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렙업’ 혹은 업데이트 완료. 최근 SBS 에서 주인공 도현(장혁)은 자신에게 한영은행 인수 관련 로비에 대한 모든 죄를 뒤집어씌워 감방 신세를 지게 한 인진그룹의 인혜(김희애), 성준(윤제문) 남매에게 복수하기 위해 인진건설부터 흔들기 시작한다. 인진건설의 대표이자 인진그룹의 장남인 기준(최정우)에게 의도적으로 M&A를 제안하고, 여기에 힘을 쏟느라 스스로의 주식을 담보로 잡히게 한 건 도현의 타고난 감각 덕이지만, 인진그룹에 대한 복수심을 공유하는 성철(김병기)의 도움이 없었다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작전이었다. 요컨대, 도현은 감옥 안에서 복수심을 키우고, 강력한 우군을 얻으며 비로소 인혜의 원숭이가 아닌 대등한 경쟁자로서 성장했다. 그 성장의 장소가 감옥이라는 건, 그리고 그 외의 많은 드라마에서도 감옥이 주인공의 능력치를 채우는 수련의 공간이 되는 클리셰가 사용된다는 건 재밌는 일이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적자들

KBS 에서 형수와 조카를 지키기 위해 자진해서 감옥에 간 김신(박용하)은 조폭 두목 범환(장세진)과 주식 고수 안경태(박기웅)을 만나 형을 죽음에 이르게 했던 채도우(김강우)에 맞설 힘을 얻고, 살인누명을 썼던 SBS 의 고니(장혁) 역시 교도소 안에서 도박 기술과 무술을 연마해 돌아온다. 감옥에서 평생의 벗 종구(허준호)를 얻은 SBS 의 인하(이병헌), 조금 경우는 다르지만 탈옥 후의 고통스런 방랑을 통해 중원이란 새 이름으로 돌아오는 SBS 의 정현(고수) 역시 마찬가지다. 이름을 바꿔 돌아온 정현의 경우에서 좀 더 명확히 드러나지만, 이 모든 모티브의 원형은 결국 복수극 의 에드몽 단테스다. 고전의 모티브가 변주를 통해 계속 반복되는 건 자주 볼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텍스트 속의 어떤 클리셰가 클리셰로서의 힘을 얻기 위해서는 결국 텍스트 바깥의 맥락에서 보편적 공감을 이끌어내야 한다. 대체 왜, 현대 한국 드라마에서 감옥은 주인공을 위한 ‘정신과 시간의 방’ 역할을 해주는가.

알렉상드르 뒤마의 작품 중 시골청년 달타냥이 총사대 부대장의 자리까지 오르는 는 실력과 성품만으로 입신양명이 가능한 시대의 이야기다. 하지만 혼란기가 지나고 기득권의 세력이 공고해지면 계급 이동은 자유로울 수 없다. 그 비루한 현실에서 새로운 시대의 달타냥은 어떤 식으로 영웅이 될 수 있는가. 뒤마는 에서 복수의 서사를 선택했다. 선한 의지를 믿고 권력에 아부하지 않는 주인공은 이제 배척당하고 감금당한다. 단테스가 감옥에서 파리아 신부를 만난 건 우연이 아니다. 영웅의 싹을 품은 존재들은 이제 모험의 광야가 아닌 감옥에서 만난다. 여기서 은 감옥을 배움의 장소로 설정하며 짜릿한 전복의 쾌감을 준다. 감옥에서의 신체 훈육을 군대에서 기계적인 신체를 만드는 훈련과 동일시한 푸코는 감옥이 감금과 배제의 메커니즘이 아닌 새로운 주체가 되는 재생산의 과정임을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정작 갱생이 필요한 이들이 돈과 권력의 힘으로 법망을 피해나갈 때, 감옥의 메커니즘은 무의미해진다. 때문에 소설 속에서 감옥의 순기능은 재설정된다. 악인을 교화할 수 없다면, 선한 피해자를 강한 복수의 주체로 만들어내라. 단테스가 파리아 신부를 통해 성장하고 복수의 계획을 짜는 장면의 두근거림에 비하면 몽테크리스토 백작으로서 복수하는 순간의 쾌감은 사실 시시할 정도다.

영웅은 복수를 먹고 자란다

21세기 한국 드라마의 에드몽 단테스들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그들은 기업의 적대적 인수, 혹은 경영권 장악의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피해를 입거나 누명을 쓰고(김신, 이정현), 성공을 위해 기득권이 만든 더러운 룰에 뛰어들었다가 버림받거나 이용당하며(고니, 김도현) 감옥에 수감된다. 우린 현실에서 얼마나 많은 단테스가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수많은 혐의에도 불구하고 감옥은커녕 호의호식하는 은행가 당그라르와 군인 페르낭, 검사 비르포르의 현실 버전을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다. 욕을 먹어도 ‘떡검’은 건재하고, 무력으로 권력을 찬탈했던 이는 반성하지 않는다. 큰손이 시세차익을 위해 주가조작을 하면 수많은 개미들은 자살을 고려한다. 그래서 최근 에서 반복되는 단테스의 모티브는 완성도를 떠나 씁쓸할 수밖에 없다. 옳고 그름에 대한 사법적 평가가 힘에 의해 좌우되는 현실 속에서, 결핍은 판타지를 부르고 대중은 영웅을 소환한다. 그렇게 김신은, 도현은 브라운관 속에서 복수를 펼친다. 달타냥처럼 순결한 기사일 수 없는, 온갖 암투와 협잡의 방법론으로 무장한 조금은 두렵고 조금은 서글픈 복수의 화신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모습으로.

글. 위근우 eight@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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