연출에 이르기까지 스태프 대부분의 영역을 혼자 해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을 그리고 서윤미를 주목할 만하다. 때로는 깊은 바다보다 얕지만 깨끗한 시내가 그리울 때가 있다. 그리고 은 바로 그 시내를 닮았다. 공연은 4월 29일까지 PMC대학로자유극장에서 계속된다.

사진제공. PMC프로덕션

글.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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