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하 )은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경험과 가보았음직한 장소를 불행의 씨앗과 살육의 현장으로 변모시킨다. 귀찮아서 모른 척한 친구의 비극은 희대의 살인사건을 탄생시키고, 시골의 익숙한 풍경은 피의 향연이 펼쳐지는 무대가 된다. 어릴 적 친구 복남(서영희)을 만나러 외딴섬 무도로 떠난 해원(지성원). 서울에서 은행에 다니며 혼자 사는 그녀와 다르게 복남은 남편과 딸에 시동생까지 먹여 살리며 마을의 온갖 일을 도맡아 한다. 거기다 여느 시골 마을과 다를 바 없이 평화로워 보이는 무도에서 복남만이 노예처럼 부려지고 늘상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당신이 해원이라면 이방인으로 방문한 그 섬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살 떨리게 무자비하고 눈물 나게 안쓰러운 복수극
물론 해원은 복남의 부당한 현실을 목격하고도 어쩔 수 없다. 그것은 그녀가 특별히 불친절해서도 아니다. 도시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골치 아픈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고, 정의감보다는 겁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용히 휴가를 보내고 떠나려던 해원의 계획과 남편과 마을 사람들의 학대를 피해 서울로 도망가려던 복남의 계획은 모두 실패하고, 마지막 희망마저 사라진 복남은 더 이상 참지 않고 낫을 든다. 복남이 노인과 여자가 포함된 9명의 희생자들을 도륙하고도 잔악무도한 범죄자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것이 평생을 학대당해온 자의 복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낫과 돌, 식칼에 된장까지 동원된 그녀만의 응징은 고어물의 난도질에 맞먹는 수준을 자랑하지만 잔인함만을 위한 장치로 소모되지 않기에 영화는 피비린내와 땀내 풍기는 살아있는 공포로 펄떡거린다.
은 제 63회 칸 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대된 것을 시작으로 제 1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작품상, 여우주연상, 제 4회 서울디지털영화제 버터플라이상 등을 거머쥐며 평단의 지지를 받았다. 잇따른 수상이 증명하는 영화의 미덕은 매끈한 만듦새에 있지 않다. 오히려 은 종종 과장된 상황에 군데군데 엇나가는 유머나 감정 과잉, 신파적인 마무리로 단점을 드러낸다. 그러나 영화는 서로 다른 종류의 공포를 힘 있게 끌고 나간다. 타인에게 무관심한 서울의 공기는 관객을 가해자로 느끼게 하는 동시에 언제든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주기에 충분하고, 노동에서 대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원초적이고 폭력적인 시골 마을의 야만성은 극장이라는 문명화된 공간에 들어와 있는 모든 이들을 겁에 질리게 한다. 불편하고 통쾌하며 비극적인 은 올 여름 등장한 한국영화 중에서 가장 돋보인다. 개봉은 9월 2일.
글.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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