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의 ‘무릎팍 도사’ 식으로 이야기해보자. 지금 황정민의 고민은? “연기를 더 잘하고 싶어요.” 이른바 ‘발 연기’라 불리는, 대사 처리마저 부정확한 연기를 하는 일부 연기자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고민일지도 모르겠다.
에서 바로 다음 컷에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를 만큼 위험한 공기가 있던 조폭 보스로 깊은 인상을 주던 남자, 에서 문자 그대로 ‘혼신의 연기’로 수많은 관객들의 찬사를 받았던 남자. 그래서 그 유명한 “숟가락만 얹었을 뿐이다”라는 명언을 수상소감으로 남긴 남자. 하지만 그는 바로 지금 연기에 대해 고민한다. “테크닉적인 부분에 대한 고민 같은 건 아니에요. 나이가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면 그때마다 다른 고민이 있잖아요? 그거하고 비슷해요. 젊은 시절에는 어떻게 하면 배역을 잘 소화할까와 같은 차원의 고민이 있다면, 지금은 다른 고민을 하게 되는 거죠.” 그건 배역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연기하는 걸 넘어, 작품 안에 황정민이라는 배우가 온전히 들어가는 것과 같다.
“드라마 를 찍을 때 드라마 스케줄이 빡빡해서 힘들지 않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그런데 오히려 저는 드라마 촬영이 편했어요. 촬영 스케줄이 계속 이어지니까 현장에서 잠을 자도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의 옷을 입고 잘 수 있었거든요. 그만큼 배역에 몰입한 채로 연기할 수 있었죠.” 마치 선문답처럼, 그는 “연기를 하지 않는 연기”를 하길 바라고, 그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황정민에게 단지 연기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20대의 고민과 30대의 고민이 다르듯, 그는 연기를 통해 지금의 나이에 필요한 새로운 성장을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에게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연기’에 이르기까지의 인생을 한 번 돌아봐 주길 부탁했다. 황정민의 ‘내 청춘을 떠올리게 만드는 음악’.
1. Jackson Browne의 ‘Load Out/Stay’
음악을 골라달라는 말에 황정민은 대번에 독일 뮤지션 잭슨 브라운의 ‘Load Out/Stay’를 떠올렸다. 피아노 앞의 음유시인이라는 말을 듣곤 하는 잭슨 브라운의 음악은 사람에게 깊은 사색의 순간을 준다. 황정민은 이 노래를 독일에서 들었다. “뮤지컬 으로 독일에 초청받았어요. 그런데 공연이 끝나고 무대에서 맥주 파티를 한 거예요. 그런 게 참 드문 경운데, 주최 측에서 공연을 연출하신 김민기 선생님에 대한 존중으로 배려를 해준 거죠. 그때 스태프 중 한 명이 잭슨 브라운의 CD가 있었는데, 그걸 튼 거예요. 그래서 다 같이 어깨동무하고 노래를 불렀죠. 정말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에요.” 2. 김민기의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곡 추천하는 거 안 좋아하실 텐데. 허허.” 이야기가 나온 김에 김민기의 곡을 추천해 달라는 말에 황정민은 잠시 머뭇거렸다. “20대 때 나의 선생님”이자 ‘아침이슬’로 한 시대의 정신을 지배한 위대한 뮤지션에게 조금이라도 누를 끼치지 않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어렵게 고른 김민기의 노래는 바로 ‘봉우리’. “제 인생에서 때의 경험이 정말 컸어요. 그래도 내가 지금까지 그나마 잘 버틸 수 있는 건 그때의 경험 때문일 거예요. 그리고 선생님의 음악은 여전히 그런 힘을 주고. 그중에서 ‘봉우리’가 특히 그렇네요.”
3. Pierre Van Dormael의
황정민이 꼽은 세 번째 앨범은 영화 의 OST다. “다운 증후군 환자와 세일즈 기법을 가르치는 사람 사이의 우정을 다룬 작품이에요”라며 운을 뗀 그는 이 영화가 자신의 인생에 가지는 가치를 차분하게 말해 나갔다. “청춘이 지나면 일, 가족 등에 대해서 더 많은 걸 생각하는 때가 오잖아요. 의 주인공도 그런 상황에 있어요. 타인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하고, 순수함은 멀어져가고. 그런 것들을 보여주는데 가슴에 참 와 닿았죠. 우리 모두 청춘을 지나면 그런 것들에 대해 고민하게 되잖아요? 영화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죠. 그 영화에서 메인 테마의 선율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요.”
4. 김광석의
1990년대에 청춘을 보낸 사람들에게 김광석을 거론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김광석이 우리 곁을 떠난 지 오래지만, 황정민의 청춘 속에는 여전히 그에 대한 기억이 한 가운데 있었다. “김광석 씨의 공연은 다 좋아하죠. 제가 그분 공연의 아르바이트를 한 적도 있었거든요. 그때 학생이었는데, 아직도 그때 풍경이 기억나요. 대학로에서 공연을 하는데 관객들의 줄이 공연장 바깥까지 쭉 늘어서 있었어요. 그래서 관객이 너무 들어오니까 좌석이 다차고서는 무대 통로에 앉고, 그러다 무대 바로 앞까지 사람들이 앉았어요. 그래서 김광석 씨가 노래 부르는 자리 말고는 사람들이 다 차서 김광석 씨를 둘러싸고 공연을 보고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아직도 나요.”
5. 바비 킴의
“‘고래의 꿈’은 승범이가 잘 불러요. 하하” 황정민은 마지막 앨범으로 바비 킴의 , 그중에서도 ‘고래의 꿈 (feat. 김영근)’을 꼽았다. 바비 킴은 레게로 시작해 힙합, 다시 R&B와 발라드 등을 두루 소화하며 그만의 감수성을 만들어낸 뮤지션. 한국 성인 남자의 감수성을 가장 잘 표현하는 뮤지션이기도 하다. “‘고래의 꿈’은 가사부터가 그렇잖아요. 고래가 무언가를 찾아 떠나는데, 그에 대한 희망도 있지만 꿈을 찾는 과정에서 상처도 생겨요. 그게 우리의 인생 같아요. 하지만 그 모든 과정에서 인생에 대한 해답이 있겠죠.”
“같은 형사라도 전혀 다른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니까요. 당연히 다른 모습이겠죠.” 황정민은 영화 에서 형사를 연기한다. , 에 이어 세 번째 형사 연기다. 하지만 그는 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 있어 전작들의 연기 경험은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자포자기에 가까운 인생을 사는 의 부패한 형사와 에서 열심히 노력했지만 좌절을 맛본 뒤, 한 사건의 범인을 조작하는 형사는 직업만 같을 뿐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형사를 어떻게 연기한다는 답은 없어요. 그 작품의 흐름을 보고 거기서 살아가는 사람을 보여줘야겠죠.” 그래서 그는 여전히 청춘이다. 언제나 연기 앞에서 고민하고 부딪히는 청춘.
글. 강명석 two@
사진. 이진혁 el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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