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승원은 이제 막 데뷔한 신인 같다. 최근 그의 에너지는 데뷔 22년 차의 그것 같지 않다. 오랜 경력에서 나오는 노회함보다는 목표를 눈앞에 두고 세차게 달려가는 경주마처럼 그의 근육들에는 아드레날린이 들어 차있다. SBS 의 조국으로 ‘차간지’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영화 의 스타일리시한 형사로 다시 한 번 동년배의 배우들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그만의 미학을 과시했다. 그리고 영화 의 이몽학으로 “브랜드에 힘이 있는 이준익표 사극”에도 이름을 올렸다. 여기까지 왔는데도 숨이 차지만 차승원이 준비 중인 덩치 큰 프로젝트들은 아직도 대기 중이다. 6.25 60주년을 기리는 전쟁 블록버스터 와 한국 드라마 역사상 가장 많은 제작비가 투입될 의 스핀오프 시리즈 까지. 한 번도 차갑게 식은 적이 없었던 그의 이력은 지금 가장 뜨겁다.

“요즘이 제일 나답고 좋아요. 사람들이 내가 생각하는 이미지로 날 봐주니까.” 뛰어난 프로포션에 어울리지 않는 코미디의 옷을 입었을 때도 그는 충분히 웃겼고, 남들이 어울리지 않다고 한 불쌍한 남자의 얼굴을 한 이나 에서도 차승원은 배우로서 인정받았다. 그러나 “당신의 얼굴엔 전쟁의 기운이 있으니까 그것만 해도 먹고 산다. 이제 어울리지 않는 건 그만하라”는 어느 팬의 말처럼 사람들이 차승원에게 기대하고, 보고 싶었던 모습은 오랫동안 봉인되어 있었다. “30대에 했으면 눈에 잔뜩 힘만 줬을 텐데 이제는 멋진 역할이나 큰 작품을 하더라도 휘둘리지 않고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생긴 대로 연기하고 생각한 대로 가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요.”

서 있는 것만으로도 관상에 흡족한 모델 시절을 지나 코믹한 배우로 웃음을 주다, 이제는 관리 잘 된 몸에서 나오는 매력과 연륜에서 나오는 여유로움이 단단하게 결합된 차승원. 그가 박제시키고픈 남자들의 목소리를 추천한다. 그러나 차승원의 현재가 그의 어느 시기보다 화려하다고, 이런 40대 배우를 가져본 적이 없다고 해서 그의 마흔 살을 박제시키려는 시도는 금물이다. “60대가 지나도 여전히 수컷 냄새 나는 남자이고 싶다”는 그의 모습은 분명 우리가 한 번도 보지 못한 남자 배우의 황혼일 테니까.
1. Nirvana의
“커트 코베인의 목소리를 좋아해요. 너바나를 처음 들었을 때가 한창 모델 일을 할 때니까 거의 20년 전이네요. 그 무렵 정말 줄기차게 들었던 음악이에요.” 남성적인 카리스마로 런웨이를 꽉 채우던 톱모델 시절의 차승원은 너바나의 심장으로 거친 아우라를 뿜어낸 커트 코베인과 묘하게 겹쳐진다. 너바나의 가장 대표적인 앨범이자 얼터너티브 록의 정점을 찍은 는 많은 이들에게 ‘Smells Iike Teen Spirit’로 기억될 것이다. 너바나의 카오스적인 정신세계를 표현한 가사와 무질서에 가까운 자유분방한 무대 매너는 ‘Smells Iike Teen Spirit’를 그들 최고의 히트 넘버로 만들었다. 그리고 수많은 밴드들이 한 번쯤은 카피해 본 그들의 히트 넘버들은 언제 어디서 들어도 피를 끓게 한다.
2. Eric Clapton의
“에릭 클랩튼의 ‘Change The World’는 한때 제 18번이었어요.” 에릭 클랩튼의 ‘Change The World’가 수록된 베스트 앨범 는 그의 수많은 히트곡들을 담고 있다. ‘Wonderful Tonight’, ‘Layla’ 등 기품마저 느껴지는 에릭 클랩튼의 기타 연주와 목소리가 빚어내는 따뜻함은 시간이 지나도 식지 않는다. 에서 야망을 좇아가는 이몽학을 표현하기 위해 덧붙인 날카로운 송곳니나 긴 팔과 다리가 도드라지는 검술보다 차승원을 돋보이게 한 것은 단단함에 부드러움을 감춘 듯한 저음의 목소리였다. 에릭 클랩튼의 감미로운 ‘Change The World’를 차승원이 부른다면 어떨까? 기대를 감출 수 없는 상상에 빠지려는 순간, 차승원 특유의 유쾌함이 방해한다. “노래 잘하냐구요? 왜, 시키려고? (웃음)”

3. Jimi Hendrix의
지미 헨드릭스 특유의 흐느적거리는 듯한 목소리도 물론 매력적이지만 그는 무엇보다 기타로 노래하는 뮤지션이다. 연주자의 개성을 그대로 전달하는 투명 전도체 같은 그의 기타는 때로는 흐느끼고 때로는 끝도 없이 울부짖는다. 지미 헨드릭스가 가장 완숙했던 시절인 1969년 무렵의 미발표 곡들을 묶어 40년 만에 출시된 는 2010년에 지미 헨드릭스를 듣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리미티드 에디션에만 있고 정규앨범에 포함되지 않은 ‘Cat Talking To Me’에선 특이하게도 드러머인 미치 미첼의 보컬을 들을 수 있어요.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Hear My Train A Comin’이 의 정수죠.” ‘Hear My Train A Comin’에서 7분 32초 동안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지미 핸드릭스의 연주는 그가 왜 ‘기타의 신’인지를 말해준다.

4. 이문세의
“이문세 씨는 ‘광화문 연가’, ‘난 아직 모르잖아요’, ‘사랑이 지나가면’ 등 유난히 히트곡이 많지만 전 ‘붉은 노을’을 가장 좋아해요.” 이문세의 다섯 번째 앨범 은 故 이영훈 작곡가와 이문세가 만들어낸 최고의 합작품이다. 이영훈이 만들어낸 서정적인 곡들은 감수성이 짙으면서도 담백한 이문세의 보컬과 어우러져 1980년대 발라드의 영광을 선두에서 이끌었다. “누가 뭐래도 전 세상을 달관한 타입의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결말이 비극이라 허망하더라도 끝까지 가서 내 눈으로 보고 싶은 그런 사람이죠.” 절망조차도 끝까지 정복해야 직성이 풀리는 차승원에게는 슬픈 사랑을 노래하거나 아련한 추억을 회상하는 5집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달리 경쾌하고 파워풀함이 느껴지는 ‘붉은 노을’이 역시 어울린다.

5. 빅뱅(Bigbang)의
“(최)승현이가 정말 랩을 잘하던데요. 평소에는 ‘혀영- 식사하셨어요?’ ‘좋아요, 혀엉-’이러던 애가 랩만 하면 목소리가 확 바뀌더라고요. 연기할 때도 자꾸만 관심이 가는 참 괜찮은 친구예요.” 차승원은 마지막으로 함께 영화 를 찍은 탑이 속한 그룹 빅뱅의 음악을 빼놓지 않는다. 차승원이 “가장 최근에 들은 빅뱅의 노래”인 ‘Lollipop Pt.2’는 각자의 솔로 활동으로 바쁜 빅뱅 멤버들을 오랜만에 그룹으로 모이게 했다. 같은 광고의 CM송으로 이미 히트한 바 있는 ‘Lollipop’에 뒤이어 기대를 모았던 ‘Lollipop Pt.2’ 역시 YG의 프로듀서 테디가 솜씨를 발휘했다. 캔디팝 컬러의 의상을 맞춰 입은 빅뱅처럼 톡톡 튀는 비트에 영배의 그루비한 보컬과 지드래곤의 쫀득한 랩, 탑의 터프한 목소리로 귀에 착착 달라붙는 사운드를 선보인다.
“40대가 넘어서는 돈이 아니라 꿈을 좇아야 해요. 대부분은 30대가 되면 자기가 갖고 있던 꿈들을 추억인양 잃어버리고 현실적이라고 하는 것들을 좇는 경우가 많죠. 근데 과연 그게 현실적일까요?” 30대엔 열심히 일했고, 40대엔 그걸 바탕으로 꿈을 쫓는 그의 설계도대로 차승원은 2-30대를 정신없이 보냈고 이제 자신이 꿨던, 60대가 되어도 여전히 매력적인 남자로 남으며 미친 듯이 멋진 느와르 영화를 찍고 싶다는 꿈을 축조하기 위해 쉬지 않고 있다. 봉인해제 된 차승원의 질주는 거침이 없다. 우리가 할 일은 그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지켜보는 것이다.

글. 이지혜 seven@
사진. 이진혁 el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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