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조는 빠르지 않다. 잘 마름질 된 답변을 잽싸게 내놓는 대신 자기 앞에 떨어진 질문을 주워 담은 뒤에 천천히 입을 뗀다. 그래서 “시원스럽게 말을 잘 하지 못한다”고 아쉬워하지만 그 느릿느릿한 속도는 요조라는 사람 자체에 집중할 시간을 벌어준다. 그녀가 “술을 너무 좋아한다”고 밝히고, 누군가의 음담패설에도 깔깔 거린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 스스로 생각해도 허세스러운 사진을 홈페이지에 올릴 때의 낯간지러움에 대해 폭소를 터뜨리는 순간.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모를 ‘홍대 여신’이라는 관성적인 수식어 대신 그저 요조라는 이름 자체가 또렷해졌다. 보송보송한 목소리로 달콤하게 노래하는 요조만을 알고 있다면 그녀와 나눈 대화가 낯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영화 의 혜영이 장수한 고양이처럼 심드렁하다가도 작은 손길 하나에 두근거리듯, 요조가 주는 반전의 재미를 느껴보는 건 어떨까?

데뷔작 에 이어 두 번째 영화 까지 모두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 받았다. 아시아 최대 영화제에 두 번이나 참석했는데 이제는 배우로서 좀 익숙해졌나. (웃음)
요조: 두 번째라고 해서 익숙해지진 않더라. 역시나 이번에도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음악이라면 늘 해오던 거니까 정상적인 범위의 긴장, 떨림이었을 텐데 영화는 긴장의 차원을 넘어선다. 그런 와중에 부산을 가는 거니까 중압감이라고 해야 되나? 그게 너무 심각해서 작년 같은 경우엔 영화 보다가 병원에 가기도 했다. 그런데 기사에는 ‘요조, 자기 영화 보다가 지루해서 나가’ ‘요조, 자기 영화 자기가 못 보고 나가’ 이렇게 나오고. (웃음) 올해도 작년이랑 똑같은 증상이 또 오더라. 그래서 스케줄 끝나고 병원에 가려고 했는데 모든 일이 종료되고 나니까 안 아프더라. (웃음) 아직도 무대 인사나 기자회견 같은 걸 할 땐 너무 떨려서 맥주 한 잔 하고 올라가기도 한다. 가만히 서 있는 것도 너무 힘들고, 사진 찍는 건 더 힘들고. 배우들은 정말 대단한 거 같다. 내 마음 속에 굴욕샷 넣는 곳이 안 그래도 넘치는데 자꾸 쌓여만 간다. “이제 요조는 홍대 여신이 아니고 홍대 정수리녀”

네 커플의 이야기가 옴니버스 형태로 그려지는 영화에서 혜영(요조), 주영(윤희석)의 에피소드는 이 계절에 딱 맞더라. 근사하게 단풍이 진 남산 길을 걷는 두 남녀의 대화가 한 에피소드를 책임지는 만큼 두 사람의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 했겠다.
요조: 사실 정성일 감독님 영화 때는 특별히 상대배우라 말할 것도 없이 그냥 깍두기였는데 (웃음) 이번에는 윤희석이란 든든한 상대가 있으니까 어떤 의미에선 긴장이나 부담이 덜 되기도 했다. 영화에서 (윤)희석 오빠와 같이 노래도 했는데, 뮤지컬을 해서 나랑 발성이 달랐는데도 내 목소리에 다 맞춰주고 연기할 때도 배려를 많이 해줬다. 어떻게 보면 첫 남자 상대배우인데 정말 과분할 정도로 백점짜리 상대배우였다.

혜영은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실제 요조로 생각할 만큼 비슷한 구석이 많다. 뮤지션이기도 하고 극 속에서 공연하는 모습이 등장하기도 하고.
요조: 실제로 혜영과 날 많이 동일시했던 거 같다. 나이도 비슷하고 하는 일도 비슷하고 감정상태도 비슷해서 감정이입이 될 수밖에 없더라. 혜영이는 매사에 좀 심드렁하고 무심한 아이라서 김종관 감독님도 “요조 씨, 평소 말투대로 해요. 딱 맞아” 이러시고. 다만 영화 속에서 희석 오빠가 철부지처럼 깐죽거리는데 평소 성격 같았으면 욱 했을걸 영화에선 계속 심드렁해야 돼서 그걸 참는 게 좀 힘들었다. (웃음)

그렇게 감독들은 배우에게서 끄집어 낸 모습을 캐릭터에 역으로 집어넣기도 하는데, 말투 말고 또 무엇이 있었나.
요조: 음… 정수리? (웃음) 머리를 긁적이는 버릇이 있어서 항상 뒤통수가 흐트러져 있다. 슛 들어가기 전에는 코디가 정리해줘서 가지런하지만 촬영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손이 올라가서 또 부시시해진다. 근데 감독님이 그걸 마음에 들어 하면서 “이제 요조 씨는 홍대 여신이 아니고 홍대 정수리녀”라고 하시더라. (웃음) 주영과 혜영이 나누는 대화는 남자와 여자가 연애에 대해 얼마나 다르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관객에게도 생각할 거리들을 끊임없이 던진다.
요조: 나 역시 혜영이가 했던 말들 대부분에 공감하는 편이다. 근데 사실은 남자 쪽의 이야기에 더 공감이 가기도 한다. 여자들은 다 편한 사이가 되는 걸 좋아하나? 난 그렇지 않은 편이다. 영화에서 주영이는 “하룻밤 자고 나면 6년을 만난 것처럼 느껴진다”고 할 정도로 새로운 걸 찾고 싶어 하는 스타일인데 나도 너무 편한 건 싫다. 물론 상대방까지 그렇게 생각하면 싫지만. (웃음) 그래서 연애할 때는 싸울 때도 그런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릴 때가 있다. “나는 해도 되는데, 넌 안돼” “왜 안돼?” “몰라, 그냥 안돼” 이런 거. (웃음)

“영화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인격 같다”
이번 영화에서는 음악에도 참여했는데 요조의 음악을 하는 것과 영화음악을 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었을 것 같다.
요조: 음반은 회사에서는 대중을 고려해서 대중이 좋아할 만한 음악을 만들길 원하지만 내 음악이니까 어쨌든 내 마음대로 한다. 근데 영화음악은 철저히 영화에 맞춰야 되고, 감독님과 음악감독님 마음에도 들어야 되니까 내 마음대로만 할 수는 없다. 계속 영화를 생각해야 하고 맞춰야 한다. 물론 그게 힘들다기보다는 혼자 음악하고 작업하는 것보다 외롭지 않아서 좋았다. 가사 쓰는 것부터 작곡까지 다 같이 밴드처럼 했다. 가사에 이런 얘기 써보면 어떨까? 모여서 얘기하고, 멜로디도 음악감독님이 TV에서 봤는데 세계적인 명곡들처럼 히트를 칠 수 있는 코드진행이 있다면서 알려주기도 하셨다. (웃음)

음악이나 연기 외에도 홈페이지나 트위터 등을 통해서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나누는 것도 요조를 알 수 있는 하나의 통로인데, 그렇게 대중들에게 노출되는 것이 부담스러울 때는 없나.
요조: 물론 거부감 같은 게 아예 없진 않다. 사실은 내가 나를 보면 가끔 허세스러울 때가 있다. 이를테면 나답지 못하고 가식적으로 보일 때. 일기를 쓸 때도 가식적인 것 같단 생각이 들면 쓰기 싫어지고, 트위터나 홈페이지도 어느 순간 가식적으로 올린 것 같단 생각이 들면 피하게 되고. 그러다가 또 슬금슬금 다시 하게 된다. 사람들이 반응을 해주고 얘기를 해주는 게 좋기도 하면서 나름대로 내가, 내 삶이 정리가 된다. 아무래도 좀 가식이 들어가겠지만 사진과 글과 메모 같은 걸로 대충이나마 정리하는 재미도 있고. 가끔은 진짜 가식적으로 나를 만들어가는 것도 재미있다. 절대 이렇게 생긴 게 아닌데 잘 나온 사진을 ‘와, 쌩얼인데 너무 예쁘세요’ 같은 얘기 듣고 싶어서 올리기도 하고. (웃음) 내 마음에 드니까 올린 건데 올리면서 ‘화장 안 하니까 못 봐주겠군’ 이러고. (웃음) 그런 걸 보면 내가 참 가식적이라고 느낀다. 근데 또 그런 게 재밌기도 하고. 내가 나를 속이는 거다. (웃음)

좋은 역할이 있다면 계속 연기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 앞으로 영화를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나.
요조: 아직 두 편밖에 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영화는 진짜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거 같다.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영화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인격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지금까지 한 두 편의 영화가 다 사람으로 느껴진다. 그 사람과 내가 인연으로 만난 거 같고, 그래서 다음 영화도 찍을 수도 있고 못 찍을 수도 있다. 나도 모르는 어떤 인격이 나와 인연이 닿아 가지고 만나면 작품을 할 수도 있지만 그런 인연이 안 나타나면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거고. 마치 남자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글. 이지혜 seven@
사진. 채기원 ten@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