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데 없는 고퀄리티
1. 견문발검하는 격이라 과유불급이오.
2. 퀄리티를 제압하는 자가 시합을 제압한다!

‘쓸 데 없는 고퀄리티’는 현대 문화의 패러독스를 집약하는 표현이다. 한자 고(高)를 영어 단어인 퀄리티(quality)와 결합시킴으로써 이 표현은 이미 외적으로 부자연스러운 형태를 취한다. 게다가 궁박한 시절을 지나 양보다 질을 강조하며 베블런 효과에 가장 노골적으로 노출되어 스놉 마케팅이 승승장구 하는 시대에 퀄리티를 ‘쓸 데 없는’ 것으로 규정하는 것은 모순적이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표현이 널리 사용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쓸 데 없는 고퀄리티’를 가진 콘텐츠가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시선에서 보상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높은 퀄리티를 유지하는 것은 곧 어리석은 낭비를 뜻한다.

그러나 ‘쓸 데 없는 고퀄리티’는 궁극적으로 거창한 쓸모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양질의 내용을 갖추었다는 데 그 핵심이 있다. 최근 이러한 미학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은 역시 ‘이태원 프리덤’을 발표한 UV다. 디스코라는 장르적 특성을 기반으로 80년대의 무드를 체화하고 있는 이들은 정교한 보이스 디렉팅과 디테일한 코러스, 섬세한 안무로 음악과 뮤직비디오의 일체화에 성공한다. 특히 객원 래퍼 JYP의 라임은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세계가 있어’라는 노래의 메시지에 부합하는데 박미선은 이봉원, 고릴라는 동물원, 사랑하는 강동원, 위기탈출 넘버원 등 다양한 표현의 유혹을 외면한 단호함이 돋보인다. 이와 같은 하이 퀄리티의 결과물을 제시함에도 불구하고 UV는 다수의 시상식과 차트에서 배제되며 직접적인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음악세계는 나아가 플랫폼의 영역을 뛰어넘고 시장의 한계를 파기한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며 이것은 목적 없는 하이 퀄리티의 힘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이들이 개척한 자유로운 창작 활동에 대한 혜택을 받는 것은 결국 콘텐츠를 향유하는 우리들, 그리고 우리의 자손들일 것이다. 자신에게 쓸 데 없으나 세상을 위해 고퀄리티를 포기하지 않는 이들을 일컬어 우리는 예술가라 부른다.
사례 연구
* 쓸 게 많은 고퀄리티
* 쑥스러운 고퀄리티
* 쓰미마셍 고퀄리티
* 쓰고 싶은 고퀄리티

글. 윤희성 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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