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위를 매기고 1등을 뽑는 프로그램에서 제 역할은 공정한 진행이에요. 저의 멘트가 끼어들어 누군가에게 손해를 주는 일은 없도록 조심하죠.” Mnet 의 MC 김성주의 말처럼, 오디션 프로그램 진행자가 갖춰야 할 자질은 다른 프로그램 진행자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뉴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처럼 시종일관 진지해서도 안 되고, 예능인처럼 웃음을 위해 무리한 애드리브를 던져서도 안 된다. 그러면서도 쇼의 긴장감을 쥐락펴락하는 진행능력과 생방송을 소화할 수 있는 순발력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한다. 김성주의 “60초 후에 공개됩니다” 혹은 이소라의 “진보한 디자인은 박수를 받지만 진부한 디자인을 외면 당합니다”와 같은 유행어를 만들어내며 프로그램의 마스코트 역할까지 해낸다면 금상첨화다. 물론 시청자들의 이목은 대부분 도전자와 심사평에 쏠려있지만, 진행자가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한다면 프로그램 전체가 삐걱거릴 수밖에 없다. 최근 MBC 의 박혜진 아나운서가 자질 논란에 시달리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제작진이 오디션 프로그램 성격에 따라 각기 다른 스타일의 MC를 기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MBC ‘신입사원’의 오상진과 tvN 의 손범수는 모두 아나운서지만, 제작진이 염두에 둔 자격요건은 각각 “아나운서 채용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밝게 환기시킬 수 있는 부드러운 이미지”(‘신입사원’ 전성호 PD)와 “오페라 장르를 안정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연륜”(tvN 이덕재 채널국장)이었다. 가수 지망생만을 대상으로 한 이나 기성 연예인이 출연하는 와 달리, 6월 4일 첫 방송을 앞두고 있는 tvN 는 특정한 재능을 지닌 남녀노소 누구나 지원할 수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특징을 감안해 “동네 오빠나 형처럼 만만하고 편한” MC를 원했다. 그 결과 예능감이 뛰어나고 붙임성 좋은 신영일과 노홍철이 진행을 맡는다. 의 부산지역 예선을 지켜본 이덕재 국장은 “안정적인 솜씨로 진행하는 신영일과 온 몸을 이용해서 분위기를 띄우는 노홍철 콤비는 기대 이상으로 훌륭했다”고 평가했다. 이렇게 제작진에게 선택받은 MC들은 그 기대에 얼마나 부응하고 있을까. 최근 종영한 온스타일 와 현재 방송 중인 , ‘신입사원’, MC들의 진행능력을 분석했다.

오상진 아나운서 (MBC ‘신입사원’)
한 마디로 모범생 스타일이다. 주어진 대본에 충실하며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침착한 진행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심사위원들이 도전자들의 절박한 목소리 앞에서 평가자가 아닌 선배의 마음으로 눈물을 훔칠 때, 오상진은 객관적인 중계자의 선을 넘지 않는다. 합격자를 발표할 때도 그 흔한 ‘밀당’ 한 번 하지 않고 담담하게 결과를 공개한다. 제작진이 요구한 “출연자들의 상황에 크게 관여하지 않고 프로그램 톤을 조절하는 드라이한 역할”을 잘 소화하며 시청자들에게 신뢰감을 심어주고 있으나, 정작 제작진이 그에게 가장 기대했던 “위트”가 아직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오상진 아나운서가 각 도전자들의 장단점을 파악해 ‘이 사람이 얼마나 대단하고 열정적인지’를 무대에서 소개하는 시간이 많아질 것”이라는 전성호 PD의 말대로라면, 조만간 오상진의 유연한 면모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소라 (온스타일 )
“프로그램 진행과 의상 평가를 동시에 소화할 수 있는 MC로 떠오르는 사람은 이소라 씨 뿐이었다.”(정종선 PD) 모델 출신에 의류 사업을 하고 방송진행 경험까지 있는 이소라는 그야말로 최고의 적임자라 할 수 있다. 시종일관 냉정한 말투와 무표정을 유지하는 진행뿐 아니라 심사위원까지 겸한 덕분에 역대 가장 위엄 있고 우아한 MC로 각인됐다. 무엇보다 런웨이의 긴장감을 잘 살린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정종선 PD는 “탈락자가 발표되는 순간이 가장 긴장되고 시청률도 높게 나오는데 제작진이 그 부분을 요구하기 전에 이소라 씨가 알아서 발표 직전에 텀을 두면서 능숙하게 진행하신다”고 말했다. 중위권 성적으로 통과한 도전자들을 호명할 때와, 탈락자와 우승자를 발표할 때의 긴장감의 크기가 얼마나 다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은 시즌 1부터 쌓아 온 경험과 노하우 덕분이다. 내년 2월에 방영될 예정인 시즌 4도 “큰 이변이 없는 한” 이소라가 MC직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박혜진 아나운서 (MBC )
의 이소라의 심사평을 인용하자면, 박혜진 아나운서의 오디션 프로그램 진행은 “초콜릿에 삼겹살을 찍어먹는 느낌”이다. 그만큼 적합하지 않다는 뜻이다. 물론 정확한 발음과 차분한 진행은 장점으로 꼽을만하지만, 이미 도전자 이름을 두 번이나 잘못 호명하는 실수를 저지르며 프로그램의 긴장감을 떨어뜨렸다. 이 치열한 서바이벌 포맷의 생방송이며 현재 방영 중인 오디션 프로그램 가운데 쇼적인 성격이 가장 짙다는 점을 고려하면 순발력과 완급조절능력은 아직 부족하다. 스스로 “(탈락자 발표) 결과가 너무 궁금하다”고 말해놓고 정작 탈락자 발표는 몇 초의 여유도 두지 않은 채 굉장히 김 빠지게 공개해버리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민호 CP는 “예능 프로그램 첫 출연이라는 참신함” 때문에 박혜진을 발탁했다고 밝혔지만, 이 기용은 “참신한 MC는 박수를 받지만 부족한 MC는 외면당한다”고 말하는 것이 더 어울릴 듯하다.

손범수, 이하늬 (tvN )
좋게 말하면 차분하고, 나쁘게 말하면 지루하다. 각종 퀴즈 프로그램 및 가요 순위 프로그램을 맡아왔던 손범수는 “생방송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변수에 능숙하게 대처하면서도 출연자들을 감싸줄 수 있는 연륜 있는 남자 MC”(이덕재 채널국장)에 적합한 편이다. 특히 출연자들과 심사위원들 사이의 브릿지 역할에 충실하면서 의 안정도에 기여하고 있다. 이에 반해, “국악을 전공해 음악에 대한 기본 소양을 갖추고 있다”는 이유로 발탁된 이하늬는 그 재능을 십분 발휘하기는커녕 아직 주어진 대본을 소화하기에도 버거워 보인다. 출연자와의 인터뷰에서 어색한 분위기를 무마하려는 듯한 부자연스러운 미소를 짓는 모습이 영 불편하게 느껴진다. 제작진도 “용어 선택이나 발음, 긴장감을 조성하는 능력을 더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했다. 2 MC의 밸런스를 위해서라도 이하늬의 분발이 시급해 보인다.

글. 이가온 thirteen@
편집. 이지혜 seven@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