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출신의 거장 미하엘 하네케의 신작 은 독일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 시대극이다. 1913년 독일의 어느 개신교 마을에서 연속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마을 의사는 누군가가 몰래 설치해놓은 줄에 걸려 낙마하고, 소작농의 주인은 제재소의 나뭇바닥과 함께 추락해 죽고, 남작의 어린 아들은 마을 축제가 벌어지는 날 집단으로 폭행을 당하고, 마을 산파의 장애아들은 소름끼치는 방법으로 두 눈을 잃어버린다. 마을에 갓 부임한 신임 교사는 사건을 조금씩 파헤치기 위해 노력하지만 사건은 점점 미궁으로 빠져든다. 그러나 에서 범죄자를 밝혀내는 후더닛(whodunit)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미하엘 하네케의 카메라가 보여주는 개신교 마을 사람들의 속내다. 모두의 존경을 받는 마을 의사는 사실 친딸을 겁탈하는 변태이고, 개신교 목사는 아이들을 학대하는 이기주의자 겁쟁이일 뿐이다. 유럽의 현대사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 ‘어떻게 파시즘이 독일에서 발현했는가’에 대한 우화라는 걸 쉽게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은 제6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7월 1일 개봉한다.
가장 아름다운 미하엘 하네케의 영화
미하엘 하네케의 이름을 듣는 순간 몸서리를 치는 사람들도 꽤 있을게다. 하네케의 전작 , , 은 (하네케의 표현에 따르자면) 관객을 겁탈하는 영화다. 시각적인 폭력이 강렬해서는 아니다. 하네케의 영화들은 마음 약한 관객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폭력과 위선을 스크린에 드러낸 뒤 우리를 향해 조소한다. 우리의 치부를 들킨 듯한 기분 나쁜 씁쓸함이야말로 하네케 영화의 힘이다. 하지만 은 조금 다르다. 이 영화에는 직접적인 폭력이 보이지 않는다. 다만, 어안이 벙벙하도록 유미주의적인 흑백화면의 정갈함을 통해 관객의 숨을 틀어막는다. 아마도 가장 덜 불편하고, 가장 아름다운 미하엘 하네케의 영화라고 할 만 하다.
영화의 제목인 은 목사의 아이들이 한쪽 팔에 차고 있는 하얀 완장을 의미한다. 목사는 저녁식사 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않거나, 사춘기가 되어 자위행위를 시작한 아이를 회초리로 체벌한 뒤 팔에 순결의 상징인 하얀 리본을 매준다. 물론 하얀 리본은 나치즘의 명징한 상징이다. 나치 문장이 그려진 완장을 찬 히틀러 유겐트의 아이들은 유태인들에게 파란색별이 그려진 하얀 완장을 채운 뒤 가스실로 보냈다. 이 명징한 상징을 통해 은 세대와 세대로 이어지는 폭력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물론 이걸 독일과 나치즘의 이야기라고만 한정해서는 안 된다. 하얀 리본을 단 파시스트들은 어디에나 있다. MBC를 장악한 그들도, 똥통을 들고 시민단체를 공격하는 그들도, 혹은, 그 모든 걸 보고서도 입을 다문 우리들도, 하얀 리본을 달고 있다. 은 1913년의 독일로부터 보내는, 지금 이 시대의 우화다.
글. 김도훈 ( 기자)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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