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뻐?” 열이면 열, 반응은 똑같았다. 이민정을 인터뷰하고 왔다는 이야기에 지인들은 모두 실제로 본 그녀의 얼굴을 궁금해 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 역시 언제나 동일했다. “재밌어.” 물론 이민정은 예쁜 여배우다. 하지만 인터뷰이의 얼굴이 편안하고 즐거운 인터뷰를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영화 홍보를 위해 수많은 매체와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해서 나눠야 하는 강행군 속에서도 그녀는 종종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그 분위기는 그녀의 예쁜 얼굴이 담기지 않은 인터뷰 녹음 파일에도 고스란히 새겨져 있었다. 그 녹음 파일을 글로 옮긴 다음의 인터뷰에서도 그녀의 꾸미지 않은 유쾌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길 바란다.

은 곳곳에 유머 코드를 뿌려놓은 작품이다. 스스로도 시나리오를 재밌게 봤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던데 대본 어디 즈음에서 빵 터졌나.
이민정 : 극 중 상용(최다니엘)이 상상 속에서 목사님 설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장면? 1시간 내로 설교 끝내라면서 “설교, 찬송, 안내까지 포함해서요!”라고 딜을 걸고, 여기에 목사님이 “당신이 이겼소”라 말하는 장면을 대본으로 보며 정말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은 로맨스와 코미디가 적절히 배합”

하지만 대본과 완성된 영화는 또 다른 느낌이었을 것 같다.
이민정 : 시나리오의 사사로운 것까지 다 표현한 것도 있지만 미처 그러지 못한 것들도 있으니까. 현장에서 바뀐 것들도 있고. (김)지영 언니가 와인 먹는 장면도 ‘살짝 입맛을 다시다가’라는 지문과는 전혀 다르게 스스로 살린 부분들이 있다. 그런 면에서 대본에서 봐서 좋은 장면과 영화를 보고 좋은 장면이 좀 다를 것도 같은데.
이민정 : 아무래도 우리 영화니까 애정이 가고 재밌게 느껴지지만 내가 출연하지 않는 부분들이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서 재밌었던 것 같다. 가령 초반부 송새벽 씨가 나오는 에피소드의 경우 촬영 현장을 직접 볼 수 없어서 영화로 볼 때 더 좋았다. 초반에 잘 깔아준 것 같다. 그 에피소드가 웃음을 열리게 해주지 않나. 영화에 웃음 코드가 있다는 걸 알고 들어가는 것과 미처 모르는 상황에서 중간 중간 갑자기 그냥 웃기는 거는 다르다고 본다. 가령 나는 박찬욱 감독의 를 보며 정말 영화관에서 ‘으하하하’ 웃으며 봤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 영화를 블랙코미디라 생각하지 않으니까 웃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 걸 놓치지 않게끔 도입부를 잘 처리한 거 같다.

그런 구성적인 부분이 이 영화에선 중요한 것 같다. 앞뒤 짜임새가 매끈하다는 느낌인데 ‘재미있다’는 개념은 그런 요소까지 포함하는 것 아닌가.
이민정 : 그 외에도 옛사랑의 추억, 혹은 헤어짐의 기억 같은 보편적 이야기들을 환기해줄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극 중 희중(이민정)을 다치게 하고 시니컬하게 만든 사연이 2, 30대 여성들에게 공감을 줄 것 같다. 그런 기억 하나 없는 사람은 없을 것 같은데, 그렇지? 그런 감성을 건드렸다는 것, 내 친구들이 보면서 공감하겠구나 싶었던 게 영화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였다. 얘기 들어보면 2, 30대 남자들도 막판 고백 장면 듣고 울컥한다던데. (웃음) 그런 요소들이 적절히 섞인 것 같다.

본인도 울컥하던가.
이민정 : 방금 말한 그 부분에서. 희중이라는 아이가 치유 받는다는 느낌이었다. 그 치유와 함께 새로운 사랑이 시작된다는 게 되게 좋았다. 결코 코미디가 앞선 로맨틱 코미디가 아닌 로맨스와 코미디가 적절히 배합된 거 같다. 그처럼 보편적 정서를 건드리고, 극의 진행이나 웃음 코드 역시 상당히 무난하고 깔끔한 느낌이다. 하지만 이런 작품이 있는 것처럼 앞서 언급한 처럼 조금은 마니악한 작품도 있다. 본인은 어떤 걸 더 재밌어 하나.
이민정 : 사실 나는 영화란 결국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이너하지만 뚜렷한 개성과 재미를 가진 작품을 만들겠다면 대중성을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서 탓하진 않겠지만, 대중적이면서도 재미가 있다면 최고일 것 같다. 나는 보편적으로 재밌는 영화도 좋아하고, 나 처럼 소수 영화관에서만 상영된 작품들도 좋아한다. 이 영화관에 오래 걸리지 않았다고 작품성이 떨어지는 건 아니지 않나. 조금 마이너하더라도 흡인력이 있는 게 중요하지. 하지만 영화란 상업주의의 결과물인 동시에 예술작품이기도 하다. 한 쪽에 치우치기보다는 두 가지 다 충족시키는 게 제일 좋지 않을까.

그런 게 딱 맞아떨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이민정 : 그렇지. 그럴 때 명작이라 불리지.

“책과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들었던 경험이 도움이 된다”

본인 말대로 모든 걸 충족시키는 명작은 드문 만큼 다양한 취향의 작품들을 섭취해야 그런 두 가지 방향에 대한 시야가 넓어지지 않을까.
이민정 : 예전에는 영화랑 책을 많이 봤었는데 요즘은 정신이 없어 너무 못 보고 있다. 문화적 감성이 너무 바닥났다. 홍보가 끝나면 책 몇 권과 아이팟을 가지고 어디로 도망가야 할 것 같다. 너무 쏟아내기만 해서 충전 시간이 필요하다. 사실 영화를 찍는 만큼 영화를 보는 게 필요한데, 최근 을 보러 갔다가 너무 피곤해서 도중에 잤다. 정말 사람들이 모두 극찬하기에 너무 보고 싶었는데. 영화 속에서 주인공들이 꿈을 꾸는데 저게 꿈인 건지, 내가 꿈을 꾸는 건지 싶었다. (웃음) 그러다 다 끝나고 주인공이 팽이를 돌릴 때 딱 깼다. 그 장면을 보니 대충 어떤 결말인지 짐작은 하겠더라. 그런데 다들 그 장면을 보며 ‘오-’ 이러니까.
이민정 : 정말 다들 그러더라. (웃음) 그 반응 보고 아, 잘 만들었구나, 나중에 피곤하지 않을 때 봐야겠구나 싶었다.

책은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나.
이민정 : 알랭 드 보통도 좋아하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는 사놓고 못 보고 있다. 한국 작가 중에서는 김영하를 좋아했고, 김애란의 같은 작품도 좋아한다. 좀 빤하지만 흡인력이 있는 기욤 뮈소 같은 작가도 좋아하고. 생각해보니 정말 1년 동안 책을 못 봤네. 영화 홍보 끝나면 도망갈 거다. 핸드폰 부러뜨려버릴 거다. (웃음)

그래도 그나마 그 때 봐놓은 게 있어서 지금 써먹을 수 있지 않나.
이민정 : 배우가 모든 것을 다 경험할 수는 없으니까 책 같은 걸 통해 상상했던 것들을 구체적으로 보는 건 긍정적인 것 같다. 다른 사람의 연기를 보거나 공연을 보는 것도 그렇고. 그런 걸 다양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었다. 중학교 때 음악 듣는 거 좋아해서 어머니가 주시는 용돈을 모아 한 달에 CD 한두 장 사는 게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었고. 그 때 들었던 음악은 아직도 머릿속에 많이 남아있는데 요즘처럼 다운로드를 하거나 CD를 여러 장 살 수 있게 되자 오히려 듣다가 아니다 싶으면 그냥 넘기고 그런다. 예전에는 정말 새로운 CD를 사기 전까진 CD플레이어로 내내 들었는데. 그런 경험이 좋은 거 같다. 그런 경험들을 과거형으로 말하는데, 정확히 어디까지 소급되는 건가.
이민정 : SBS 전까지? 그 전까지는 그런 걸 볼 시간이 조금은 있었는데 그 때부터는 많이 달려서 1년 동안 다 쏟아냈다.

그때부터 바빴다는 건 쉽게 이해가 간다. 다만 오히려 그런 흐름이 더 빨리 올 줄 알았다. KBS 이후 바로.
이민정 : 그런데 는 작년 8월에 들어가고, 는 4월에 끝났다. 3개월은 쉽시다! 나도 나름 끊임없이 달렸는데, 그게 늦었다고 이야기하니 이번 영화 끝나고서도 쉬지 못하겠네. (웃음)

아, 간극의 문제라는 건 아니다. 후속으로 나온 나 같은 작품이 의외였다는 거다.
이민정 : 아, 이 있었구나. 그러고 보니 나 정말 못 쉬었네. 에서의 캐릭터는 원작에 있던 조사관을 재창조한 캐릭터인데 조금 의외였을 수도 있겠다. 게다가 같은 경우는 19금을 떠나 파국의 이야기 아니었나.
이민정 : 개봉이 늦긴 했지만 그건 정확히 말해 전에 찍었던 작품이었다. 팬트하우스에서 사는 여피족의 붕 뜬 모습을 담은 작품이라 마니악한 재미를 느꼈다는 분들도 있었는데 현실적이라기보다는 약간 판타지적인 작품이었지.

이후 그런 필모그래피가 등장하니 의외였지.
이민정 : 그런 조금은 마이너한 코드의 작품을 하는 게, 지금처럼 상업영화를 찍고 여기까지 오는데 밑거름이 되는 것 같다.

말하자면 영화를 보고 책을 본 것처럼 자기 안에 쌓인 건가.
이민정 : 정말 아름답게 얘기해주는데? (웃음)

글. 위근우 eight@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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