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긴 했지만, 살아가는 건 쉽지 않다. 고등학생 기태(이제훈), 동윤(서준영), 희준(박정민)도 마찬가지다. 한때 서로를 ‘친구’라 부르며 위해주던 이들이지만 기태와 희준사이의 사소한 오해는 따돌림과 집단폭행으로 이어지고, 그 사이를 중재하려 애쓰던 동윤 마저 기태에게 상처입고 멀어진다. 얼마 후 그 중 한 명이 아파트에서 떨어진다. 뒤늦게 아들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품은 아버지(조성하)는 친구들을 수소문하기 시작한다.

‘남고괴담’ 그 첫 번째 이야기


그래서 누가 죽었나.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시답지 않은 농담을 나누며 철길 위에서 야구공을 주고받던 친구들. 그 중 이제 살아서 저 철길 위에 설 수 있는 자는 없다. 그들 중 누군가는 죽었고, 누군가는 떠났고, 누군가는 숨어버렸다. 그래서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가. 그 역시 중요하지 않다. 육체적으로 상처받은 아이와 마음의 상처를 입은 아이, 모두 예전의 그 소년들이 아니다. 영화의 영제목인 ‘Bleak Night’처럼 암울하고 황폐한 그 밤, 아이들은 서로의 파수꾼이 되어 주지 못했다. 증언될 수 없는 밤의 풍경 역시 서툰 추적을 통해서 비슷하게 복원될 뿐, 끝내 그 진실의 동공에 다다르지 못한다.

비밀일기와 귓속말을 나누며 은밀한 세계를 공유하는 예민한 존재로 그려졌던 여고생들과 달리 그간 한국영화 속에서 ‘남자고등학생’은 늘 패싸움을 하거나, 육두문자를 입에 달고 다니거나,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본드를 불었다. 딱 그만큼 거칠고 딱 그만큼 단순하게 그려진 이들은 동물적인 정복욕과 제어불가의 본능으로 덜 자란 주먹을 휘두르던 어린 수컷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줄곧 오해받아왔는지도 모른다. 너와 함께 집에 같이 가는 날이 오랜만이라고 수줍게 말하는 소년을, 그래도 나에겐 네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고 고백하는 친구를, 아끼던 녀석을 다른 녀석이 감싸는 순간 서운함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예민한 남자를 만나는 생소함이라니. 하여 이들이 주고받는 폭력과 상처의 체감통증은, 공사장에서 각목을 들고 거대한 패싸움을 벌이지 않아도, 커터로 내장을 쑤셔 뒤집지 않아도, 훨씬 깊고 아프다. 은 한국영화에서, 어른도 아이도 아닌 이 ‘남자고등학생’이라는 종족의 마음에 진 응달을 응시한 최초의 목격자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제작연구과정의 프로젝트로 제작된 윤성현 감독의 은 지난 해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해 국내외 영화제에서의 수상과 언론의 압도적인 호평,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오는 3월 3일부터 CGV 무비꼴라쥬에서 확장된 전국 20여개 극장에서 상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만날 수 있는 극장 수는 여전히 많지 않다. 하지만 은 지하철과 버스를 타는 수고를 감수할 가치가 충분한 영화다. 오히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길면 길수록 더 좋을지도 모른다. 그 여운은 곱씹을수록 진해지고 그 통증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진다. 특히 기태를 연기한 배우 이제훈은 깊은 잔상을 남긴다. 천사처럼 해맑다가도 균열의 틈으로 잔인한 악마의 얼굴을 내보이는 쉽지 않은 인물에 대한 이 신인배우의 해석은 탁월하다. 그야말로 귀신처럼 등장한, 소스라치게 사실적이고, 소름끼치게 예민한 ‘남고괴담’ 그 첫 번째 이야기.

글. 백은하 one@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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