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존개오
1. 미친 존재감 개화동 오렌지족
cf) 서래마을 채식 꼬마요정

지난 11월 6일 방영된 MBC ‘미드나잇 서바이벌’ 편에서 정형돈은 “내가 바로 미존 개오!”라는 말로 자신의 정체성을 정의했다. 이어 그는 ‘미친 존재감 개화동 오렌지족의 준말’이라고 부연했는데, 그 계면쩍은 태도가 ‘존재감’이나 ‘오렌지족’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실제로 정형돈은 오랫동안 내에서 좀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아예 자신의 캐릭터로 체화하여 주변인으로서의 서사를 구축해 왔다. 그리고 7월 17일 방송된 ‘시크릿 바캉스’편은 정형돈의 지나치리만큼 소탈하고 평범한 특징을 ‘미친 존재감’으로 인지한 분수령이었다. 존재감 없는 존재의 존재감에 대한 이러한 발견은 데카르트의 존재론을 환기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 한다”는 명제에 의해 ‘존재감 없는 존재’로 존재의 형태를 구현하는 정형돈은 누구보다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형용모순의 한계를 돌파하고 부정으로 긍정을 이끌어낸 그의 존재가 ‘미친’이라는 부정적이나 긍정을 강조하는 수식어를 부여 받는 것은 그러므로 당연한 결과다.

개념을 유린하여 편견에 도전하는 것은 ‘개화동 오렌지족’이라는 명칭에서도 여전히 감지된다. 1990년대 강남 일대에 상주하며 유흥과 소비문화에 탐닉한 젊은이들을 일컫는 말이었던 ‘오렌지족’은 수년째 같은 가방, 같은 신발, 같은 수트, 심지어 같은 속옷을 사용하는 정형돈에게는 걸맞지 않는 표현이다. 심지어 ‘개화동’이라는 지극히 현실 반영적인 장소는 강남의 범위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그러나 ‘개화동 오렌지족’으로 두 개념이 만나는 순간, 개화동은 강남의 지리적 특수성을 상기시키며, 오렌지족은 스스로 소외시켰던 ‘부모세대의 물질적 혜택 없이도 스스로 당당할 수 있는 또 다른 젊은 세대’를 부각시키는 역기능이 발생한다. 그리고 마침내 개화동과 오렌지족의 조합을 받아들이는 순간, 두개의 개념은 내부의 균열을 통해 스스로 해체하게 된다. 이는 푸코와 데리다의 사유 방식과 흡사하며 결국 ‘미존개오’의 정형돈은 자신의 존재와 그 무존재함을 통해 경계 허물기를 실천해 보이는 포스트 모던의 요체인 것이다.
존재의 단계
* 존재 : 나는 존재한다. 고로 사진에 찍힌다. ex) 남파라치
* 존재감 : 나는 존재한다. 고로 영상에 찍힌다. ex) 뉴스돌
* 미안한 존재감 : 나는 존재한다. 그래서 미안하다. ex) 배드보이즈
* 이런 존재감 : 나는 존재한다. 고로 이 정도다. ex) 잔든건
* 미친 존재감 : 나는 존재한다. 고로 닮았다. ex) 미존발봉. 슬픈 발라드계의 이봉원

글. 윤희성 nine@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