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현: 어렸을 때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저도 모르게 낯을 가리고, 조용한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굳어버렸어요. 말도 잘 못하니 본심과 다르게 오해를 사고, 그래서 아예 말을 하지 말자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지금은 많이 좋아졌는데 변한 것은 아니고, 본 모습이 나온 거죠.
– 박정현, 한 인터뷰에서



앤: 박정현의 오랜 친구. 박정현은 공연 중 앤을 위해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두 사람은 중학 시절 교내 노래대회에 함께 나가려고도 했고, 박정현은 이때를 계기로 노래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동시에 교회 성가대에서 소프라노를 하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의 노래를 따라하며 고음을 일찍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가 가수로 데뷔한 뒤에도 “한국에서 그만 놀고 미국 들어와서 취직해라”라고 할 만큼 보수적이었고, 어린 시절에는 데이트조차 못하게 했다. 박정현은 집에서와 달리 학교에서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고, 노래를 하기 전까지는 그의 목소리조차 모르는 학생도 있었다. 노래는 박정현의 언어라고 해도 좋을 듯. 이후 박정현은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은” 마음에 어학당을 다니면서 한국으로 왔고, 한 제작자의 권유로 공부와 음악을 병행하는 게 재미있을 것 같아 노래를 시작한다. 그 때만 해도 앨범 한 장 내고 미국에 돌아갈 생각이었다고. 임재범: 데뷔 앨범 수록곡 ‘사랑보다 깊은 상처’를 함께 부른 가수. 당시 박정현은 이 노래의 가사를 거의 “오?동안 기다려 와쒀~”로 들릴 만큼 외국인의 한국어 발음처럼 불렀다. 부담 없이 음악을 시작하기로 했지만 한국어 가사는 이해하기 벅찼고, 매일 영한사전과 한영사전을 보며 가사의 뜻을 이해해야 했다. 게다가 이런저런 나쁜 일들이 겹쳐 앨범 제작 전까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라고 할 만큼 괴로운 나날들을 보냈다. 그래서 박정현은 1, 2집의 경우 함께 음악작업을 한 선배 뮤지션들에게 많은 부분을 의지했다고.

윤종신: 바로 그 선배님. 1, 2집의 ‘나의 하루’, ‘전야제’ 등을 작곡했다. ‘전야제’는 윤종신이 불렀다면 ‘윤종신표 발라드’라는 말이 붙었을법할 정도로 담백하고 편안한 멜로디를 가졌다. 그러나 박정현의 보컬은 이 노래를 보다 드라마틱하고 다소 소울/R&B의 느낌마저 나는 곡으로 바꿔 놓는다. 얇지만 진하고, 맑으면서도 파워풀한 목소리에 음과 음 사이를 마음대로 구부리는 박정현의 보컬은 어떤 멜로디든 보다 드라마틱하게 소화해낼 수 있었다. 어떤 노래든 박정현이 부르면 박정현의 색깔이 돼 버린다. 2집의 ‘몽중인’, ‘전야제’가 R&B와 거리가 먼 음악이었음에도 박정현이 R&B 뮤지션으로 받아들여진 이유. 박정현의 데뷔는 새로운 스타일의 보컬리스트의 등장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우리가 듣지 못했던 악기가 등장한 것과 같았다.

조규찬: 1집 ‘Intro’의 코러스 편곡과 2집 ‘우리가 보여’의 코러스를 맡은 뮤지션. 특히 ‘우리가 보여’는 조규찬의 화려한 코러스와 함께 ‘목소리로 사람을 죽이는’ 것 같은 보컬을 들려준다. 듣는 사람을 오직 목소리에 집중하게 만드는 곡을 원한다면 반드시 들어볼 것을 권한다. 정석원: 박정현이 ‘Special Thanks to’에 ‘오빠 선생님’이라고 했던 4집 의 프로듀서. 전작들이 여러 선배 작곡가들의 곡을 받아 부르는 쪽에 가까웠다면, 는 박정현이 정석원과 함께 프로듀싱에 참여했다. 두 사람은 메신저 등을 통해 곡에 대한 의견이나 가사를 주고받으며 작업했다. 그 과정에서 ‘블록버스터 발라드’라 해도 좋을 스펙터클한 구성과 치밀한 사운드가 빛나는 ‘Plastic Flower’와 ‘꿈에’, 실연의 아픔을 일상 속에서 묘사하는 ‘생활의 발견’과 ‘미장원에서’, 최고의 장점인 목소리를 의도적으로 왜곡시킨 ‘Puff’가 탄생했다. `Puff‘의 전조였던 ‘몽중인’, 끝에서 끝까지 가는 대곡 지향의 발라드 ‘아무 말도 아무 것도’ 등 전작에서 이미 4집과 연관성이 있는 곡들을 불렀지만 대중에게 여전히 R&B 뮤지션으로만 인식되곤 했던 박정현은 극단적인 시도들을 통해 음악적 방향을 선언했다. 그건 단지 음악적인 방향성을 드러내는 것뿐만이 아니라 박정현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들려주겠다는 선언처럼 보였다. 말조차 잘 안하던 소녀가, 노래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승환: 박정현과 이승환의 평행이론. 키가 작다. 목소리는 어마어마하게 크다. 데뷔 전 록을 즐겨 부르거나, 들었다. 이승환과 박정현은 모두 4집 앨범에서 엄청난 스케일과 급진전한 완성도의 사운드로 음악적 변신에 성공했다. 특히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박정현이 압도적인 가창력을 선보이는 ‘미장원에서’는 그 구성이 ‘천일동안’을 연상시킬뿐만 아니라 ‘천일동안’과 마찬가지로 이별후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이승환이 그러했듯, 박정현은 자신의 가창력에 사운드에 대한 야심을 결합해 여성 보컬리스트에게는 거의 전례가 없는 거대한 발라드를 완성시켰다. 이승환은 “나와 비슷한 것 같은” 박정현에게 흥미가 생겨 합동 공연을 제안했고, 두 사람은 공연에서 ‘말달리자’를 부르며 방방 뛰었다. 보다 자신의 뜻대로 음악을 표현하게 된 박정현은 더욱 에너지가 가득 찬 모습을 보여줬고, 아직 불완전한 발음에도 관객에게 농담을 하는 등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황성제: 6집 의 공동 프로듀서. 박정현이 4집까지 윤종신, 유희열, 조규찬, 정석원, 김형석 등 당대의 ‘선배들’과 함께 작업했다면, 단독 프로듀싱에 나선 5집을 지난 6집은 한 살 위인 황성제와 함께 만들어나갔다. 공연 역시 서인국, 존 박 등 후배 들과 함께 하며 그들을 이끌었다. 5,6집은 처럼 극단적인 성격을 띄는 대신 보다 담담해지고, 자신의 감정을 차분하고 섬세하게 풀어나가는 곡들이 많았다. 4집 앨범 재킷에서 박정현이 있는 장소가 초현실적인 분위기의 배경이었고, 5집은 자연 한 가운데였으며, 6집은 박정현의 집을 배경으로 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박정현은 점점 더 자신을 담담하지만 세밀하게 표현해 나가기 시작했다. 후반부까지 감정을 누르다 단 한 번에 폭발시키는 ‘미아’는 그 과정에서 나온 또 하나의 걸작. 데뷔 10년이 지나, 박정현은 대중에게 자신에게 오는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김태현: MBC 의 ‘나는 가수다’에서 박정현의 매니저. 두 사람이 은근히 잘 어울려 사귀길 바라는 시청자도 있다. 박정현은 음악적으로는 점점 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대중에게 납득시켰지만, 가요계에서는 다른 세계 사람 같았다. 미국에서 태어났고, 예능프로그램에도 좀처럼 출연하지 않으며, 친한 동료조차 소수에 경이로운 가창력을 가졌다. 그래서 박정현의 노래는 마치 기승전결이 잘 짜인 문학 작품 같았다. 일반적인 가수들처럼 듣는 사람들을 노래에 완전히 몰입시키려하기 보다는 자신이 노래로 완성한 세계와 이야기를 대중이 감상하도록 만들었다. 박정현이 가요계의 ‘요정’이었던 이유. 경건함마저 느껴지는 그의 빈틈없는 노래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린다. 하지만 박정현은 ‘나는 가수다’에서 김태현과의 대화를 통해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고, 가수들 사이에서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며, 음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나는 가수다’를 통해 박정현은 팬이 아닌 대중에게도 보다 실제에 가까운 자신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에는 그의 재미있는 모습을 패러디한 사진이 돌기 시작했다. 앨범 재킷 안에서 늘 혼자 사는 것 같던 여성이 사람들과 섞이기 시작했다.

조용필: 박정현이 ‘나는 가수다’에서 부른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의 원곡자. 또는 가요계의 선배님의 선배님, 전설, 가왕, 황제, 신. 박정현은 8년을 공들인 끝에 이 노래를 부를 수 있었고, 늘 그러하듯 자신의 가창력을 100% 쓸 수 있는 방식으로 소화하며 자신의 노래로 만들었다. 어떤 노래든 음과 음을 자유자재로 바꿔가며 곡을 드라마틱하게 만들 수 있는 박정현의 능력은 관객들이 라이브 공연의 열기를 느끼길 원하는 ‘나는 가수다’에서 특히 강점을 갖는다. 지금까지도 박정현을 R&B 보컬리스트나 ‘노래하는 요정’로만 알고 있는 사람에게, ‘나는 가수다’의 박정현은 신선한 충격일 것이다. 수많은 스타일의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노래를 가다듬은 목소리는 김건모와 조용필의 노래를 모두 자기 것으로 소화할 수 있게 만들었고, 발라드부터 록까지 무대 위에서 자유롭게 펼쳐낸 경험은 붉은 원피스를 입고 라틴 댄스를 추며 ‘첫인상’을 부를 수 있게 했다. 데뷔한지 10년이 넘었다. 그 사이 한국어와 영어의 목소리 톤이 거의 같아졌다. 박정현의 말, 노래, 마음이 제대로 전해지는 것은 지금부터다.

Who is next
박정현이 부른 ‘위태로운 이야기’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김옥빈과 영화 에 출연한 윤여정이 단역으로 나왔던 MBC 의 김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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