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캐리야말로 정말 천재라고 생각해요. 사실 어떤 면에서 정극 연기는 아주 어렵지 않을 수 있어요. 오히려 슬랩스틱 코미디를 제대로 하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인데 짐 캐리는 그걸 탁월하게 해내거든요.” 공형진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가 MBC ‘무릎 팍 도사’에 나와 “인생에 정점이 없어 고민”이라던 말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것은 필연적인 결과가 아니었을까. 그의 능력이 정점에 오르기 부족한 것이어서라는 뜻이 아니다. 과연 짐 캐리를 최고의 천재 배우로 생각하고 동경하는 배우가 인기의 정점에 오를 만큼 한국 영화의 종 다양성이 풍부한가에 대한 회의감이다.

사실 이후 공형진의 연기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선을 만나기란 어렵다. 그럼에도 그는 스포트라이트의 주변에서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감초’이자 장동건과 최민식, 원빈, 정우성 같은 대스타들의 친구로서 이야기되어왔다. 같은 대작에서도 그의 코믹한 조연 연기는 빛났고, 그런 작품 활동을 통해 만들어온 인간관계 역시 독보적인 것이었지만 정작 그는 자기 자신보다는 주위를 빛내는 역할이었다. 코믹 연기를 감초 연기로 규정하는 한국 영화의 어떤 경향 안에서, 또한 코미디 영화를 추석 극장가 장사 품목 정도로 생각하는 분위기 안에서 이것은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비록 최근 어딘지 모를 어수룩함과 강단이 공존하는 KBS 의 업복이를 통해 스스로 얼마나 연기를 잘하는 배우인지 증명했음에도, 또한 그가 출연했던 수많은 작품의 평균 퀄리티가 상당히 높았던 것에 불구하고, 공형진이라는 배우가 한바탕 놀만한 작품이 과연 얼마나 됐을지 의구심이 드는 건 그래서다. 유치해 보일 수 있는 에서 타이틀롤을 맡아 바보 연기를 보여준 그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인생에 정점이 없다는 그의 고민은 그가 그토록 좋아하는 김지운 감독 초기작의 씁쓸한 유머와 코엔 형제의 정신없이 질주하는 코미디를 한국 영화에서 보기 어렵다는 고민에 다름 아니다. 그가 애정을 숨기지 않은 다음의 블랙코미디 같은 작품들을.
1. (The Foul King)
2000년 | 김지운
“우리나라 영화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영화가 이에요. 아마 제 커리어 안에서 가장 사랑하는 영화, 혹은 가장 사랑해야 하는 영화는 이겠지만 관객으로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이에요. 덕분에 김지운 감독님의 팬이 되어서 언젠가 꼭 이분과 작품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공공연하게 팬이라고 얘기해도 안 불러주시더라고요. (웃음) 웃기기도 웃기지만 그 안에 있는 씁쓸한 정서도 좋아요. 별 볼일 없는 회사원이 프로레슬링을 통해 세상과 한 번 부딪히는 이야기도 마음에 들고요.” 불경스러운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과 는 상당히 많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는 작품들이다. 두 주인공 모두 현실은 시궁창인 삶을 산다는 게 그렇고, 그것을 벗어나기 위한 장소로 프로레슬링 링을 선택했다는 게 그렇다. 하지만 현실 대신 무대를 택하는 주인공을 쓸쓸하게 바라보는 와 달리 은 경기 중 가면이 찢어지는 장면을 통해 현실과 무대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과감함을 보여준다. 그 싸움은 처절하지만 그 너머에서 세상을 향해 주먹을 쥐는 주인공을 통해 영화는 한줄기 희망을 남긴다.

2. (True Romance)
1993년 | 토니 스콧
“외화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따지면 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토니 스콧 감독의 영화지만 기본적인 정서는 시나리오를 쓴 쿠엔틴 타란티노의 그것에 더 가까운 거 같아요. 저는 기본적으로 안 되는 놈이 되는 이야기를 좋아해요. 도 아마 그런 이야기라 좋아했던 거 같고요. 이 영화 역시 대단할 것 없는 건달과 콜걸이 정신없는 사건의 끝에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심지어 돈까지 챙기는 이야기를 통해 그런 인생역전을 보여주죠.”

쿠엔틴 타란티노가 데뷔 전, 을 찍기 위해 헐값에 각본을 넘긴 것으로 더 유명한 작품이다. 비록 감독은 토니 스콧이지만 홍콩 액션영화의 광팬인 클레런스(크리스찬 슬레이터)와 콜걸 알라바마(패트리시아 아퀘트)가 우연히 마약이 든 가방을 가지게 된 후 거대한 트러블에 휘말려드는 과정은 온전한 타란티노 스타일이다. 그 카오스 속에서도 결국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두 주인공의 사랑이니 정말 제목 그대로 ‘트루 로맨스’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지 않을까.
3. (A Fish Called Wanda)
1988년 | 찰스 크릭톤
“기본적으로 영국식 코미디라 미국인들이 보이는 반응보다 영국인들이 느끼는 반응이 더욱 크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그런 뉘앙스까지 잘 모르더라도 충분히 즐겁게 볼 수 있는 코미디에요. 내용만 따지면 보석을 훔치기 위해 나쁜 놈들끼리 서로 속이는 범죄물에 가깝지만 그걸 풀어내는 방식은 유쾌하죠. 이렇게 뭔가 언밸런스한 웃음 코드가 제 취향에 맞는 거 같아요. 조금 잔인하거나 보기 불편한 장면도 있지만 그조차 개연성을 잃는 경우가 없고요.”

행방불명된 보석, 그리고 그 보석을 찾기 위해 뛰어든 괴짜들이 만들어가는 우연의 연속들. 영국 출신 감독 가이 리치의 2001년 작 의 플롯과 정서는 이미 1988년 작 에서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두목의 애인 완다(제이미 리 커티스)와 그녀의 정부 오토(케빈 클라인), 그리고 두목의 아들은 두목이 숨겨놓은 보석을 찾기 위해 서로를 이용하려 하고, 그 와중에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된 두목의 변호사는 완다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처럼 어디로 튈 지 알 수 없는 우연의 연속에 홀린 듯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유쾌한 해피엔딩에 웃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4. (Burn After Reading)
2008년 | 조엘 코엔 외 1명
개인적으로 코엔 형제의 블랙코미디를 정말 좋아하지만 을 최고로 꼽고 싶어요. 사실 저는 브래드 피트를 연기 잘하는 배우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 영화를 통해 완전히 자신의 능력에 대해 눈을 뜬 거 같아요. 그 능청스러움이라니. 조지 클루니도 마찬가지고요. 그렇게 수많은 명배우들이 등장해 엄청난 연기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 각각의 연기를 하나의 작품 안에 차곡차곡 포개놓는 코엔 형제의 촘촘한 이야기도 탁월해요. 블랙코미디의 달인 코엔 형제가 를 연출한 건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이 걸작 이후 으로 자기들이 잘하던 블랙코미디의 끝장을 보여줬다는 것 역시 놀라운 일이다. 전 CIA 요원 오스본(존 말코비치), 그리고 그가 잃어버린 국가 기밀 정보 CD를 우연히 손에 넣은 채드(브래드 피트)와 린다(프란시스 맥도맨드), 여기에 오스본의 부인과 내연 관계인 현직 연방경찰 해리(조지 클루니)는 CD를 중심으로 엮이며 그들의 관계, 그리고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꼬인다.

5. (Inglourious Basterds)
2009년 | 쿠엔틴 타란티노
“쿠엔틴 타란티노 특유의 수다와 거침없는 질주가 돋보이는 영화죠. 때부터 호감이 되기 시작한 브래드 피트의 능글맞은 연기도 매력적이고, 독일 장교 란다 역의 크리스토프 왈츠의 연기는 정말 압권이죠. 그들을 비롯한 다양한 인물들이 나치 혹은 히틀러 제거라는 목적을 가진 채 어느 순간 얽히게 되면서 벌어지는 한바탕 소동은 타란티노의 과거 걸작인 못지않아요.”

히틀러를 죽여라. 그것이 이 영화 속 주인공들의 모토다. 그리고 히틀러를 죽인다. 그것이 이 영화의 결과다. 하지만 이 영화는 주인공이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벌이는 기승전결의 스토리와는 거리가 멀다. 이 영화의 결과를 죄책감 없이 밝힐 수 있는 건 그래서다. 말하자면 알도(브래드 피트)의 조직과 반 나치 여배우 브리지트(다이앤 크루거) 등의 인물이 만들어가는 각각의 에피소드를 한바탕 수다처럼 즐기면 된다.
“이나 처럼 우리나라 유명 배우들이 잔뜩 출연하는 그런 영화를 구상하고 있어요. 한석규, 최민식, 장동건, 유오성 같은 배우들이 한 번 모여서 영화를 찍으면 사람들이 얼마나 신뢰하겠어요.” 만약 공형진이 가지고 있던 고민이 고민으로만 끝난다면 그 너머의 위치를, 그리고 그 너머의 작품을 획득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동안 자신이 쌓아왔던 배우로서의 커리어와 인맥을 통해 자신이 좋아하고 꿈꾸던 작품을 직접 추진하길 원한다. “기능적 측면도 조율해야 하고 상황이나 여건도 만들어야 하지만 서로 공감대를 형성한다면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을 거 같아요.” 물론 그 꿈이 이뤄진 순간에도 그가 인기의 정점에 서게 될지는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누군가의 위치를 오직 높이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는 법이다. 때로, 특히 영화 같은 공동 작업에선 오히려 평면적 포메이션에서의 위치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그리고 공형진은 그 폭넓은 관계망의 중심에 서 있는 배우다. 어쩌면 그의 진정한 정점은 이미 온 것이 아닐까.

글. 위근우 eight@
사진. 이진혁 el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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