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한국 가 사람 하나 죽이고 와라.” 돈 벌러 한국으로 떠난 아내는 소식이 없고 쌓여가는 빚 때문에 절망에 빠진 연변의 택시운전사 구남(하정우)에게 살인청부업자 면가(김윤석)가 손을 내밀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황해를 건너온 두 남자의 쫓고 쫓기는, 죽고 죽이는 처절한 구도가 어딘가 익숙하다면, 맞다. 는 의 나홍진 감독, 김윤석, 하정우가 다시 만난 작품이다. 한국형 스릴러의 새 장을 열었다고 평가받은 전작의 그림자는 감독마저 “독이 될 수 있겠다”고 우려했을 만큼 짙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가 뿐 아니라 그 어떤 영화와도 다르다”(나홍진)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말 역시 허황되게 들리지는 않는다. 그 결과 배우들은 촬영 3개월 전부터 연변 사투리와 마작을 마스터하며 “생존을 위한 액션”(김윤석)을 구현해냈고 감독은 언어조차 통하지 않는 3,4백 명의 엑스트라를 통제해야 했던 하얼빈 개시장에서의 촬영을 비롯해 거칠기 그지없는 현장을 3백 일간 이끌었다. 그리고 23일 제작보고회에서 공개된 짧은 영상은 범죄의 기저에 깔려 있는 인간의 잔혹함과 그 배경이 되는 ‘사회’를 그려내는 데 탁월한 나홍진 감독의 장기대로 관객의 숨통을 짓누른다. 치열한 전장으로부터 두 번이나 살아 돌아온 듯 땀과 먼지 냄새 가득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는 한 마디로 어떤 영화인가.
김윤석 : 아주 광활한 얘기다. 살인청부라는 소재를 비롯해 여러 가지가 얽혀 있지만 한 마디로 하면 ‘부인을 찾아 한국에 온 한 연변 남자의 이야기’다. 그리고 만의 매력은, 이 영화가 4D는 아니지만 보다 보면 하정우와 김윤석이 나오는 장면에서 왠지 어디선가 발꼬랑내가 나는 것 같은, (웃음) 그만큼 입체감 있고 살아있는 영화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거다.
하정우 : 는, 평범한 사람들이 궁지에 몰리게 되자 괴물로 변신해서 많은 일들을 겪어내고 해결가고 맞이하면서 결말을 향해 치닫는 영화인 것 같다. “나홍진 감독과 함께 작업할 때마다 다시 살아난다는 기분이 든다”
시리즈물이 아닌 한 같은 배우들과 연이어 함께 일하는 경우는 드문데 에 이어 에서도 이 배우들이 아니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인가.
나홍진 감독 : 이야기를 키워가면서 이 배우들이 먼저 떠올랐던 것 같다. 상상하는 것에 대해 허락을 받아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웃음) 그래서 그 배우가 뛰는 모습, 살아가는 모습들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구상했고 출연을 부탁했다. 가 의 속편처럼 보일 거라는 우려는 애시당초 하지 않았고, 그래서 두 분에게도 자신있게 부탁드릴 수 있었던 것 같다.

나홍진 감독이 “김윤석은 내공이 남다른 배우”라고 표현했다. 김윤석 본인의 생각은 어떤가. 그리고 감독에 대한 배우의 생각도 궁금하다.
김윤석 : ‘내공’ 얘기에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웃음) 때도 비슷했던 것 같은데 나홍진 감독은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해 준다. “연변의 한 남자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하면서 약 30분 동안 재밌는 옛날 얘기처럼 스토리를 들려주면 나도 소감을 이야기하고, 감독은 그게 시나리오에 들어갈 텐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다. 그렇게 해서 영화라는 생명이 만들어지는 그 순간부터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굉장히 행복했다. 나는 이 작품에서 등장 회수만 따지면 하정우 씨의 3분의 1 가량이지만 현장에서는 영화 전체에 대한 이야기, 내 캐릭터와 전혀 상관없는 신에 대해서도 얘기할 수 있다는 게 너무나 소중했고 우리가 다시 만난 계기도 그런 것 같다. 특히 나홍진 감독은 작은 이야기에서 시작해 이것이 남이 아니라 나의 이야기라는 것을 보여주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 는 한 연변 남자에 대한 이야기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가족, 인간관계, 배신과 사랑 등을 담은 나의 이야기라는 기분을 느끼게 될 거다. 그래서 나홍진 감독과 함께 작업할 때마다 다시 살아난다는 기분이 든다.

현장이 험하기로 유명했던 에서도 가장 고생한 사람은 하정우라고 들었다.
김윤석 : 이 영화에서 고생 안 하신 분은 거의 없다. 영화가 곧 엎어질 거다, 올해 개봉 못하는 거 아니냐는 소문도 많았고 보조 출연자분들은 어느 날 촬영이 끝난 뒤 그 다음 컷을 위해 8개월을 기다려야 하는 힘든 상황도 겪으셨으니까. (웃음) 그런데 어쨌든 나보다는 하정우 씨가 30배 정도 힘들었을 거다. 우리가 첫 대본 리딩을 할 때 하정우 씨 지문이 한 문장 있었다. “구남, 뛴다” 찍는데 2주 정도 걸렸다. 거기에 “구남, 산을 넘는다. 정상이다. 밤이다. 춥다. 운다. 울다가 돌부리에 걸려서 굴러간다. 계속 굴러간다. 피가 난다. 양말을 벗어서 묶는다”라는 지문이 이어질 때마다 나는 하정우 씨를 보며 계속 웃었지만 그걸 영상으로 옮겨야 하는 사람들은 엄청나게 고생했다. 극 중에서도 나는 비행기 타고 와서 호텔 생활 하지만 하정우 씨는 4, 50시간 동안 배에 숨어 한국에 오자마자 뺨 맞고 어딘지도 모르는 촌락으로 옮겨졌으니까. (웃음) 그 중에서 특히 ‘이러다 진짜 죽는 거 아닌가’ 하는 생명의 위협을 느꼈던 순간도 있나.
김윤석 : 원래는 바다에 빠져 수영하는 장면을 올 3월 정도에 찍으려고 했는데 일정에 차질이 생겨 뒤로 밀리는 바람에 우리는 쾌재를 불렀다. 중국 촬영 다녀오면 여름일 거고 바닷물이 차갑지 않을 테니까 다행이라며. 그런데 촬영이 계속 미뤄지더니 다시 겨울이 오더라. (웃음) 그래서 겨울 바다에 빠져 수영을 했는데 다행히 물은 차갑지 않았지만 스윔수트를 입고 전력수영을 하려니 한 커트를 찍고 나서 탈진해 버렸다. 우리가 둘 다 수영을 못 하는 사람들이 아닌데도. 그 때 생명의 위협까진 아니더라도 호흡에 무리가 올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B 카메라가 안 돌아갔다는 ‘반가운’ 소식에 다시 찍었다. (웃음)
하정우 : 겨울 바다에 두 시간 이상 있으면 저체온증에 걸릴 수도 있다는 정보를 듣고 미리 예방법을 찾아보기도 했다. 그리고 촬영 전 우연히 우리나라 남해와 서해에 백상아리가 나타난다는 내용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혹시 찍다가 죠스가 나타나면 어쩌나’ 하는 말도 안 되는 걱정을 했다. (웃음) 그리고 운동화 하나를 신더라도 중국에서 사와야 한다, 연변 시장에 있을 것이다 하는 식으로 한 뜸 한 뜸을 표현하려 노력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배우들이 겨울 바다에 빠져 있을 때 감독은 무엇을 했나. (웃음)
나홍진 감독 : 당시 수중 카메라를 쓸 수 없는 상황에서 찍느라 구명보트 위에서 촬영을 했다. 그래서 한 컷이 끝나면 내가 배 위로 배우들을 끌어올려 드렸다.

“영화를 찍는 동안 연예인 기운이 하나도 없어진 것 같았다”
만약 이 작품을 다시 하자고 하면 출연할 생각이 있나?
하정우 : 남자들은 제대 후 가끔 재입대하는 악몽을 꾸곤 하는데 를 찍으면서 다시 영화의 크랭크 인 날이나 첫 대본 리딩 때로 돌아가는 꿈을 꾸고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곤 했다. 절대 현실에서 일어나선 안 되는 일로 군대 다시 가는 것에 를 다시 찍는 일이 추가됐다. (웃음) 조선족 연기를 위해 마작과 연변 사투리를 배웠다고 했는데 그 과정은 어땠나.
김윤석 : 우리 두 사람에게 트레이너가 붙어서 하루 네 시간씩 마작을 하고 점심부터 저녁까지 술 마시면서 얘기를 했다. 보통 우리는 개그맨들이 상투적으로 흉내 내는 연변 말이나 식당 일 하시는 조선족 분들의 말투를 떠올리는데 실제 연변 사람들의 말은 알아듣기 힘들다. 연변에서도 연길과 길림성 말투가 다르고 북한 쪽 어투에 가까운 말, 경상도말에 가까운 말 등이 굉장히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면가에게 맞는 말을 골라 트레이닝 하던 중 관객들이 알아듣기 힘들 수도 있다는 생각에 좀 더 쉽게 정제시켰다. 말을 이해하는 데만 이삼초 가량의 시간이 필요하다면 그림을 놓칠 수 있고 자막 역시 집중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캐릭터에 몰입하다 보니 성격마저 바뀌었다던데.
하정우 : 어느 날 거울을 보는데 너무나 자연스럽게 내가 중국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 머리도 짧고 1년 넘게 수염을 기르고 있는 상태인 데다, 처음 구남이란 인물을 준비하며 감독님과 정말 연변에 사는 사람처럼 피부 톤이 거칠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기 때문에 1년 동안 얼굴에 로션 한번 안 바르고 지냈다. 사람이 어떤 날은 잘 차려입고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욕구도 있지만 어느 날 거울을 보니 나는 이미 어떤 옷과도 어울리지 않는 룩(look)을 갖게 됐다는 걸 깨달았고, 점차 말수가 줄어들며 사회성이 없어지는 경험을 했다. 때도 겪은 거지만 나는 가만히 있는데 주위 사람들에게 굉장히 화난 것 같은 인상을 심어주면서 애써 말하고 웃음 짓는 게 부자연스럽게 느껴져 고립되는 느낌도 힘들었다. 감독님께 “제가 연예인인데 그런 기운이 하나도 없어진 것 같다”는 말씀을 드린 적도 있다. (웃음)
김윤석 : 하정우 씨가 촬영하는 두 달 동안 집에서 내가 연기할 신을 생각하며 모자를 쓰고 아파트 단지를 거닐고 있으면 경비원들이 와서 여기 사는 사람 맞냐고 물어본 적이 많다. (웃음) 나 역시 거울을 봐도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갈등할 필요가 없었고 씻기 전과 후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을 정도다. 아이들에게도 왜 아빠가 수염을 기르고 저러고 다녀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해야 했고, 지금도 이렇게 밝은 데서 옷을 차려입고 앉아 있는 것이 어색하다.

에서와 쫓고 쫓기는 입장이 역전된 것 같다.
김윤석 : 하정우 씨가 군대를 다시 가는 꿈이나 첫 리딩부터 다시 하는 악몽을 꿨다고 하는데 내가 악몽을 꾼다면 배역이 바뀌는 꿈일 거다. 그렇게 낄낄거리며 웃었던 지문을 나에게 하라고 한다면 물리적으로 일단 체력과 나이에서 불가능하고. (웃음) 면가는 구남을 쫓기는 한다, 그러나 면가가 궁극적으로 쫓는 것은 사람이 아니고 돈이다.

개봉 후 어쩔 수 없이 와 비교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
하정우 : 는 새로운 작품, 새로운 인물이지만 에서 한 번 함께 작업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이야기와 인물이 커지고 깊어지고 범위가 넓어진 것 같다. 덧붙이자면, 내 촬영 회차가 좀 더 많았을 뿐 그 시간 동안 선배님은 다음 촬영을 기다리며 수많은 인내의 시간을 겪으시는 것만으로 어마어마한 정신적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으셨을 거다. 우리 영화를 찍으면서 하는 일들을 밖에서 얘기하기도 쉽지 않았고 주로 오지에서 촬영했기 때문에 누구와 만날 기회도 없었는데 현장에 선배님이 찾아와주시고 옆에서 함께 해 주셔서 끝까지 견딜 수 있었던 것 같다.
김윤석 : 라는 작품은 관객들이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바짝바짝 들이대고 직면시켜 주인공의 감정과 맥박까지 함께 느낄 정도였다면 는 어두운 한쪽 구석에 내 모습을 숨기고 주인공들을 훔쳐 보는 기분이 들게 하는 작품일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는 긴장감은 물론 내가 숨어서 누군가를 지켜본다는 여유 덕분에 다각도의 시선이 가능할 것 같고 굉장히 풍성한 영화가 될 거다.

글. 최지은 f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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