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지섭, 유승호의 김치 냉장고
승호 엄마, 이렇게 오래 집 비워도 되는 거야? 승호 혼자 어디 밥이나 제대로 챙겨먹겠어? 아, 승호 형 집에 왔구나? 아유, 그 집은 어쩜 그렇게 형제간에 사이가 좋은지 몰라. 열여섯? 아니 열일곱 살 터울이라며, 둘이 아주 그냥 꼭 닮아가지고 누가 보면 부자지간인 줄 알겠어! 애들 아버지가 아주 인물이 좋은가 봐, 엄마 닮은 것 같지는 않던…흠, 크흠! 아유 환절기라 벌써 감기가 오나. 커험! 아무튼 저번에 둘이 밥 먹을 때 보니까 큰애가 김치도 찢어서 승호 입에 넣어주고 그러던데 아주 동생을 끔찍이 아끼나봐. 하긴 걔는 사귀는 여자 머리까지 지 손으로 감겨주고 그런다며? 지 엄마한테 그 정성 십분의 일만 하면 좀 좋…으흠! 쿨럭쿨럭, 아니 날이 벌써 이렇게 싸늘한데 승호 걔는 뭘 자꾸 얼리라 그러는 거야? 암튼 그렇게 인물 좋고 착한 아들이 둘이나 있어서 얼마나 부러운지 몰라. 둘 중에 누가 더 이쁘냐고? 그거야 김치만 맛있어도 고맙다고 와서 애교 부리는 우리 아들이 제일 이쁘지~
원빈의 전기밥솥
야, 넌 어떻게 니 남친을 초대해놓고 집을 비울 수가 있니? 너 정말 미쳤니? 저번에도 너 없을 때 집에 왔다가 금붕어랑 세 시간 동안 놀다 갔다며. 내가 진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서 하루만 니집 금붕어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어떻게 밥솥에 밥만 딸랑 해놓고 알아서 밥을 챙겨 먹으라고 할 수가 있냐고, 심지어 반찬도 없는데 먹으라고 하면 한 솥 다 먹는다며? 도대체 빈 솥 설거지는 왜 시키는 건데? 그냥 담가놓고 가라고 하지. 진짜 이 나이에 분리형 커버까지 부러워하는 내 팔자가 서러…운 게 아니고! 야, 아무래도 안되겠다. 니 남자친구가 너네 집 겉만 보고 여자들은 이렇게 깔끔한 줄 알았다가 니가 냉동실에 3개월 동안 쟁여놓은 음식물 쓰레기 보고 토하러 갔는데 니가 작년부터 안 닦아서 미끌미끌한 화장실 바닥에 넘어져 큰일이라도 나면 국가적 손실이잖아. 내가 얼른 가 볼게. 걱정하지 마. 아무 짓도 안 할 거야. 그냥 눈감고 잠깐 새기기만 한다니까?

글. 최지은 five@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