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오랜만이야. 안 그래도 좀 봤으면 했는데.
어, 그래? 그렇게 내가 보고 싶었…?
뭐래, 물어볼 게 있어서 그러지. 한동안 9구단이 생기네 어쩌네 말들이 많은데 물어볼 사람이 있어야지. 그건 이제 결정된 일인 거야?
정확히 말하면 완전히 결정된 건 아니야. 지금 9구단의 가장 유력한 주체인 엔씨소프트는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상태인데, 이건 말 그대로 9번째 구단 창단 협상에 있어 다른 기업보다 우선적인 권리를 가진다는 거야. 배우를 캐스팅할 때, 세부 계약이 끝나지는 않았어도 일단 내정이 되면 더는 다른 배우를 알아보지 않잖아. 하지만 이 때 최종 사인이 불발되면 다른 사람을 찾아야하는 것처럼, 엔씨소프트 역시 9구단과 관련한 논의에서 우선권을 가지지만 이제 앞으로 합의해야할 많은 사항들이 남은 거지.
처리해야 할 게 많은 건가?
굉장히 많지. 우선 야구단을 만들려면 선수가 있어야 하잖아. 그런데 지금 고등학교, 대학교 졸업생으로만 팀을 꾸릴 게 아닌 이상 현역 프로선수들을 다른 구단으로부터 받을 수밖에 없겠지? 이 때 선수 한 명 당 보상금을 해당 구단에 줘야 하는데 그 금액을 정하는 문제, 그리고 어떤 선수를 데려오느냐 하는 문제 등등 해결해야 할 게 잔뜩 남아있어. 그리고 여기서 나머지 8개 구단과 엔씨소프트 사이에 알력이 생길 수밖에 없을 거고. 진짜 몰라서 묻는 건데, 그런 귀찮은 일을 하면서까지 9구단에 뛰어들 이유가 있어? 프로야구가 돈이 되나?
하나씩 따로 대답해줄게. 돈이 되느냐, 이건 관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 우선 야구단이 버는 돈과 쓰는 돈으로만 따지면 적자야. 그것도 백억 대의 적자. 그 적자를 메우기 위해 구단은 삼성이면 삼성, SK면 SK 같은 모기업으로부터 지원금을 받는 거지. 그런데 그렇게 모기업으로부터 받는 돈을 지원금이 아닌 홍보비로 계산하면 얘기가 또 달라져. 지난 3년 동안 꾸준히 관중 500만을 돌파했는데, 관중 250만이면 구단별로 330억의 홍보효과를 누린다고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게 2000년이야. 물론 그 홍보효과가 정확한 셈법으로 산정된 건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모기업으로부터의 지원금을 어느 정도 정당한 홍보비로 이해해야 한다는 건 동의하는 바야.
그럼 그게 엔씨소프트에 사업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거야?
‘될 수도’ 있다는 정도가 맞는 거 같아. 어쨌든 너처럼 게임에는 관심도 없는 애가 엔씨소프트라는 이름도 알고, 대체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 하게 된 것 자체가 상당한 홍보인 셈이니까. 사실 어떤 특정 분야에만 알려진 기업이 범국민적인 인지도를 얻고 싶을 때 프로야구만한 홍보도 없고. 하지만 어쨌든 그런 효과를 계산하지 않으면 분명 프로야구는 적자 사업이지. 그리고 이 부분에서 아까 질문에 대해 답하자면, 엔씨소프트는, 더 정확히 말해 엔씨소프트의 김택진 대표는 프로야구 구단주에 매력을 느끼기 때문에 그런 적자 여부조차 감수하려는 거 같아.
구단주에 매력을 느낀다는 건 또 무슨 소리야.
김택진 대표는 어릴 때부터 야구단 구단주를 꿈꾸고, 평소에도 야구장에서 야구 보는 걸 즐기는 야구광으로 잘 알려져 있어. 창단 취지를 밝히면서 ‘우리 회사는 그동안 청소년들을 방으로만 끌어들였다. 이제 야구장으로 그들을 불러내 호연지기를 키울 수 있도록 돕겠다’고 했는데 야구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이 뚝뚝 묻어나오잖아. 그런 사람이 20대에 시작한 사업으로 40대 초반에 1조가 넘는 자산을, 1년에 백억 씩 지원금으로 ‘날린’다고 해도 100년을 유지할 수 있는 돈을 가지게 되었으니 자신의 꿈이었던 구단주를 당연히 하고 싶지 않겠어?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왜 꿈이 구단주냐는 거야. 차라리 야구선수면 이해를 하겠다.
물론 프로야구 선수도 남자들의 로망이지만, 구단주 역시 마찬가지야. 다들 막연히 부자가 됐으면 하잖아. 일차적으로는 안정적인 의식주 때문이지만 보통은 그 돈을 통해 좀 더 특별한 욕망과 꿈을 추구하고 싶어 하지. 좀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그걸 ‘사치’라고 부르기로 하자. 자, 스포츠를 좋아하는 내가 있는데 돈을 엄청, 정말 말도 안 되게 벌었어. 그래서 막 매일 소고기덮밥을 먹을 정도로 호화로운 일상을 누리고, 나*키 운동화에 리**스 청바지로 쫙 빼입을 정도로 패션 리더로서의 ‘사치’까지 다 부린 상황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부릴 ‘사치’는 어떤 게 있을까.
소녀시대 영입?
그렇지. 그렇긴 한데, 소녀시대와 카라를 우리 회사 소속으로 만든 다음에는 뭘 하겠어. 1조가 있으면 천억 주고 타이거즈 인수해야지. 이종범에게는 연봉 10억에 10년 계약 제시하는 대신 주말에 구단주랑 캐치볼 하는 걸 계약서에 넣고. 나중에는 주루코치 이종범, 타격코치 양준혁, 투수코치 송진우의 드림팀을 만들 수도 있겠다. 물론 돈이 있다고 이게 다 되는 건 아니야. 하지만 이런 가슴 두근거리는 일을 꿈꾸고 시도도 해볼 수 있는 게 구단주라는 거지.
정말 그런 사람들이 많긴 한 거야?
미국의 마크 큐번 같은 사람은 자신이 운영하던 온라인 미디어 회사 브로드캐스트닷컴을 야후에 팔아 억만장자가 된 뒤, NBA 댈러스 매버릭스의 구단주가 됐어. 매버릭스의 경우 모든 선수의 락커에 평면 스크린 TV와 비디오게임을 설치한 것으로도 유명해. 그렇게 ‘자신의’ 팀을 가지고 그 팀에 애정을 쏟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사업 이전에 너무나 즐거운 일인 거지. 심지어 그는 그런 진정성 있는 투자 덕에 홈팬들의 지지를 받으며 구단 경영에서도 좋은 성과를 내고 있고. 또 아부다비의 왕자이자 석유 ‘초’재벌인 세이크 만수르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시티를 사들여 야야 투레, 테베즈, 조 하트, 에딘 제코 같은 초특급 선수들로 팀을 재정비하고, 역시 석유 재벌인 러시아의 로만 아브라모비치 역시 프리미어리그 첼시의 구단주로서 토레스, 드로그바 조합을 만들어냈지. 자산으로 팀을 사고, 그 팀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 최고의 팀으로 만들 수 있다면 그 매력이 얼마나 대단하겠어. 심지어 말 그대로 명문 팀을 만들 수 있다면 흑자 경영이 가능할 수도 있고. 잘은 모르겠지만 듣고 보니 부럽긴 하다. 그만큼 돈도 많고, 그 돈을 진짜 자기가 원하는데 쓸 수 있고.
너는 돈 많이 벌면 하고 싶은 일 없어?
딱히 떠오르는 건 없네? 그냥 예쁜 가방 모으는 거?
좋아, 그럼 내가 나중에 돈 많이 벌면 가방 하나 정도는 사줄게. 진짜 세계적인 브랜드로.
말만이라도 고맙네. 그런데 어떤 브랜드?
쌤소**트?
글. 위근우 eight@
편집. 장경진 three@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