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은 원빈을 사랑한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수도 있지만, 지금은 원빈의 시대다. 물론 KBS 에 대사 한 마디 없이 등장해 ‘개 끌고 다니는 총각’으로 불리던 시절부터 “네가 그냥 커피라면 이 사람은 내 TOP야”라는 신개념 염장 광고로 여성 소비자들에게 커피 대신 소주를 찾게 만든 최근까지, ‘순정만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다’는 지독한 클리셰 이상의 표현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게 만드는 이 미남자가 여성들로부터 외면당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러나 시청률 40%를 돌파하는 드라마의 주인공도 수십만 팬덤을 보유한 아이돌 가수도 아닌 데뷔 14년차, 올해 나이 서른넷의 배우는 요즘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영화 한 편으로 모든 기준과 취향을 무색하게 만드는 절대적 신드롬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의 여성 관객 점유율이 말하는 것

“남자친구와 영화를 보러 갔는데 끝나고 고개를 돌려 보니 웬 오징어가 팝콘을 먹고 있더라”는 비교적 전형적인 미남배우 전설은 물론 “를 보고 나서 거울을 보니 악마를 보았다”는 자조적 댓글, “무대인사에 온 원빈을 보고 처음으로 신의 존재를 믿게 되었다”는 일종의 ‘간증’까지 그가 출연한 영화 에 대한 반응은 대부분 중도 없이 열광적이다. 과거 원빈을 좋아했건 아니건, 관심이 있었건 없었건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장기밀매 조직에 납치된 옆집 소녀 소미(김새론)를 구하기 위한 전직 특수요원 태식(원빈)의 처절한 사투를 그린 이 영화에서 그가 보여주는 것은 단지 시각적 효과인 ‘멋’이 아니라 존재 자체의 ‘아름다움’이다. 슈퍼에서 소시지를 집어 들까 말까 주저하는 손길, 피땀에 절은 양복을 걸친 채 터벅터벅 걷는 실루엣, 커튼 같던 머리카락을 밀며 드러나는 얼굴선 등 의 원빈은 매 장면마다 CF처럼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만 그 타고난 비주얼은 이야기와 겉도는 대신 캐릭터의 아우라를 강화시킨다. 그리고 는 상대적으로 액션 장르를 선호하지 않는 여성 관객 점유율을 50% 이상으로 끌어올린 데 크게 힘입어 이번 주말 500만 관객 돌파를 앞두고 있다.

여자와 어린이, 약자를 보호하려는 유일한 어른

물론 그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는 원빈의 미모만큼이나 비현실적인 판타지다. 세상에 어떤 ‘옆집 아저씨’도 그렇게 잘 생기고, 그렇게 싸움을 잘 하고, 그렇게 헌신적일 수는 없다. 나 의 ‘IMF’에서도 스카우트하지 못해 안달 났을 법한 인간병기 태식이 왜, 밥 몇 번 같이 먹은 것뿐인 옆집 초등학생 때문에 자신의 어둠침침하지만 평온한 일상을 포기하고 목숨을 걸어야 하는 싸움판에, 그것도 이겨봤자 감옥행이 뻔한 진창에 목숨을 걸고 뛰어들어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이 강아지 같은 눈망울의 남자는 그렇게 한다. 17대 1의 혈투에서 사람의 살을 찢고 뼈를 부러뜨리는 행위조차 피비린내 나는 우아함으로 승화시킨 태식이 남자의 로망을 자극하는 마초적 히어로임에도 여성 관객들의 심정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단지 그가 뭘 해도 잘생겼기 때문만은 아니다.

하루가 멀다 하게 성폭력, 아동성범죄 기사가 쏟아져 나오지만 누구도 반성하지 않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태식은 ‘여성, 어린이’인 절대 약자 소미를 보호하려는 유일한 존재다. 부모가 팔아넘기고 국가가 방치하는 개미굴의 아이들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어른 또한 그가 유일하다. 또한 태식은 죽은 아내와 뱃속의 태아에게 지극한 애정을 보였던 가장이며 자신을 은근히 유혹하는 소미 엄마(김효서)에게 성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는 ‘순수한’ 남자이기도 하다. 남편, 아빠, 이웃, 어른 등 다양한 포지션을 통틀어 보기 드물게 도덕적 합격선을 넘긴 이 ‘아저씨’는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지만 그만큼 그런 남자에게 목말라 있던 여성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아름다운 남자가 정의를 구현한다. 둘 중 어느 쪽도 보기 힘든 세상에서 지금 차태식, 원빈에 대한 열광은 정의가 사라진 사회에서 가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글. 최지은 five@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