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주, 이혼남 전문 배우?’ 요즘 손현주와 관련된 뉴스를 보면 기사 제목이 대부분 이런 식이다. KBS 과 SBS 에서 이혼남을 연기해왔고, 이번 KBS ‘텍사스 안타’에서도 무능력한 이혼남 재훈으로 캐스팅됐으니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정확한 표현이라고 할 수는 없다. 가족들에게 받는 것 없이 퍼주기만 하는 기러기 아빠의 외로움과(), 이혼 전 부부들이 겪는 흔한 갈등이 아니라 이혼 후 전처와의 재결합과 다른 여자와의 재혼 사이에서 고민하는 남자()를 단순히 ‘이혼남’으로 포장해버리는 건, 각 캐릭터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섬세하게 표현하려 애쓴 배우의 노력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것이다. 손현주 역시 ‘텍사스 안타’의 재훈을 두고 “같은 이혼남이라도 의 성재와는 전혀 다르다”며 “오히려 현실 속 가장의 뒷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같은 이혼남 캐릭터라도 매 작품마다 다른 인물상을 제시하는 게 데뷔 20년차 배우의 연륜이라면, 45년이라는 세월의 연륜은 15분 남짓한 인터뷰 동안 드라마 이야기를 넘어 자신의 인생철학까지 술술 풀어내는 그 순간에 묻어났다. 지난 19일, KBS 수원드라마센터 촬영지에서 그를 만나 스포츠와 연기 그리고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목소리도 잠겼고 꽤 피곤해 보인다.
손현주: 며칠 째 단막극 촬영을 하니 피곤할 수밖에. (웃음) 그래도 내일이면 촬영이 끝난다.
“단막극에서 잘 안 쓰는 카메라로 촬영해서 그림이 예쁘다”
종영을 앞두고 있는 SBS 와 ‘텍사스 안타’ 촬영이 맞물렸다고 들었다. 작품 하나 끝냈으니 푹 쉴 법도 한데.
손현주: 드라마 끝나고 갑자기 쉬면 아프다. 일을 좀 하면서 쉬어야 덜 아픈 것 같다. 거기다 워낙 단막극이나 특집극을 좋아해서 촬영 끝나기 일주일 전에 이 쪽 팀에 합류했다. 연출을 맡은 박현석 감독 작품을 봤는데, 사람이 영리하고 감각이 좋은 것 같더라. 이번 대본도 좋고. 의 성재에 이어 이번에 맡은 역할도 이혼남이다.
손현주: 캐릭터는 전혀 다르다. 재훈은 할 말 제대로 못하고,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도 감추는 인물이다. 대본을 보는데, 재훈의 모습에서 아버지들의 축 처진 어깨와 뒷모습이 많이 떠올랐다. 우리나라 가장들이 대부분 그렇지 않나. 어깨 못 펴고 살고, 가족이 있어도 가족이라고 부르지 못하고.
그러고 보니 에서는 늘 멋있는 수트만 입더니, 지금은 할인마트 조끼에 청바지를 입고 있네. 성재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웃음)
손현주: 허허허, 그럴 거다. 비록 70분짜리 짧은 드라마지만, 재훈처럼 축 처진 어깨를 가진 이 시대 가장의 모습 혹은 소시민의 일상을 잘 그려보고 싶다. 사실 내용만 보면 그렇게 부유한 드라마가 아닌데, 보통 단막극에서 잘 안 쓰는 카메라로 촬영한 덕분에 ‘어? 요거 참 그림이 예쁘네’라는 느낌이 들거다.
작품 제목이 ‘텍사스 안타’이다. 뜻하지 않은 행운이라는 의미인데, 재훈과 승현(유건)에게 해당되는 말인가.
손현주: 가족들한테 소외됐던 가장 재훈 그리고 20대 승현이 어떤 계기로 인해 재기 아닌 재기를 하게 되는 거지. 둘의 모습을 보면 꼭 덤앤더머 같다. 자기들보다 훨씬 덩치 좋은 야구선수를 납치하는 게 약간 덜 떨어져 보이기도 하고. 이번 작품에서는 인생과 야구를 비교하는데, 본인이 생각하기에 인생은 어떤 스포츠와 가장 닮은 것 같나.
손현주: 등산. 산을 타는 건 등정주의가 아니라 등로주의다. 누가 먼저 빨리 정상에 오르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수많은 길이 있는데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다. 연기나 인생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갈 것인지가 중요하다.
“요즘 시청자들은 거짓을 금방 알아차린다”
재훈과 승현이 꿈꾸는 것처럼, 인생대박 혹은 인생역전이라는 게 현실에서도 가능할까.
손현주: 승현이가 마지막까지 그걸 노리는데 개인적으로 인생역전, 그거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어느 사회에서나 인생대박, 로또, 거기엔 다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다른 얘기일 수도 있는데, 남의 호주머니에서 단돈 천원 빼먹기도 어려운 세상이다. 부도덕하게 부나 명예를 거머쥐면 반드시 그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 면에서 여러 가지 교훈을 주는 작품이다. 섣불리 행동하기 전에 많은 생각을 하자, 인생은 절대 로또가 아니다, 이런 얘기를 해주고 싶다.
연기도 그런 면에서 비슷할 것 같다.
손현주: 연기는 더더욱 그렇지. 연기는 한 번에 되는 게 아니다. 그러니 결코 서두를 것도 없고, 늦었다고 생각할 것도 없다. 물론 시청률이 잘 나오는 드라마가 있지만 그건 극히 일부분이고, 작품을 잘 만나서 한 번에 확 올라가는 사람들은 또 내려오는 법을 잘 모르기 마련이다. 선배들도 그렇고 나 역시 연기가 좋아서 연기를 하는 것뿐이지, 이걸 해서 뭐 대박이라든가 큰 부를 누릴 생각은 없다. 크게 누리면 누리는 만큼 연기에 대한 느낌이나 정서가 잘 안 나온다. 그럼에도 드라마 시청률이 잘 나오면, 소위 ‘떴다’는 느낌을 받게 되지 않나.
손현주: 시청자들이 우리 드라마를 많이 봐주시는구나, 그런 느낌은 있지. 그런데 그것도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의 과정 혹은 흐름일 뿐이다. 드라마를 수십 년 하다보면 잘 되는 드라마도 있고 처지는 드라마도 있다. 당연한 거다. 그저 시청률이 잘 나오면 거기서 얻는 힘을 좀 더 먹고 사는 것뿐이다. 그리고 시청자들이 있기 때문에 내가 있는 거지, 내가 있기 때문에 그 분들이 있는 건 아니다. 배우들이 이런 착각을 하게 되면 자기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 연기는 자기가 잘나서, 뭐 이런 것들이 아니다.
지금껏 온갖 아버지, 사위 역할을 해왔는데, 그러다보면 연기와 일상의 경계가 조금씩 흐려질 때도 있을 것 같다.
손현주: 아예 별개로 생각한다. 독립. 드라마는 드라마고, 가족은 가족이고. 두 영역에 진실과 진정성을 거의 똑같이 쏟고 있다. 가족이라는 건 어떻게 보면 작은 국가인데 그 국가를 잘 유지하려면 대단한 힘이 필요한 거고, 드라마 역시 그 안에서 진정성 있는 향을 내는 게 중요한 거니까. 요즘 시청자들은 거짓을 금방 알아차린다.
예능 프로그램 출연에 대해 “쑥스럽다”는 이유로 고사해 왔는데,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나.
손현주: 소질이 없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거면 하겠지만, 소질도 없는데 남의 밥그릇을 건드리려고 하면 안 된다. 내 밥그릇이 아닌 거면 못하는 거지.
글. 이가온 thirteen@
사진. 채기원 ten@
목소리도 잠겼고 꽤 피곤해 보인다.
손현주: 며칠 째 단막극 촬영을 하니 피곤할 수밖에. (웃음) 그래도 내일이면 촬영이 끝난다.
“단막극에서 잘 안 쓰는 카메라로 촬영해서 그림이 예쁘다”
종영을 앞두고 있는 SBS 와 ‘텍사스 안타’ 촬영이 맞물렸다고 들었다. 작품 하나 끝냈으니 푹 쉴 법도 한데.
손현주: 드라마 끝나고 갑자기 쉬면 아프다. 일을 좀 하면서 쉬어야 덜 아픈 것 같다. 거기다 워낙 단막극이나 특집극을 좋아해서 촬영 끝나기 일주일 전에 이 쪽 팀에 합류했다. 연출을 맡은 박현석 감독 작품을 봤는데, 사람이 영리하고 감각이 좋은 것 같더라. 이번 대본도 좋고. 의 성재에 이어 이번에 맡은 역할도 이혼남이다.
손현주: 캐릭터는 전혀 다르다. 재훈은 할 말 제대로 못하고,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도 감추는 인물이다. 대본을 보는데, 재훈의 모습에서 아버지들의 축 처진 어깨와 뒷모습이 많이 떠올랐다. 우리나라 가장들이 대부분 그렇지 않나. 어깨 못 펴고 살고, 가족이 있어도 가족이라고 부르지 못하고.
그러고 보니 에서는 늘 멋있는 수트만 입더니, 지금은 할인마트 조끼에 청바지를 입고 있네. 성재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웃음)
손현주: 허허허, 그럴 거다. 비록 70분짜리 짧은 드라마지만, 재훈처럼 축 처진 어깨를 가진 이 시대 가장의 모습 혹은 소시민의 일상을 잘 그려보고 싶다. 사실 내용만 보면 그렇게 부유한 드라마가 아닌데, 보통 단막극에서 잘 안 쓰는 카메라로 촬영한 덕분에 ‘어? 요거 참 그림이 예쁘네’라는 느낌이 들거다.
작품 제목이 ‘텍사스 안타’이다. 뜻하지 않은 행운이라는 의미인데, 재훈과 승현(유건)에게 해당되는 말인가.
손현주: 가족들한테 소외됐던 가장 재훈 그리고 20대 승현이 어떤 계기로 인해 재기 아닌 재기를 하게 되는 거지. 둘의 모습을 보면 꼭 덤앤더머 같다. 자기들보다 훨씬 덩치 좋은 야구선수를 납치하는 게 약간 덜 떨어져 보이기도 하고. 이번 작품에서는 인생과 야구를 비교하는데, 본인이 생각하기에 인생은 어떤 스포츠와 가장 닮은 것 같나.
손현주: 등산. 산을 타는 건 등정주의가 아니라 등로주의다. 누가 먼저 빨리 정상에 오르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수많은 길이 있는데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다. 연기나 인생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갈 것인지가 중요하다.
“요즘 시청자들은 거짓을 금방 알아차린다”
재훈과 승현이 꿈꾸는 것처럼, 인생대박 혹은 인생역전이라는 게 현실에서도 가능할까.
손현주: 승현이가 마지막까지 그걸 노리는데 개인적으로 인생역전, 그거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어느 사회에서나 인생대박, 로또, 거기엔 다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다른 얘기일 수도 있는데, 남의 호주머니에서 단돈 천원 빼먹기도 어려운 세상이다. 부도덕하게 부나 명예를 거머쥐면 반드시 그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 면에서 여러 가지 교훈을 주는 작품이다. 섣불리 행동하기 전에 많은 생각을 하자, 인생은 절대 로또가 아니다, 이런 얘기를 해주고 싶다.
연기도 그런 면에서 비슷할 것 같다.
손현주: 연기는 더더욱 그렇지. 연기는 한 번에 되는 게 아니다. 그러니 결코 서두를 것도 없고, 늦었다고 생각할 것도 없다. 물론 시청률이 잘 나오는 드라마가 있지만 그건 극히 일부분이고, 작품을 잘 만나서 한 번에 확 올라가는 사람들은 또 내려오는 법을 잘 모르기 마련이다. 선배들도 그렇고 나 역시 연기가 좋아서 연기를 하는 것뿐이지, 이걸 해서 뭐 대박이라든가 큰 부를 누릴 생각은 없다. 크게 누리면 누리는 만큼 연기에 대한 느낌이나 정서가 잘 안 나온다. 그럼에도 드라마 시청률이 잘 나오면, 소위 ‘떴다’는 느낌을 받게 되지 않나.
손현주: 시청자들이 우리 드라마를 많이 봐주시는구나, 그런 느낌은 있지. 그런데 그것도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의 과정 혹은 흐름일 뿐이다. 드라마를 수십 년 하다보면 잘 되는 드라마도 있고 처지는 드라마도 있다. 당연한 거다. 그저 시청률이 잘 나오면 거기서 얻는 힘을 좀 더 먹고 사는 것뿐이다. 그리고 시청자들이 있기 때문에 내가 있는 거지, 내가 있기 때문에 그 분들이 있는 건 아니다. 배우들이 이런 착각을 하게 되면 자기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 연기는 자기가 잘나서, 뭐 이런 것들이 아니다.
지금껏 온갖 아버지, 사위 역할을 해왔는데, 그러다보면 연기와 일상의 경계가 조금씩 흐려질 때도 있을 것 같다.
손현주: 아예 별개로 생각한다. 독립. 드라마는 드라마고, 가족은 가족이고. 두 영역에 진실과 진정성을 거의 똑같이 쏟고 있다. 가족이라는 건 어떻게 보면 작은 국가인데 그 국가를 잘 유지하려면 대단한 힘이 필요한 거고, 드라마 역시 그 안에서 진정성 있는 향을 내는 게 중요한 거니까. 요즘 시청자들은 거짓을 금방 알아차린다.
예능 프로그램 출연에 대해 “쑥스럽다”는 이유로 고사해 왔는데,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나.
손현주: 소질이 없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거면 하겠지만, 소질도 없는데 남의 밥그릇을 건드리려고 하면 안 된다. 내 밥그릇이 아닌 거면 못하는 거지.
글. 이가온 thirteen@
사진. 채기원 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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