굵고 진한 눈썹, 우렁우렁한 목소리. 어딘지 만화 속의 캐릭터 같다. 빨간 재킷을 입고 뚜벅뚜벅 걸어와 카메라 앞에 단단히 발을 디디고 선 그는 이윽고 어디론가 달려가려는 개구쟁이 같은 동작을 취한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파이팅’ 구호 대신 스튜디오가 떠나가라 “홍수봉!”을 외칠 때는 웃음까지 터져 나온다. 손진영, MBC 에서 노래 한 곡마다 뜨거운 눈물을 머금었던 그의 이름은 공 하나하나를 인생의 마지막인 것처럼 뿌려대던 만화 속 야구선수를 떠올리게 하지만 스튜디오를 꽉 채우던 그의 덩치가 뿜어내는 활달한 기운은 유쾌하고 낙천적인 소년만화의 것이다. “늦바람이 불었어요. 지금까지 없었을 정도로 많은 칭찬도 듣고 있죠”라고 말할 정도로 손진영의 하루하루는 두근거리는 설렘과 기쁨으로 가득하다. MBC 에서 빛나라 쇼단의 살림꾼 역할을 하다 무대에 설 기회를 잡은 홍수봉에 사로잡혀 살고 있는 손진영은 배우로 첫 발을 내딛은 오늘을 얘기하며 화려한 쇼의 조명을 받고 반짝거리는 무대 의상이 신나 어쩔 줄 모르는 아이 같은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아버지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후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던 손진영은 무대 위를 그저 바라만 봐야 하는 이의 쓸쓸함 또한 잘 알고 있다. 에서 멘토였던 김태원이 “손진영 씨는 인생이 후렴만 있다”고 말할 정도로 비장했던 것도, 직후 “청강이와 태권이에게는 계속 일이 들어오는 데 나만 찾아주는 사람이 없”어 조바심을 냈던 것도 그 간절했던 순간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무대에 오를 수 없는 아픔과 무대 위의 희열을 두루 경험한 손진영이 얻은 것은 작지 않다. 어느 날 한 회에 대사가 한줄 밖에 되지 않을 때도 있는 스물여덟 살의 늦깎이 드라마 출연에 조급한 마음이 되살아나면 “이 순간을 즐기기만 한다면 다 날아가 버릴 것 같아요. 하지만 이 고비를 헤쳐 나가면 더 큰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는 것도 알게 됐”다는 깨달음을 “철학적으로 살자”는 일곱 글자로 줄여 너털웃음과 함께 주문처럼 외우며 자신을 다독인다. “에서 유채영(손담비)이 강기태(안재욱)에게 ‘쇼처럼 즐거운 인생은 없다’고 말하거든요. 그런 것 같아요. 인생이 쇼 같은 거” 누구도 들춰보지 않는 장막 뒤편에서 자신에게 비춰질 조명을 묵묵히 기다렸던 손진영이 드디어 무대 위에 올라섰다. 비록 지금은 언제 다시 암전될지 모르는 작은 조명일지라도 뭐, 어떤가. “후렴을 받쳐주는 1,2절을 만들어야 한다”는 김태원의 조언처럼 착실하게 1,2절을 써나가고 있는 그의 커다란 입에서 언젠가 함성처럼 희열이 가득 찬 후렴구가 터져 나올 순간도 올 테니까 말이다.
My name is 손진영
1985년 10월 31일에 태어났다.
처음 드라마에 캐스팅 됐을 때 주위에 친한 드라마 경험이 있는 분들을 찾아가 어떻게 해야 더 잘할 수 있겠냐고 물어봤다. ‘후배로서 최선을 다 하면 된다. 현장에도 가장 먼저 가 있고, 인사도 잘 하면 된다’는 가르침을 많이 받았다.
에서도 오디션을 보는 장면이 있다. 그때 조미령 선배님도, 엄수정 선배님도 노래 잘했다고 먼저 문자를 보내주셨다. 선배님들이 다 잘 챙겨주셔서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홍수봉은 원래 수려한 인물에 바람기 많은 캐릭터다. 솔직히 시놉시스를 읽으며 왜 날 캐스팅했을까 궁금했는데 감독님을 처음 만날 때 ‘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바뀌는 거니까 너 편한 대로 해’라는 말씀을 들었다. 그래서 내가 막 꿈을 꾸기 시작할 때의 어리바리하고, 덜 떨어진 캐릭터가 나왔다.
처음 기타를 배울 때는 손톱에서 피가 나도록 몰입했다. 라는 연극을 할 때였다. 음악이라는 꿈을 가지고 있는 40대 샐러리맨인데, 결국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어딘지 모르게 나와 비슷한 데가 있었다.
군대에는 ‘아이리버병’이라는 게 있다. 내가 바로 그거였다. 고참이 지나가다 툭 치면 ‘아이~리버~!’를 외치고 노래를 하는 거다. 연극할 때도 선배님들이 술 드실 때 옆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가수의 길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 나는 에 출연하는 배우 손진영이고, 노래는 그냥 나 자신이다. 혼자 있는 시간에는 노래를 부르고, 기타를 치며 하루를 보낸다.
만들어 놓은 미공개 곡이 한 50여곡 된다. KBS 음악감독이신 박찬혁 형님께 용기를 내 음악을 들려드렸더니 칭찬을 해주시며 ‘태원이 형한테 꼭 들려드려라’라고 하셨다. 하지만 부끄러워서 아직 김태원 선생님께는 한 번도 들려드린 적은 없다.
디시인사이드 갤러리도 가보고, 포털 사이트 댓글도 다 본다. 김태원 선생님은 디시인사이드 분들이 정말 도움이 되는 분들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 댓글들이 진짜 댓글이고 도움되는 댓글’이라고.
안재욱 선배님의 ‘재미삼아’ 야구팀에 꼭 들어가려고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게임을 하면 야구 게임만 하고, 휴대폰에 야구 백과 어플도 받았다. 내 포지션은 4번 타자를 예상하고 있다.
는 보지 않는다. 어머니와 동생은 재미있다면서 즐겨 보는데,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못 본다. 얼마나 마음속에서 싸우고 있을지 아니까.
청강이와 태권이랑 보고 싶을 때 마음껏 본다. 외인구단을 같이 했던 정모 형하고도 연락을 많이 한다. 청강이가 없었으면 나도 없었고, 또 태권이도 마찬가지다. 우리 외인구단 네 명과 같이 콘서트를 하고 싶은 게 바람이다.
글. 김명현 기자 eighteen@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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