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불후의 명곡2-전설을 노래하다’ 이번 주 미션은 1992년 의 대표 히트곡들이었는데요. 이번 경합부터 새로 참가하게 된 그룹 엠블랙의 보컬 지오 군은 양수경 씨의 ‘사랑은 차가운 유혹’을 불러 객석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옛날 곡들을 들어보면 참 순수하고 솔직한 느낌이 있거든요. 그래서 그 느낌을 살리려고 많이 노력했어요”라는 본인의 곡 해석대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소화해낸 무대였어요. 과하지 않은, 절제된 분위기가 무엇보다 마음에 들더군요. MBC ‘나는 가수다’에 첫 출전한 후 장혜진 씨가 말했듯이 그처럼 많은 이들의 집중어린 주목을 받는 무대도 처음이지 싶은데 떨리는 기색하나 없이 평정을 유지하며 차분히 노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기약없는 연습생 시절, 누가 보상해주나요?

그런데 사실 저는 “안녕하세요, 가수 지오입니다” 라는 첫 인사에 목이 메어왔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불후의 명곡2’ 무대에 오른 모두가 지오 군과 마찬가지로 그룹 이름을 떼고 본인을 소개해왔지만 지오 군의 경우는 아마 사전 인터뷰 내용 때문인가 봅니다. 가수 지오로서 무대에 서기까지 겪어온 구구절절한 지난날들이 청중 앞에 선 순간 주마등처럼 스쳐갔을 게 분명한지라 가슴이 울컥할 수밖에요. 외모나 춤으로 그룹이 꾸려지던, 립싱크로 대변되던 1세대 아이돌과는 달리 요즘 아이돌 가수로의 데뷔가 그리 녹녹치 않다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죠. 길고 긴 연습생 시절을 거쳤다는 빅뱅의 G-드래곤이나 2AM의 조권이야 두말하면 잔소리이겠고, 동방신기의 유노윤호도 연습생에 뽑혔을 당시엔 세상을 다 얻은 양 기뻐했으나 막상 연습실에 당도하니 자신 같은 연습생이 백 명은 되어 보여 깜짝 놀랐다죠?

게다가 연습생이라고 다 데뷔할 기회를 얻는 것도 아니어서 지난 경합에 참가해 발군의 가창력을 선보인 슈퍼주니어의 예성이나 비스트의 요섭도 함께 연습했던 다른 친구들이 먼저 가수가 되는 걸 지켜봐야 했을 때, 그 때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고 고백했거든요. 어린 나이에 꿈 하나에 모든 것을 걸고, 또 많은 것을 포기한 채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려왔을 그네들이 하루하루, 그리고 빛을 못 보고 사그라졌을 수많은 꿈들을 생각하면 어른으로서 책임을 통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이제 다시 도약할 시간입니다

그런데 지오 군이 지나온 길은 그 누구보다 험난했더군요. 듣자니 2007년 혼성 R&B 그룹 타이키즈로 데뷔했으나 회사가 도산이 되는 바람에 별 성과 없이 해체의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었다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회사가 망했으면 계약 또한 공중분해 되는 게 상식이건만 어찌된 영문인지 자유로운 몸이 아니었다고요? 어쩔 수 없이 어린 나이에 법정까지 가게 됐지만 부모님께는 차마 그 사실을 알릴 수 없어 변호사도 혼자 알아보고 다녔다면서요. 더구나 소송 진행과 엠블랙 결성 시기가 맞물려 있었다니 이래저래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겠습니까. 자칫 잘못했다가는 또 한 번의 기회 역시 무산될 터, 아마 속이 제 속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극단적이지만 죽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는 지오 군의 말에는 가슴이 철렁할 수밖에 없었어요. 최근 들어 자주 보도되는 연예인들의 자살 소식이 오버랩 되는 한편 지오 군과 흡사한 처지에 놓인 친구들이 알게 모르게 산재해 있을 게 빤한지라 그들에 대한 염려도 보태져 조마조마한 심정이네요. 그나마 지오 군은 이십 대에 당한 일이라지만 이런 경우에 놓인 세상 물정 모르는 십대 청소년들이 오죽 많겠습니까. 본인의 욕심에 눈이 먼 어른들에게 꿈을 저당 잡힌 채 비인간적인 대우 속에서 쉼 없이 노력했을 어린 친구들을 생각하면 정녕 화가 끓어오릅니다. 자신들의 자식이라면 설마 그처럼 무책임하게 쓰고 버릴 상품 취급을 했겠어요?

몰지각한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그 어둡고 긴 터널을 홀로 헤쳐 나와 다시금 도약의 발판에 선 지오 군에게 같은 어른으로서 심심한 사과와 더불어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지금은 또래 아이돌들과 경합을 벌이고 있지만 열심히 꿈을 갈고 닦아 수년 뒤엔 임재범 씨나 이소라 씨와 함께 경연을 펼치는 모습을 보게 되길 바랍니다. ‘불후의 명곡2’가 자신에게 구세주이지 싶다는 지오 군, 그날이 오기까지 지오 군의 편이 되어 응원하겠습니다.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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